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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은 허무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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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은 허무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 이환태
  • 승인 2017.04.2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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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태의 인문학여행] <10>모파상의 ‘화장’

셰익스피어의 극작품 <햄릿>의 후반부. 햄릿은 공동묘지에서 무덤 파는 사토장이가 내던지는 해골을 바라보며 육신의 전변(轉變)에 대해 명상한다. 그 해골 중 하나는 궁중의 재담꾼이었던 요릭(Yorick)의 해골이다. 어렸을 적 자신을 수없이 업어주기도 했고 온갖 재담으로 사람들을 웃기던 사람이었지만,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생전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변해 있다.


그걸 보며 햄릿은 천하를 호령하던 알렉산더나 로마황제의 모습도 결국에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한다. 죽은 알렉산더가 썩어서 진토가 되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누군가가 그걸 물에 개어 찬바람 들어오는 틈을 메우거나 술통의 마개로 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앞 장면에서 그는 간신 폴로니우스(Polonius)를 죽이고 그 시신을 궁궐의 후미진 곳에 감춰두는데, 그게 어디 있는지를 말하라는 왕에게 ‘회식 중’이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구더기들이 모여 그를 파먹고 있음은 물론이고, 정치구더기들이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온갖 궁리를 하고 있음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햄릿은 한술 더 떠 왕도 거지 뱃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덧붙인다. 왕이 죽으면 구더기가 그의 시체를 먹고 누군가가 그 구더기로 물고기를 잡고 거지가 그걸 먹으면, 왕이 곧 거지 뱃속으로 행차한 셈이 된다는 것이다. 육신은 그렇게 허무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어떤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죽은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버려두는 것이 역적에 대한 최고의 형벌이었던 모양이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Antigone)를 보면 오이디푸스 왕이 테베를 떠난 후 그의 두 아들에게 맡겨진 나라는 얼마 안 가서 권력 싸움에 휩싸인다. 그 싸움에서 두 왕자가 모두 죽고, 나라는 외삼촌 크레온(Creon)에게 넘어간다.

 

 

크레온은 테베를 공격하다 죽은 역적 폴리네이케스(Polinices)의 시신을 국법에 따라 매장하지 말고 들짐승과 날짐승의 먹이가 되게 내버려 두라는 명령을 내린다. 도저히 가족의 시신을 그렇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한 안티고네가 그 시신을 흙으로 덮어주었다. 죽은 후에 남겨진 육신은 너무 추해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빨리 치울수록 죽은 자에게 좋은 것이다.


그나마 시신이 부패하는 더럽고 추한 과정을 단축시키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화장(火葬)일 것이다. 모파상의 단편 <화장>(A Cremation)에 보면 유럽을 여행하던 인도의 왕자 일행 중 한 사람이 병으로 죽는다. 노지에서 화장을 허락하지 않는 나라를 여행 중이었지만, 그들은 자국의 관습에 따라 시신을 화장하게 해달라는 청원을 한다.


그날 밤 모두 잠든 시간, 일행은 하얀 비단을 덮은 시신을 들것에 메고 천천히 바닷가로 향한다. 바닷가 절벽 아래 모래사장에 이르자 장작더미 위에 시신을 올려놓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은 다음 장작을 더 쌓아올리고 불을 지핀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암송하며 장작더미 주위를 돌 때 밤하늘에 피어오르는 불꽃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모파상은 그가 처음으로 목격한 화장이라고 하는 낯선 장례의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은 즉시 끝난다. 인간은 흉측한 관 속에서 몇 달에 걸쳐 천천히 썩어가는 대신 자연의 느린 작업을 신속히 이루어지게 한다. 육신은 죽었고 혼백은 이미 떠나고 없다. 정화의 불이 한 인간이었던 모든 것을 몇 시간 만에 흩어버린다. 그것은 인간을 치욕스런 부패에 맡기는 대신 재로 바꾸어 바람에 날려버린다. 〔…〕 그것은 깨끗하고 위생적이다. 땅속의 뚜껑 닫힌 상자 속에서의 부패는 시신을 시커먼 죽처럼 변하게 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불쾌하고 혐오스런 어떤 것으로 만든다. 진흙 구덩이 속으로 내려지는 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찢어지게 한다. 하지만 하늘 아래에서 훨훨 타오르는 화장용 장작더미는 장엄하고 아름답고 엄숙하다.”


죽은 후에 남은 육신은 매장해서 서서히 썩게 놔두거나 태워 없애버려야 할 그 무엇이다. 그렇게 썩고 타 없어질 육체만을 위해 살거나 그것을 위해 큰 죄업을 쌓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우리가 진정 남겨야 할 것은 추악한 육신이 아니라 썩지도 않고 타지도 않는 영원한 무엇이어야 한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거나, 불멸의 작품을 남기거나, 나라와 인류를 위해 큰 업적을 쌓거나, 적어도 큰 죄를 짓지 않는 것이리라. 육신은 죽어서 없어지지만 세상을 위해 한 일은 오래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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