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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과 복제, 그 무의미한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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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과 복제, 그 무의미한 경계
  • 이순구
  • 승인 2017.04.0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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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구의 미술산책] <8>제프 쿤스의 ‘풍선 강아지’

1917년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은 미술을 새롭고 또 다른 큰 길로 안내했다. 뒤샹 이전에도 다양한 작품들의 유형이 존재했지만 대부분 면(面)에서 시작했고 면에서 완결했다. 미술이라는 하나의 길에 작은 길들이 수없이 나있었지만 결국 그 큰 길에 합류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뒤샹은 아예 새롭고 큰 또 하나의 길을 열었다. 이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뒤샹의 ‘샘’ 이후 비로소 세상의 모든 것은 예술작품이 될 수 있었다. 즉 변기가 예술이 될 수 있다면 그 기성품도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각종 기성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개념을 심어주고 제목을 붙이면 되는 것이다. 즉 무엇을 만드느냐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된 셈이다.


‘샘’ 이후 나타난 다양한 양상들은 수용자로 하여금 더 큰 혼란을 야기 시켰다. 정상적인 물체의 조합에서부터 폐품의 활용까지 모든 것이 이용됐다. 이는 미술에서 미(美)자를 뺀 영역까지 모두를 포함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 영상과 컴퓨터에 의해 시각예술의 폭은 무제한으로 넓혀졌다.


이 시대의 작가 제프 쿤스(Jeff Koons 1955~)는 뒤샹의 ‘샘’ 이후 열린 새롭고 또 다른 큰 길을 가고 있는 작가 중 하나다. 그에게는 ‘키치의 황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을 생산하는 예술가’ ‘미술계의 스캔들 메이커’ 등 다양한 평가가 뒤따른다. 살아있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다.


그의 작품 중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조각의 <풍선 강아지(Balloon Dog, 1994-2000)>는 어린이 공원에서나 봄직한 모습이다. 과연 이런 것이 예술품인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1980년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 및 학문분야 전반에서 나타난 기본적인 인식체계의 변화 현상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후기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 소비사회의 새로운 특징들을 대변하고 정당화한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존중하고, 권위주의를 거부하며 거대담론에 반대하고 소서사적 지식을 중시한다.


이는 절대적인 진리는 없으며 지식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많은 것을 수용하는 구조이다. 그동안 방치했던 소수자를 인정하고 그 특성을 살려 표출함으로써 다의성을 확장하려는 시도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특성에는 ‘차용’(parody)이라는 방법이 있다. 차용은 자산을 의미하며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차용은 그간의 모더니즘이 지향하는 원본성의 가치에 물음을 던진다. 차용은 전형적인 저자의 개념을 전복시키며 원본과 복제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후기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개념이 된다.


예술가들은 항상 자신이 속한 시대나 사회의 중심사상과 경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시대에는 모든 것을 동원한 표현이 지금까지의 그 어느 시대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작가들 스스로도 정신이 혼미할 정도다. 이런 면에서 제프 쿤스는 모든 매체를 이용하며 시각으로 보여주는 다양성 측면에서 대단히 성공한 작가다.

 
제프 쿤스(Jeff Koons)는 1955년 펜실베니아주 요크에서 태어나 메릴랜드 미술대학과 시카고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1976년에 뉴욕으로 이주해 활동하였다. 초기 작품들은 주로 기성품을 이용한 조각 작품으로 스테인리스로 만든 여러 실내장식물을 복제했고 나무, 대리석, 유리, 스테인리스 등 다양한 물질을 조각한 회화, 사진, 설치 등 모든 기술을 동원해 작품화했다.

 

 

그는 대중적 인기가 있는 키치와 고급 예술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현대 미국의 모습을 조명하고자 했다. 1985년 뉴욕 첫 개인전, 1987년 휘트니비엔날레 참가 이후 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하면서 국제적인 명성과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의 작품은 풍선이나 스테인리스 스틸 등을 사용한 동물 이미지로 미술 경매시장에서 고가에 팔려왔다. 2013년 11월 뉴욕 크리스티에서는 ‘풍선 강아지(빨강)’가 626억 원에 팔렸다. 이 시대의 가장 비싼 작가다.


제프 쿤스의 ‘풍선강아지’는 풍선의 부드러운 재질이 아닌 스테인리스 스틸로 여러 해(1994-2000)에 걸쳐 다양한 색깔의 작품이 제작됐다. 바람이 빠지는 속성의 풍선대신 단단한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형태는 변하지 않고 영구보존적인 성격을 갖게 한다.


또한 작은 크기의 상품들이 기념비적인 규모로 크게 바뀜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사물이 낯선 사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낯선 효과들은 상품을 예술작품의 지위로 위치시키는 의도적인 전략이다. 즉 새로움을 부여받아 상품이 예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창의성에 의한 커다란 선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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