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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착공 10년, 눈물로 써내려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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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착공 10년, 눈물로 써내려간 기록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7.03.27 09:0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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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남 홍석하·강희붕·정경훈씨

2017년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복도시) 착공 10주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5주년이 되는 해다. 세종시 건설을 지켜봐온 원주민들은 지금의 행복도시를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금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2003년 신행정수도특별법 제정부터 2004년 신행정수도 입지 선정과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2005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 제정,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론과 원안사수 투쟁까지. 파란만장했던 역사가 올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매일 조치원역 광장을 밝히던 촛불과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이어간 상경 투쟁, 원안 사수를 위한 삭발과 단식. 세종시는 원주민들의 희생과 헌신에 의해 탄생한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쟁의 역사를 거쳐 현재는 세종시주민생계조합 ㈜장남에서 일하고 있는 홍석하 사무국장, 정경훈 부장, 강희붕 상무이사를 만났다. 이들은 모두 현재 세종시의 모습이 ‘감개무량’하다고 입을 모았다.

행정도시 사수 투쟁의 역사, 뿔뿔이 흩어진 원주민


세종시는 2002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으로부터 비롯됐다. 수도권 인구 분산과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목표에서 추진됐지만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과 세종시 수정안 논란 등을 거치며 출범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홍석하 씨는 “당시 10여 년 간 행정도시 세종을 지키는 싸움을 해왔던 사람으로서 지금의 세종시를 돌아보면 감개무량하다”며 “국가적인 책무를 안고 있는 도시가 새로 이주해 들어오는 시민들의 힘으로 거침없이 성장하고 있어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MB 정권 당시 수정안 파동에 의해 건설이 지연되면서 고향 땅을 내 준 원주민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주민 이주는 2010년부터 시작돼야 했지만, 2013년이 돼서야 가능했다. 예정지역 주민 4000여 세대, 총 1만 여 명의 이주만 5년 가까이 걸린 것. 

홍 씨는 “평생 농사짓고 살던 사람들이 임시 거주 상태이다보니 보상금의 많은 부분을 생활비로 소진하게 됐고, 건설에 대한 정부의 불확실성이 커져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며 “먹고 사는 문제를 비롯해 정부에 대한 떨어진 신뢰까지 모두가 힘든 때였다”고 회상했다.

세종시 건설이 지연되고, 건설 예산이 적기에 투입되지 못한 피해는 고스란히 원주민들에게 돌아갔다. 임시 거주 기간이 늘어나다보니 보상비 소진은 물론이고, 택지 권리를 헐값에 파는 일도 많았다. 이른바 ‘딱지’라고 불리는 이주대책, 생활대책 택지 권리는 당시 헐값이나 다름없는 1000만 원에 팔려나갔다. 결국 내 땅에 다시 집을 짓고 살려던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는 “현재 이주대책 용지는 2억 5000만 원, 생활대책 용지는 1억 5000만 원 가량 가격이 뛰었다”며 “10년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이겨냈다면 새로운 터전 확보가 충분히 가능했겠지만, 당시 여러 여건 상 그럴 수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노인이나 저소득층의 경우 어려움은 더 컸다. 임대아파트 입주가 늦어지고, 자식들과 떨어져 동네사람들과 정으로 유지했던 공동체 생활이 깨지다보니 정서적인 외로움과 허탈감이 커졌다. 저녁이 되면 응급차가 출동하는 일도 잦아졌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 지원했더라도 당시에는 다수가 어렵고 곤궁한 생활을 한 것이 맞다”며 “건설이 지연되면서 원주민들이 입은 경제적 손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했다.

평온한 시골동네, 분노 섞인 ‘투쟁의 장’으로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세종시 건설이 표류되자 주민들은 생업을 포기하면서 상경 투쟁에 뛰어들었다. 평범한 시골 동네에서 데모나 집회는 당시만 해도 무척 생경한 일이었다. 대통령 공약이었고, 공약을 낸 사람이 대통령이 됐고, 여야 대다수가 참여한 신행정수도 건설법이 통과됐지만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난관이었다.

홍 씨는 “초기에는 균형발전이나 지방분권에 대한 개념도 생소했지만, 헌재 위헌 판결이 나면서는 다들 지방의 처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사람들은 서울로 가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근근이 지역을 지키고, 서울은 항상 1등, 지방은 꼴등. 그런 부분들이 만성화됐지만 그때를 계기로 지역이 발칵 뒤집혀 분노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홍석하 씨와 정경훈 씨는 시나리오, 무대, 구호, 집회 진행, 가두행진까지 주민들을 이끌었다. 법적으로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치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반대하는 이들은 무슨 논리를 펴는지 공부하다보니 점차 지방분권, 균형발전이라는 본질에 접근하게 됐다.

이들은 “신행정수도 투쟁 당시 지역 내 모든 단체들이 참여해 서로의 역량과 지혜를 모았고, 덕분에 이후 수정안 파동 때도 일사분란하게 여론을 이끌 수 있었다”며 “10년 간 한 가지 일에 매달려 지역이 일관되게 싸우긴 쉽지 않다. 연기 군민들 모두가 세종시 건설 과정에 대한 전문가나 다름없다”고 했다.

일자리 대책 마련, 2005년 ‘세종시주민생계조합’ 설립


평생 농사로 먹고 살던 주민들이 재정착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마련이 가장 시급했다. 이를 위해 설립된 것이 바로 ‘세종시주민생계조합’이다. 신행정수도 투쟁 이후 면 단위 대표들을 모은 주민보상대책협의회가 꾸려졌는데, 이 대책위가 바로 주민생계조합의 전신이 됐다.

홍 씨는 “당시 이춘희 시장이 행복청장이었을 때 토지보상법에는 전혀 없는 새로운 이주 대책 사례인 주민보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며 “기반공사 철거, 수목 이식, 지하수 폐공, 무연고 묘 이장 등의 사업을 주민들이 할 수 있게끔 했다. 철거당하는 사람이 주민, 철거하는 사람이 외부인이면 상처와 충격이 커 갈등이 오래갔을 테지만,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다보니 차라리 나은 점이 많았다”고 했다.

주민생계조합은 2006년 5월 창립했다. 조합원들에게 출자금 1만 원씩을 받아 설립돼 ㈜전월, ㈜장남, 영농사업단이 꾸려졌다. 주민주식회사의 이름은 ‘전월산’과 ‘장남평야’에서 따 왔다. 예정지역 내 보상세대 중 75%인 2880세대가 조합원으로 가입했으며 특히 건물 및 주택 종합관리 전문업체 장남은 2015년 3월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며 한 걸음 더 성장했다.

강희붕 장남 상무이사는 “평범한 시골 농민들이 직장을 다니고, 영업을 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장남 직원이 500명 가량 되는데, 지역 주민 채용을 우선시하고 있고, 취약계층과 55세 이상 직원 비율도 70%가 넘는다”고 했다.

올해 1월 장남은 세종시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000만 원을 기탁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총 126회에 걸쳐 3억 7800만원 상당의 기부 릴레이를 펼쳐오고 있다. 지역 내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책무와 지역사회 환원을 위해서다.

강 상무이사는 “해마다 신도심 아파트 내 작은 도서관에 도서를 기증해오고 있고 지난해에는 3000만 원 상당의 도서를 기증했다”며 “기증을 하니 도서관이 없었던 곳에 도서관이 생기고, 도서관 위원회가 생기고, 시 작은 도서관으로 등록되는 등 생각지 못한 일이 생겨 기쁘다. 신도시 주민들과 마음으로 보여주고 싶어도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보람이 크다”고 했다.

전월은 지난해 세종시시설관리공단이 출범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건설 기반공사가 올해 마무리되면서 철거 사업이 종료되고, 주력 사업이 끊기게 된 것. 다른 사업을 구상하는 중이지만 어려움이 많다.

홍 씨는 “시설관리공단 설립은 지자체로서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공교롭게도 올해 기반공사 마무리 시점과 겹쳐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며 “우여곡절 끝에 재정착한 원주민들에 대해서는 적어도 개발기간인 2030년까지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수반돼야 한다”고 했다.

원주민과 이주민, 갈등 없는 세종시 되려면?


최근 세종시 인구가 25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 말에는 인구 30만 명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신·구도심간 화합과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조화 문제는 여전한 과제로 남아있다.

홍 씨는 “예산 배분 등 신도심과 구도심 간 이견이 있기도 하지만, 세종시 정상 추진에 있어 미래를 믿고 이주해온 분들의 공로도 크다”며 “최근 행정수도완성 시민대책위가 발족했는데 지역 사회의 목표를 위해 나이, 성별, 정파, 거주지를 떠나 하나로 뭉친 점은 선례가 없는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머리띠 두르고 투쟁했던 원주민들이 ‘흘러간 유행가’로 치부 되는 부분은 서글픈 감이 있다”며 “원주민들이 이제 뒷방 노인 신세로 늙어가고 있지만 먼저 손을 내밀고, 마음을 보여주려는 노력들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대선 정국에서 행정수도 개헌 논쟁이 뜨거운 만큼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세종시민을 비롯해 충청권 모두가 뭉쳐 이 호기를 잘 이용해야한다는 것.

그는 “헌법 개정은 국회의원 3분의 2가 참여해야하고, 이들 국회의원 대부분은 수도권 표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다수”라며 “노 전 대통령이 말했던 원대한 가치와 목표를 위해서는 2500만 지방민과의 연대를 복원하고, 충청권과 공조해 대선 기간 동안 온 힘을 바쳐야 한다”고 했다.

한편 세종시는 지난해 세종시 탄생과정을 담은 역사 기록화 사업을 추진, 다양한 기록물을 수집해 콘텐츠화 하는 작업을 구상중이다. 오는 7월 착공 10주년 기념식 때는 세종호수공원 내 ‘균형발전 상징공원’을 개장하고, 세종시의 과거현재미래를 볼 수 있는 시설을 건립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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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2018-02-05 14:35:44
(주)장남의 설립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금번 모아파트의 불공정입찰행위를 엄중히 규탄한다.
욕심에서 비롯된 불법행위들이 스스로에게 큰 화를 부를것이다.

영바위 2017-03-26 10:01:18
국토균형발전의 대의를 지켜낸 충청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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