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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적막해도 만고 처량하진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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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적막해도 만고 처량하진 말아야
  • 김충남
  • 승인 2017.03.06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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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의 고전에서 배우는 지혜] <20>의(義)와 불의(不義)

‘서수도덕자 적막일시 의아권세자 처량만고(棲守道德者 寂寞一時 依阿權勢者 凄凉萬古).’ 양심과 도덕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한때는 적막하나 권세에 아부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는 뜻이다.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의로움과 의롭지 못함이 함께 공존하는 인간사회다. 의로움보다는 의롭지 못함이 더 부각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착각과 유혹에 빠진 사람들은 쉬이 부귀와 권력을 위해 의로움을 버리고 불의(不義)와 타협한다.


불의와 타협해 일시적으로 성공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는 있다. 하지만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 즉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자는 살고, 거역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다. 하늘의 이치는 양심, 도덕, 의로움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불의로써 재물이나 권세를 취한 자는 한때 영화로울 수 있겠으나 결국엔 영원히 망할 수밖에 없다.


공자께서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의롭지 못한 부와 귀는 나에게 뜬 구름과 같다고 하신 이유다. 의로움보다 의롭지 못함이 더 부각되는 것 같은 착각과 유혹 속에서도 꿋꿋이 의로움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의지와 용기 그리고 인내가 없으면 힘들다.


의를 지키는 것은 힘들지만 마지막은 명예로움이다. 성인들은 의로움을 지키느라 외롭고 힘든 삶을 살지언정 만고에 처량해 지는 불의의 삶을 살지 말라고 했다. 명예로운 이름을 역사에 남긴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의의 영화를 버리고 외롭고 힘들지만 의로운 삶을 산 사람들이다.


눈앞의 영화를 위해 불의와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명예로운 삶을 위해 힘들지만 의로움을 지킬 것인가. 인생은 선택이다.

 

 

‘관물외지물(觀物外之物)’, 세상이치에 통달한 사람은 사물 밖의 사물을 본다고 했다. 약에는 효능(작용)과 부작용이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에는 작용과 부작용의 성질이 함께 있다. 그러므로 사물을 완전히 알려면 작용뿐만 아니라 부작용까지 알아야 한다.


인간 삶에 필수 불가결한 돈에도 이로움의 작용과 해로움의 부작용이 있다. 돈에 의해 인생과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돈의 부작용을 명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부작용을 일으켜 결국 돈에 의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권력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권력의 부작용을 일으켜 권력의 칼에 의해 파멸하고 목숨까지 잃게 된다. 역사 속 많은 경세가들이 세상을 다스리고도 권력의 부작용을 다스리지 못해 결국 권력의 칼에 죽임을 당했다.


아무리 이로움이 되는 것이라도 지나치면 도리어 해가 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답이다.

 

‘사신후지신(思身後之身)’, 즉 세상이치에 통달한 사람은 몸 밖의 몸을 생각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죽은 뒤 자신에 대한 명예나 평판까지 생각해야 한다.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인생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특히 후반기 인생을 더욱 삼가고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아무리 전반기 인생이 명예스러웠다 해도 후반기 인생에서 오점을 남기면 인생 전체가 불명예스럽게 된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개관사정(蓋棺事定)’, 관 뚜껑을 덮은 뒤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 인생길 백리 중 구십리를 갔어도 아직 절반이 남았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남은 십리를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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