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아는 게 병, 카산드라의 절망
상태바
아는 게 병, 카산드라의 절망
  • 박한표
  • 승인 2017.02.13 1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한표의 그리스

어둠을 밝히는 태양과 무지몽매함을 밝히는 이성의 힘은 알 수 없는 미래를 밝혀주는 예언의 능력으로 통한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태양의 신이며 이성의 신인 아폴론에게 예언의 신이라는 지위를 부여한다. 그는 거대한 뱀 피톤을 죽이고 델포이 신전을 세웠다. 델포이는 신탁으로 유명한 아폴론 신전이 있는 성지다.


그리스 인들은 델포이를 우주와 세계의 중심으로 믿었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반대 방향으로 날려 보낸 후 다시 만난 지점이 델포이다. 이곳에는 ‘우주의 배꼽’을 뜻하는 옴팔로스(Omphalos)라는 돌이 보존되어 있다. 이 돌은 제우스의 어머니 레아가 남편 크로노스에게서 제우스를 빼돌리고 대신 삼키게 한 돌이다.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나왔다.


델포이는 원래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주관하던 성스러운 장소였으며 거대한 뱀 피톤이 여신을 대신하여 이곳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홍수가 끝나고 아폴론이 피톤을 활로 쏘아 죽이고 델포이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거대한 뱀 피톤에게는 아내 피티아가 있었다. 제우스는 자신의 남편을 잃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피티아를 불쌍히 여겨 인간으로 몸 바꾸기를 해 준 뒤,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의 신전을 지키게 했다. 아폴론이 예언의 신 노릇을 하는 것은 이 피티아 덕분이다.


아폴론은 피티아라는 여 사제를 통해 제우스의 뜻인 신탁을 인간들에게 내려준다. 피티아는 월계수와 보릿가루를 태운 후 지하로 내려가 트리푸스(Tripous)라는 삼각의자 위에 앉아서 땅 속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는 증기를 들이마시고 방문자에게 수수께끼 같은 말로 신탁을 내려주는데, 신탁에 대한 일체의 질문은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화에서는 운명의 기로에 놓인 영웅들이 델포이를 찾아와 그의 신탁에 따라 행동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에게 내려진 숙명적인 신탁이 대표적이다.

 

 

예언과 신탁의 신 아폴론이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화가 나 한 여인을 비극으로 몰아간 스토리텔링이 있다. 그 여인이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다.


그녀는 아폴론의 사랑을 받게 되지만 거부한다. 신과의 사랑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아폴론은 사랑의 대가로 그녀에게 예언의 능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예언의 능력을 선물로 받고서도 사랑을 거부하자 아폴론은 그녀에게 작별 키스를 한다. 그리고는 그녀의 입술에서 설득력을 빼앗았다.


설득력을 상실한 예언 능력은 카산드라를 불행하게 했다.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처럼 그녀는 남에게 말해줘야 듣지 않는 재앙을 미리 알아서 고통만 겪게 된다.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는 통찰력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아는 것이 더 큰 아픔이다. 설득력을 상실한 예언 능력을 소유한 카산드라는 조국 트로이의 멸망과 자신의 죽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예언하지만 끝내 설득시키지 못한다. 즉 어느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목마’가 트로이의 멸망을 초래하리라고 예언했지만, 트로이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트로이는 목마 속에 숨어 들어온 그리스 병사들에 의해 유린당했다. 그리고 트로이가 멸망한 후, 그녀는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전리품으로 미케네로 끌려온다. 그곳에서 카산드라는 자신과 아가멤논의 죽음을 예언하지만 마찬가지로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국 아가멤논의 처와 정부의 손에 처참하게 살해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