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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잃은 사막의 사이프러스, 그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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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잃은 사막의 사이프러스, 그 운명은?
  • 이충건
  • 승인 2016.12.25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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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건의 지구촌 생태여행] <5>알제리
이충건 | 세종포스트 대표 겸 편집국장

사하라! 메마르고 벌거벗은 땅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 새벽의 서광이 동쪽에서 비치기 시작하면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사막의 하늘은 마치 또 다른 세상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곳에서는 머나먼 행성도 가깝게 느껴진다. 어린왕자의 행성, 아니면 훨씬 더 큰 행성…. 위풍당당하게 펼쳐진 사막은 화성, 수성, 혹은 달과 친척관계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광대하고 원시적인 공간이다.

타실리나제르(Tassili-n’Ajjer). 알제리 동쪽 극단의 이 산악지대는 리비아와 경계를 이룬다. 타실리고원은 고생대에 형성된 사암(砂巖)으로 이뤄졌다. 해발이 1500m에서 2000m까지 자유자재로 변하는 곳이다. 이 고원이 대부분 광물로 이뤄진 하나의 세계임을 알려주는 나무가 있다. 바로 뒤프레즈 사이프러스(Cupressus dupreziana)다. 투아레그족이 ‘타루(Tarout)’라고 부르는 나무다.

20세기 들어서야 발견된 사막의 사이프러스

외계행성에 와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광대한 사하라사막.

이곳의 사이프러스는 20세기가 돼서야 발견됐다. 1868년 투아레그족에 관한 연구에 헌신하던 지리학자이자 탐험가인 앙리 뒤베리에(Henri Duveryier)는 사막 곳곳에 사이프러스가 숨겨져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집집마다 나무로 된 문턱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실제 사이프러스가 처음 확인된 건 그 후 반세기가 흘러서다. 식물학의 역사는 모리스 뒤프레즈(Maurice Duprez)를 최초의 발견자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타실리 남쪽 해발 1050m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 자네(Djanet)의 프랑스 군 기지 책임자이자 낙타기병 장교였다. 그는 자신의 관찰 결과를 당시 알제대학 식물학과 교수인 르네 메르(Ren Maire)에게 전했다. 이렇게 하여 정보는 ‘발견자’에서 ‘과학자’에게 남겨졌다.

타실리 사이프러스에 발견자 뒤프레즈의 이름을 헌정한 사람은 프랑스 여성 식물학자 에메 카뮈(Aime Camus)다. 국립자연사박물관 보고서를 통해서다. 그는 잔가지, 열매, 씨앗 등 몇 가지 특성으로 그 나무를 지중해의 전통적인 사이프러스와 구분했다.

타실리나제르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암벽화.

타실리 사이프러스는 비가 내려야만 흐르는 메마른 강바닥에 뿌리를 내린 채, 약 300㎢의 국한된 지대에서 자생한다. 1961년 4월의 마지막 날 헤아려진 개체 수는 153그루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나무들이 결코 생식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살아 있는 표본들이 너무 늙어버려 후손 없이 소멸할 운명에 놓인 것이다. 가장 어린 표본이 모두 100년을 넘긴 상태였다.

가장 압도적인 표본은 투아레그족의 언어로 ‘위엄 있는 자’ ‘번창한 자’ ‘융성한 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틴 벨릴리(Tin bellilit)’다. 이 나무는 둘레가 9m 이상이고 높이는 18m나 된다.

타실리의 사이프러스에게서 극히 드물지만 발아의 순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장 강력한 천둥이 내리친 후 순간적으로 비가 내리는 산봉우리에서 그런 순간이 일어난다. 그러나 다시 건조한 기후로 돌아오면 그 빈약한 생식의 가능성은 한꺼번에 사라지고 만다.

생태학기후학적 관점에서 본 사이프러스의 소멸

타실리나제르 고원의 뒤프레즈 사이프러스.

생태학자와 기후학자의 두 가지 관점이 사이프러스 자생지의 소멸을 설명해준다.

먼저 나무의 기초적인 생존 조건이 사하라사막의 건조함 때문에 변화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이 나무의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한다. 나이테를 계산해 연대를 측정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나무들은 장수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사하라의 건조한 기후가 수천 년 전부터 계속돼왔고 이러한 현상이 극도로 맹위를 떨친 1960-70년대 이래 가속화돼 왔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현재 사이프러스가 자생하는 타실리 에데이(Edehi) 고원의 강수량은 1년에 30㎜를 넘지 못한다. 극히 적은 강수량은 습도의 하락, 즉 공기를 건조하게 만든다. 그런데 공기가 건조하면 건조할수록 기온 차가 커진다. 사하라에서 사이프러스는 겨울밤 영하 7도까지 떨어지는 기후를 견뎌내야 한다. 이 나무들의 유년기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태학적 조건이 악화될수록 사이프러스의 자생지는 점점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표본이 대개 메마른 강에서나 발견되는 게 그 증거다. 그런 강에는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그나마 조금의 습기라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투아레그족 언어로 '위엄있는 자'라는 뜻의 '틴 벨릴리'는 뒤프레즈 사이프러스 중 가장 압도적인 표본이다. 둘레가 9m 이상이고 높이가 18m나 된다.

타실리고원에 훨씬 젊은 사이프러스가 넓게 분포했다는 다른 증거가 있다. 사이프러스의 꽃가루다. 현미경을 통해 이 꽃가루의 구조를 보면 타실리 사이프러스를 지중해 사이프러스와 구별할 수 있다. 놀라운 식물학의 규칙에 따라서다. 식물학의 규칙이란 인간에게 있어 지문이 그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꽃가루를 통해 신원확인이 가능하단 얘기다.

중앙 사하라와 북부 사하라에서 발견된 동물의 배설물 화석에서 사이프러스 꽃가루를 찾을 수 있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에 따르면 이 꽃가루들은 족히 4000~5000천년은 된 것으로 판정됐다. 이 시기 사하라는 틀림없이 오늘날보다 훨씬 습한 곳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증거는 기후의 커다란 변화가 어떻게 적응 능력의 한계에 도달한 종들의 죽음을 그들의 발자취에 남기게 되었는지를 조명해준다. 뒤프레즈 사이프러스는 소멸 직전에 조금씩 도달해온, 하지만 아직은 살아 있는 종이란 사실이다.

인간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투아레그족은 사이프러스를 건축자재로 사용했다. 앞서 얘기했든 앙리 뒤베리에는 집집마다 나무로 된 문턱을 보고 사이프러스의 존재를 확신했다. 사이프러스는 땔감으로도 사용됐다. 가축들은 어린 싹이 발아하면 뜯어먹으며 나무의 감소를 부추겼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과 자연이 동시에, 사하라 전역에서 증명된 식물의 소멸에 협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향 잃은 사이프러스, 식물원에서 멸종 벗어나

타실리나제르 고원지대에 위치한 인구 1만명 규모의 도시 자네.

그렇다면 뒤프레즈 사이프러스는 결국 멸종에 이를 것인가? 현재 우리는 죽은 표본이 살아 있는 표본보다 훨씬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식물 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매우 밀집해 있으며, 향내가 코를 찌르는 사이프러스는 한 그루의 표본이라도 높게 평가받을 테니까.

실제 국제자연보호연맹(UPN)은 긴급 구조가 요구되는 12종의 멸종위기 식물 리스트에 뒤프레즈 사이프러스를 포함시켰다. 후속 조치로 여러 식물원, 특히 메마른 지중해 지역에 광범위하게 심어졌다. 이를 통해 50개가 넘는 개체가 생식에 성공했다. 발아 가능한 사이프러스의 씨앗이 절대 부족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훌륭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사이프러스는 원예가들의 손에 의해 제2의 삶을 살기도 한다. 프랑스 앙티브(Antibes)의 국립농학연구소(INRA)는 진정한 ‘씨앗 과수원’을 형성하는 285개체를 수집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몇몇 화분에 뿌려진 사이프러스의 씨앗들이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빠르게 자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무를 이주시키려는 시도는 단번에 실패했다. 원예가들이 뒤프레즈 사이프러스를 베이루트에서 수입한 지중해 사이프러스로 대체했는데 모든 나무가 심은지 몇 주만에 모조리 죽어버린 것이다.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전형적인 지중해의 종이 사우디의 기후에 적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앙사하라의 광대한 지역에는 인간의 호의적 관심을 받는 동물들도 여럿 있다.

투아레그 말로 우다드(Oudad), 즉 바바리 양은 타실리나제르의 남부에 위치한 아이르(Air) 산악지대와 테네레(Tnr) 사막의 자연보호구역에서 보호받는 대표적인 멸종위기 동물이다. 아닥스(Addax), 도르카스 가젤(Gazella dorcas), 다마 가젤(Dama Gazelle) 등의 마지막 보루도 이 자연보호구역이다. 1982년에는 극히 희귀한 가는 뿔 가젤(Gazella leptoceros)이 처음 발견되기도 했다. 인간의 관심이 멸종위기 종들을 구하기에 충분할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사이프러스 닮은 알제리 북부 기독교공동체 사람들

타실리나제르 남부 아이르 산악지대와 테네레 사막 자연보호구역에서 보호받고 있는 멸종위기 동물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우다드(바바리양), 아닥스, 다마가젤, 도르카스 가젤.

타실리의 사이프러스는 여러 가지 이유로 본보기가 된다. 이 나무는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야 알려졌고, 과학자들에 의해 기록됐다. 이는 일반적으로 이전에 조사된 나무 종들 중에서는 흔한 경우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이프러스는 자연에서 그 소멸이 초미에 이른 시기에 발견된 종이다. 마지막으로 사이프러스는 건조한 기후를 견딜만한 범위 안에서는 메마른 땅에서도 경작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은 종이다. 이런 이유로 사이프러스는 과거의 종인 동시에 미래의 종이다.

슬픈 일이지만 알제리 북부의 기독교공동체에서 사이프러스의 운명과 유사한 인간의 조건을 만날 수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위협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그런 곳이다. 이곳의 기독교인들은 5세기 초 아틸라(Attila) 왕의 정복 이후 더 이상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이슬람의 오랜, 아름다운 관용의 전통과는 거리가 먼 무장이슬람 그룹의 공격 이후 그 옛날 번창했던 공동체는 급격히 쇠퇴했다.

사이프러스의 운명과 흡사한 이들의 운명 또한 소멸 외에는 다른 미래가 없어 보인다. 사이프러스가 자신의 고향과 멀리 떨어진 세계의 식물원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것처럼 알제리 북부의 기독교공동체도 구원은 피난을 떠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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