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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겨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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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겨야 하는 이유
  • 이길구
  • 승인 2016.11.0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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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구 박사의 계룡산이야기] <14>서울은 운(運)이 다했다

대한민국이란 배가 커다란 폭풍을 만나 흔들리고 있다. 폭풍이 사라지기는커녕 폭우를 동반하며 거대한 태풍으로 돌변할 태세다. 지금은 난세(亂世)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속았다’, ‘절망이다’ ‘좌절뿐이다’라고만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나름 대책과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지,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신중해야 할 때다. 이럴 때일수록 ‘대한민국’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만약 이 험한 폭풍을 이겨내고 무사히 배를 구한다면 더 강하고 힘찬 새로운 대한민국이 탄생될 것이다.


오늘 필자는 다소 생뚱맞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건 서울의 청와대를 비롯한 국회의사당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국방부도 여기에 포함된다. 아니 이번 기회에 수도(首都)를 옮기자는 말이다. 종착지는 ‘계룡산하(鷄龍山下)’이다. 계룡산 주변의 세종시, 계룡시, 논산시, 공주시 등 계룡산 가시권에 있는 곳이다. 기실 이 이야기는 내년 대통령선거 때 각 당이 공약으로 채택해야 할 숙명(宿命)을 안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한 여인(?) 때문에 미리 앞당기게 됐을 뿐이다. 계룡산을 연구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이 역시 운명(運命)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앞으로 3회에 걸쳐 왜 청와대 등 수도가 계룡산아래로 옮겨야 하는지 꼭꼭 찍어서 알아보고자 한다. 연재 순서는 ①서울은 운(運)이 다했다. ②왜 계룡산인가 ③정부 형태는 어떤 것이 좋은가 이다. 많은 관심과 격려, 그리고 지도편달을 구하고 싶다.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 의도

 


우선 지금의 청와대를 한번 살펴보자. 현재의 청와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에 위치해 있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이 건물은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해 부속건물이 있고,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후원 및 연못 등을 갖추고 있다.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1960년 8월까지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명명으로 ‘경무대(景武臺)’로 불렸다.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 윤보선(尹潽善)이 선출되면서 ‘청와대’로 개명했다. 이 명칭은 ‘대리석으로 된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이어져 있는데서 연유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이궁(離宮)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1426년(세종 8년) 창건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밖으로, 후원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북악산 산록에 위치해 서울 시내를 전망할 수 있는 이곳은 어영(御營:조선시대, 인조반정 뒤에 조직한 군대의 하나)의 연무장(鍊武場)이나 과거장(科擧場)으로 사용됐다. 그리고 이 울안에는 원래 융무당(隆武堂)과 경농재(慶農齋:조선 말엽 경복궁의 뒤뜰에 있던, 각 도의 그 해 농사가 잘되고 못됨을 알아보던 집) 등이 있었다.


현 청와대 자리는 1910년부터 경복궁을 조선총독부의 청사 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후원에 있던 건물들을 다 허물고 총독관사를 새로 지어 7·8·9대 총독이 사용했다. 일본인들이 여기에 관사를 지은 것은 조선 왕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로막기 위해서였다. 왕궁 앞에 청사를 짓고 그 뒤편에는 총독관사를 지음으로써 조선왕실의 기를 누르고 풍수지리학 상 용맥(龍脈)을 끊어 민족정기를 말살해 이 나라를 영원히 지배하고자 했던 것이다. 높은 곳에서 보면 총독관사 건물은 대(大)자의 모양을, 총독부 청사건물은 일(日)자의 모양을, 서울시청 건물은 본(本)자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 세 글자를 이으면 ‘대일본’이 된다.


그 뒤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되던 구(舊) 청와대 건물은 1993년 11월 철거됐다. 1989년에 집무실과 관사를 분리하면서 구 청와대 본관을 역대 대통령의 기념관 및 박물관으로 보존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국민의 자긍심을 되살린다는 의미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철거된 것이다. 일제의 잔재를 없앤다는 이유로 철거한 것까지는 나무랄 것이 없지만 문제는 건물만 없애고 자리(위치)를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풍수에서는 건물보다는 땅의 자리를 중요시한다. 땅이 결정된 다음 건물을 짓는 것이다. 해서 문제가 있는 땅에 대한 건물은 논할 가치조차 없다. 필자는 풍수지리에 대해 조금은 알지만 별로 신봉(信奉)하지 않는다. 풍수는 기초자료로만 활용할 뿐이다.


그럼 현재의 청와대자리는 어떤가. 앞서 분석했듯이 고려, 조선,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풍운(風雲)을 다 겪은 곳이다. 그러니 어느 누구라도 청와대만 들어가면 사달이 난다. 아니 그곳에 들어가면 바보(?)가 되어 나올 때는 성한 모습(?)으로 나오는 이가 드물다. 역대 청와대에 들어간 대통령의 말로(末路)에 대해서는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같이 청와대에 있으면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지금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농단(壟斷)에서 시작해서 농단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와대는 농단(壟斷)만 하는 자리(?)

 


지금 우리가 방송이나 신문에서 제일 많이 접하는 단어가 바로 ‘농단(壟斷)’인데 이 기회에 어디에서 유래됐는지 한번 알아보자. 이 말은 《맹자(孟子)》에 나온 말로 원문에는 ‘용단(龍斷)’으로 되어 있다. 원래 ‘龍(용’)자는 ‘壟(농)’과 같이 ‘언덕’이라는 뜻으로 쓸 때에는 ‘농’이라고 읽는다. 농단의 유래는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뜻하며, 대개의 경우 비난하는 뜻이 담겨 있다. 《맹자》 〈공손추(公孫丑)편에 보이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는 시장에서 본인이 남는 물건을 남과 필요한 물건과 바꾸었다. 시장에는 다스리는 관리가 있어 부정한 거래 행위만 단속하였지 세금을 징수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욕심 많은 장사치가 있어 높이 솟은 언덕(壟斷)을 차지하고는 시장 전체를 둘러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시장의 모든 이익을 독차지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자를 비난하였고 관리도 처음으로 이 농단한 장사치에게 세금을 징수하게 되었다. 이것이 상인에게서 세금을 징수하게 된 시초였다.
(古之爲市者, 以其所有易其所無者, 有司者治之耳. 有賤丈夫焉, 必求龍斷而登之, 以左右望而罔市利. 人皆以爲賤, 故從而征之. 征商, 自此賤丈夫始矣.)


즉, 농단은 앞서 말한 것처럼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좋은 자리는 당연히 권력(權力)이 있는 곳이다. 그러니 지금은 ‘청와대’라고 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강하게 농단을 부리는 부류는 대통령에게 제일 신임을 받는 자 들이다. 일명 ‘문고리 삼인방’과 그 주변의 인물들이다. 지금 매일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 서는 사람들이 바로 ‘농단’의 대표 선수들이다. 청와대 뒤편 북악산 꼭대기에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서울전경을 바라보면서 ‘농단’을 부린 것이다. 대한민국 청와대 농단의 역사는 30년이 넘었다. 지금의 청와대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살피는 곳이 아니라 ‘국정농단(國政壟斷)’의 자리로 바뀐 지 오래됐다.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기와 운 다한 서울, 경제수도로 만족해야

 


잘 알다시피 조선은 1392년 개국하여 일본에 의해 1910년 망했다. 518년 만에 망한 것이다. 일본에 의해 35년간 식민지로 살다가 1945년에 해방되어 그로부터 지금까지 71년이 지났다. 한양인 서울에 조선이 도읍한지는 무려 52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한 마디로 서울의 기(氣)와 운(運)이 다 했다는 말이다. 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로서 기능을 다하기에는 주변의 여건이 너무나도 변했다. 경제수도로 만족해야지 정치, 행정수도로는 적합하지 않다. 서울은 더 이상 미래도 비전도 희망도 없다.


이에 대한 대답은 자명(自明)하다. 세종시가 대안(代案)이며 계룡산이 해답이다. 대한민국 행정기관의 3분의 2가 세종시, 대전시 주변에 산재한다. 대한민국의 국방을 책임지는 육해공군본부 등 군 수뇌기관 및 교육기관의 대다수가 계룡시, 논산시, 대전시에 둥지를 튼 지 오래됐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이 자리를 옮기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 기관이 이전한 다음 옮기는 것이 상책이다. 더구나 무관(武官)인 군 관련기관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는가. 계룡산 신도안에 계룡대가 들어 온지 30년 됐다. 청와대가 이곳 주변으로 올 때가 된 것이다.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진행됐음에도 진작 ‘최고의 자리(청와대)’는 불변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곳에 도읍을 옮기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굳이 ‘정감록(鄭鑑錄)’을 운운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지금 이 난국을 풀 수 있는 길은 간단치 않다. 자칫하면 더 큰 혼란만 초래할 수도 있다.


필자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특단으로 청와대와 수도이전을 제시한다. 청와대 이전의 당위성은 앞서 설명했고 국방부는 청와대보다 더 시급하다. 현재 국방부는 서울의 한 가운데서 북한의 사정권 1순위에 위치해있다. 인근에 있던 미군부대도 평택으로 이전하고 북한의 도발이 더 심해지는 것을 감안할 때 국방부의 현 위치는 극히 위험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청와대와 함께 국방부도 계룡산권 주변으로 이전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회의사당은 민의(民意)의 대변기관이다. 더구나 대다수 행정기관이 세종시에 있으니 ‘분원’ 운운하지 말고 온전히 다 이전해야 한다. 세종시는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민의의 중심’으로 하루빨리 자리 잡아야 한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번 기회에 청와대 등 수도를 옮기는 문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청와대와 서울의 지기(地氣)가 다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안으로는 정부의 행정기관 국방관련기관이 대다수 이전해온 세종시를 비롯한 인근 계룡산주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다소 현실성이 부족해 보이지만 앞으로 있을 정치적 일정을 고려해 본다면 이 문제가 반드시 수면 위로 드러나 대통령선거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다.

 

필자 이길구 박사는 계룡산 자락에서 태어나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계룡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 산의 인문학적 가치와 산악문화 연구에 몰두하여 ▲계룡산 - 신도안, 돌로써 金井을 덮었는데(1996년)  ▲계룡산맥은 있다 - 계룡산과 그 언저리의 봉(2001년)  ▲계룡비기(2009년) ▲계룡의 전설과 인물(2010년) 등 저서를 남겼다.
 
‘계룡산 아카이브 설립 및 운영방안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기록관리학 석사(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를, 계룡산에 관한 유기(遊記)를 연구 분석한 ‘18세기 계룡산 유기 연구’,  ‘계룡산 유기의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하여 한문학 박사(충남대학교 한문학과)를 수여받았다. 계룡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지금도 계룡산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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