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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과 주술의 의료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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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과 주술의 의료시대
  • 이승구
  • 승인 2016.10.2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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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12> 고갈

의학의 역사에서 17세기 유럽의 치료법들은 황당한 것이 너무 많아 양질의 치료라고 볼 수 없다. 내과 의사들은 소위 마법의 약이나 점성술, 종교에 심취해 있었다. "악(惡)은 약으로 치료"한다며 가능한 흔치 않고 비싸거나 가장 역겨운 치료제들을 약효가 뛰어난 것처럼 마구잡이로 처방했다. 미라 가루, 빻은 유니콘 뿔, 비버 향, 게다가 악마의 똥이라 불리며 끔찍한 냄새를 풍기는 아위 뿌리 등을 점성학적 주술을 외우면서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피 뽑는 게 최상의 치료… 피 뽑다 동맥·신경 잘리기도

 

당시 위대한 식물학자였던 칼 린네(1707-1778)는 자신의 저서 <자연적 식이요법>(1733년)에서 "사람의 몸에서 분비되는 것들은 사람에게 불결하고 해로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몸을 청결하게 하고 배출시킬 수 있는 발한(發汗), 방혈(防血), 구토, 설사·관장(灌腸)을 가장 강력한 치료법으로 삼아 소위 고갈치료(枯渴治療)를 시도했다. 이중 발한, 구토 및 관장 등은 중국의학에서도 중요시 했지만, 이런 상황으로 보면 과거 우리 어르신들의 처방인 약초, 무당굿, 침, 뜸 정도는 최소한 환자에게 역겨운 해를 입힌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고대의 4체액설은 인체 내 네 가지 체액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쾌활하고 뚱뚱하면 다혈질이라 피를 조금 빼야 몸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통 작은 칼로 팔꿈치 언저리의 정맥을 잘라 0.5~2.0ℓ의 피를 뽑는 방혈(放血, blood letting)이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염병 환자들은 물론 건강한 사람들도 주기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목적으로 피를 뽑았는데, 잔인한 영국 여왕 ‘피의 메리’를 비롯해 영국왕실에서도 방혈시술을 받았다.


19세기 초반에는  방혈 도중 실수로 팔의 동맥을 절단하거나 신경을 자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더해 피에 굶주린 거머리를 몇 마리씩 피부에 올려놓아 지속적으로 출혈을 유지시키기도 했다. 거머리를 이용한 혈액응고 방지와 지속적 출혈유도는 현대 수지 절단 등의 문합술 후에 활용되기도 한다.

 

상류층 집집마다 관장제·설사제 비치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치료법은 환자의 피를 뽑는 방혈이었지만 설사 및 장 청소 또한 유행이었다. 상류층 귀족들은 정기적으로 관장을 했고 집집마다 관장제와 설사제 단지가 있을 정도였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家) 출신 캐서린 여왕의 시의인 장 페르넬이 그의 저서에서 밝힌 관장용 도구는 분출구 주변에 말린 돼지 방광을 입힌 것이었다. 관장액으로는 소금과 물, 약초 탕약으로 만든 진정제를 사용했다.


하제와 관장제가 열풍을 일으켰던 시대였던 만큼 루이 14세 시대의 베르사유 궁전 재산 목록에는 변기가 264개나 있었다. 이들은 용변을 보면서 편안한 환경과 값비싼 직물로 감싼 세련된 장식을 즐겼다.


하제로는 인도의 파두나무에서 짜낸 파두기름이나, 유럽 오이형 과일 수프에서 짜낸 콜로신드 약제 등을 사용했다. 소량만을 복용해도 독한 기름 냄새로 위가 뒤집혀 구토를 유발했다고 한다.


중세시대에는 점성술이나 종교적 권위, 왕권(王權) 등이 환자의 치료나 시민의 건강보다 앞섰고, 어떻게 보면 이 시대의 고갈요법은 이에 무조건 동조한 당시 내과 의사들의 무지한 소치인 것으로 보인다. 17-18세기의 황당한 의술이었지만 이후 이들의 실수는 근대화된 현대 의술을 태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문진료분야>
-소아정형, 골·관절 및 연부조직 종양, 수부정형, 류마티스질환
-골절정복술, 건, 인대, 신경수술, 양성종양절제술 등 1만6400여 수술례

 

<주요 약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 주임교수
-여의도성모병원 부원장
-영국 옥스포드 Nuffield Center 정형외과센터 유학
-근정포장 및 훈장(2004)/ 옥조근정훈장(2013)
-SICOT 및 WPOA 국제위원
-대한골관절종양학회 회장(前)
-대한수부외과학회 회장(前)
-대전선병원 정형외과 과장(現)
-대전선병원 국제의료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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