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뉴스픽
      실시간 댓글
      정은진의 컬러풀 세종
      현장 포착 '세종은 지금'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나이팅게일 전까지 1500년간 간호사의 암흑기
      상태바
      나이팅게일 전까지 1500년간 간호사의 암흑기
      • 이승구
      • 승인 2016.10.13 1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구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10>최초의 간호사들

      간호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250년경 이집트 람세스 2세의 한 석회암 비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왕들의 계곡에 신전을 건축할 때 환자를 보살피는 사제와 부역의 의무가 없는 여성들이 사제들의 치료 보조 일을 했다고 한다.


      기원전 500년경에는 인도에서 부처가 확립한 수도승 체계 중 도움 간호사가 있었다. 이들 간호사는 청결해야하고, 지적이고, 박식하고, 환자에 대한 동정심이 많아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성자(聖者) 카시야파는 간호사는 모름지기 신경질적이지 않아야 하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대 인도의 의사 수스루타가 쓴 ‘수스루타 상히타(Susruta Samhita)’에는 간호사로 적합한 사람은 냉철한 정신과 상냥한 태도를 갖추고 결코 험한 말을 하지 않으며 강인하고 병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끈기 있고 꼼꼼하게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다. 이 간호사의 규정은 그로부터 2500년이 지난 1905년 영국의 ‘백의의 천사’라 일컬어지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규정한 오늘날의 ‘나이팅게일 선서’ 내용과 비슷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성을 가치 있는 하나의 온전한 의료 행위자로 인식하지 않았다. 당시의 의사들은 “절대 아무에게나 환자를 맡기지 마라. 그가 저지른 실수는 분명 당신에게 돌아온다”는 신념으로, 보조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면 다른 젊은 의사들을 채용했다. 여성은 유일하게 탯줄을 자르는 산파(産婆)들 뿐이었다.


      이후 중세시대 기독교의 확산은 간호에 대한 상반된 두 가지 개념을 탄생시켰다. 사랑을 강조하며 병든 이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기본적 기독교 정신과 신의 뜻을 따라 모든 환자의 치료는 하나님과 성자들에게 올리는 기도로만 치유된다는 종교적 강요였다. 이러한 사회 환경에서 간호 의료는 오랜 침체기간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370년 터키 카파도키아의 ‘바실리아스’라는 의료 보호소와 390년 로마의 부자였던 여인 파비올라가 세운 최초의 고대 병원 등 일부에서 간호사들의 역할이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1341년에는 뱅상 드 폴(Vincent de Paul)에 의해 창시된 ‘수녀들의 구호단(daughter of charity)’에 의해 환자를 구호하고 보살피는 교회의 병원 구제역할이 태동했다.

       


      이후 약 1500년의 간호 의료 암흑기를 거쳐 영국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이 최초로 정식 간호학교를 세우게 된다. 그는 30세 때 이집트 여행 중 알렉산드리아 병원의 열악한 시설과 최악의 위생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환자들을 보고 정식 간호사를 양성·교육할 간호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이후 독일 카이저 벨트의 개신교 학교에서 간호학을 공부했다.


      당시 나폴레옹 전쟁이후 러시아의 남하정책으로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 오스만 투르크 제국 연합 간 크림전쟁(1854-1856)이 발발하자 나이팅게일은 38명의 성공회 수녀들과 함께 야전병원에서 의료 활동을 벌였다.


      그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헌신적 간호를 하여 최초의 ‘백의의 천사’로 불렸다. 당시 야전병원의 실상은 매우 열악하여 위생상태가 엉망이었고 간호 보급품도 없어 부상병들은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이에 나이팅게일은 당시에는 생소하였던 통계자료를 만들어 월별 병사들의 사망원인, 사망자 수를 색깔별로 구분했다. 이 그래프로 당시 영국 여왕인 빅토리아 여왕을 쉽게 설득해 군병원의 병실을 혁신적으로 개선하고 간호사 양성소를 세웠다. 또 중환자실(그림)의 개념을 최초로 제안하면서 병원 환경 개선에 여왕과 정부의 협조를 이끌어 냈다.

       


      나이팅게일은 “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종교나 철학이 아니라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신(神)을 이해하려면 통계학(統計學)을 배우라”고 통계를 예찬하기도 했다. 1858년 영국 왕립 통계학회 최초 여성 회원이 되었으며, 1907년에는 그때까지 여성에게는 한 번도 수여되지 않았던 영국 최고의 훈장인 메리트 문화훈장을 받았다.


      이후, 간호대학을 졸업하는 신임 간호사들은 졸업식장에서 간호 모자를 쓰면서 나이팅게일 선서를, 신임 의사들은 의과대학 졸업 식장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면서 자신의 평생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환자 치료에 대한 의무와 권리를 수행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