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이완구의 고집
상태바
이완구의 고집
  • 이길구
  • 승인 2016.10.02 17: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길구칼럼] 전 언론인 | 한문학박사

역시 이완구다. ‘뚝심의 사나이’였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건강을 챙기면서 쉬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노’라고 했다. ‘자신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는 그 결과를 똑똑히 보여줬다. 또다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완구. 한자로는 李完九다. 그는 조선을 지배했던 전주이씨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소수 성(姓)인 여주이씨(驪州李氏)다. 하지만 여주이씨를 얕잡아 봤다가는 큰 일 난다.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자. 고려의 문인(文人)으로 백운거사(白雲居士)로 잘 알려진 이규보(李奎報), 성리학의 주리론(主理論) 선구자 이언적(李彦迪), 실학(實學)의 할아버지격인 학자 이익(李瀷), 택리지(擇里志)를 저술한 지리학의 선구자 이중환(李重煥) 등이 있다.
 
하나같이 학자이면서 그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흔히 말해 고집(固執)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완구 역시 이런 집안의 피를 받았으니 다른 것은 몰라도 고집만큼은 대단하다. 이는 잘 나가던 지방경찰청장을 던지고 정치에 참여했던 일, 국회의원을 출마하지 않고 칩거했던 일, 도지사를 던지고 야인이 됐던 일, 혈액 암에 걸리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일, 그리고 성완종 사건에 엮여 국무총리를 물러났던 일 등 …. 그의 역사는 모두 순탄하지 않은 자아(自我)와의 싸움이자, 결단의 연속일 뿐이었다.

 

고집과 함께한 그의 결단이 성공할 가능성은 항상 10%가 넘지 않았다. 충남경찰청장을 던지고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는 지역의 정치세력인 자유민주연합과 싸워 충청권에서 혼자 살아남았다. 지역 정서적으로 재선을 거쳐 3선 고지에 쉽게 오를 수 있었는데도 그는 명분(名分)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포기했다. 자신을 책임져줄 세력이 없었는데도 그는 도지사를 던지고 기꺼이 야인(野人)이 됐다.

 

이후 오히려 주변에서 질시와 증오, 그리고 사찰(査察)만이 그를 괴롭혔다. 그가 혈액 암이라는 중한 병에 걸린 것은 이 같은 결단에 대한 가혹한 대가였다. 한 사석에서 그는 “가장 가슴 아플 때는 내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이 떠날 때”라고 고백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모든 것을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국무총리가 되자마자, ‘최단명의 비리 국무총리’라는 오명(汚名)이 자신에게 남겨질 줄은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는 10%가 넘지 않는 확률과 싸우면서 하나하나 잘 헤쳐 나가고 있다.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지금도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고집(固執)이라는 용어에 대해 아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사전적인 용어의 ‘고집’은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티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흔히 ‘고집이 세다.’, ‘고집을 부리다’라고 하는데 이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그러나 고집을 한자로 보면 굳을 고(固), 잡을 집(執)이다. 글자그대로 ‘굳게 잡는 행위’로 개인의 신념이나 투철한 관점, 그리고 무엇에 대한 지속적인 행위 등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때로는 장인들의 외길인생을 ‘외고집’이라 표현하고,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신념을 꼿꼿이 지키는 행위 또한 ‘고집’이라고 한다. 따라서 ‘고집’이란 개인의 철학이나 신념을 위해 현실을 부정하는 다소 비이성적인 행위로 타인들의 공감을 살만한 행동들을 일컫는다. 이 때문에 질타를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굳건한 자신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아집(我執)’은 분명 다르다. ‘아집’의 사전적인 뜻은 ‘자기중심의 생각에 집착하여 타인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내세우는 것’으로 해석된다. 고집과 비슷한 행위이지만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 앞서 ‘고집’이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개인의 신념을 지키는 것인데 반해, ‘아집’이란 온전히 부정적인 뜻만이 존재한다. ‘고집’과 ‘아집’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고집’에 보편성과 공감대가 있다면, ‘아집’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에게 합당한 이유를 견주어보고, 또 그것이 충분히 공감을 살만한 사항이면 ‘고집’이고, 자신의 행위에 합당한 이유도 없고 또한 이유조차 말하지 않고 자기중심의 사고에 집착하는 것을 ‘아집’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다시 돌이켜보자. 이완구의 재판은 항소심이 끝나 이제 마지막 관문인 대법원을 거쳐야 한다. 잘 알다시피 대법원은 사실심(事實審)이 아닌 법률심(法律審)이다. 항소심에서 대법원의 판결이 변경될 확률은 1%미만이다. 법률심이니만큼 항소심 판결 내용에 대해 법률적으로 잘못 적용됐는지 만을 판단한다. 논란이 되면 모를까 2~3개월 지나면 기각(棄却) 결정을 내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늦어도 6개월을 넘기지 않는 것이 관례다. 정치적인 사건이고 이완구 전 총리의 정치적인 명예까지 고려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끝낼 수도 있다. 일부 언론에서 벌써부터 ‘충청대망론’ ‘반기문대망론의 대안(代案)’을 언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완구 전 총리 입장에서는 성완종 사건과 관련해 정말 억울한 부분이 많다. 하필이면 인생에서 제일 잘 나갈 때 뜻하지 않게 ‘눈탱이’를 강하게 맞았다. 총리 역할을 잘해 능력 있는 ‘정치총리’로 충청권 대권후보까지 넘볼 절호의 기회였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는 최단명 국무총리라는 불명예에다가 비리정치인으로 낙인찍히지 않았는가.

 

이완구의 인생철학은 세 가지다. 첫째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고, 둘째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이며, 마지막이 고집이다. 여기에다 하나 더 추가 하라면 ‘지는 싸움 안하기’다.

 

사필귀정은 ‘일에는 반드시 옳음으로 귀착된다’는 뜻이고, 역지사지는 ‘모든 일을 처리할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처리한다’는 의미다. 고집에 대해서는 앞서 장황히 설명한 바 있다. ‘지는 싸움 운운’은 인생철학보다는 정치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항상 공언하기를 ‘선거에서 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절대 지는 선거는 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그는 선거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이 역시 그의 ‘고집철학’에서 나온 결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한자이름에 운명이 내재돼 있지 않았나 싶다. 그의 이름을 한자풀이하면 ‘완전할 완(完)에 아홉 구(九)다. 숫자로 아홉은 마지막 최고의 수고, 완전하다는 것은 조금도 빈틈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토록 고집을 부리고 완벽(完璧)한 인간이 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이완구의 항소심 무죄소식은 충청인에게는 다소 반가운 소식이다. 그가 국무총리로 임명됐을 때 그에게 거는 기대가 자못 컸다. 그래서 실망도 컸을 것이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재판에서 죄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특히 그가 앞서 한 말이 모두 거짓이 아닌 사실로 판명이 난 것은 큰 소득이다. 총리사퇴가 거론될 때는 그를 ‘거짓말쟁이’로 여겼던 민심이 ‘오죽했으면 목숨과 바꾼다고까지 했겠느냐’는 쪽으로 변화했다. 그에게는 긍정적 신호다.

 

끝으로 그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하나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충청인 이 바라는 고언(苦言)일 것이다. ‘고집도 좋지만 겸손(謙遜)했으면’하는 마음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결과가 그의 고집과 자신감 때문에 빚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이젠 자신감이나 고집보다는 충청인의 소양인 겸양지덕(謙讓之德)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겸양의 덕만 무장한다면 그는 충청의 인물을 넘어 더 큰 인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성인군자도 완전한 사람은 없다. 다 부족해서 보태고 도와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수많은 제자 중 가장 사랑한 제자는 안자(顔子)였다. 그는 잘 나지도 못하고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불천노(不遷怒)와 불이과(不貳過)를 온 몸으로 실천했다.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완구 전 총리가 가슴에 새겨줬으면 한다.

 

*외부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