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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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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6.06.14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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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서 아줌마학교 운영하는 윤숙(45) 작가
자존감 잃은 여성들의 '행복한 아줌마' 되기


흔히들 아줌마하면 ‘수다’를 떠올린다. 아줌마처럼 말 많은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싶지만, 사실 잘 들어보면  아이와 남편 이야기뿐이다. 

세종에는 자신의 이야기에 서툰 엄마들, 육아에 치여 빛을 잃어버린 여성들을 위한 ‘아줌마 학교’가 있다. 지난 달 『나는 글 쓰는 여자다』를 출간한 윤숙(45) 작가가 바로 이 학교 선생님이다.

전업주부 4년, 다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윤 작가는 2014년 10월 세종시 첫마을로 이주했다. 대부분의 세종시 여성들이 그렇듯이 남편의 직장을 따라 낯선 도시에 새 터를 잡았다.

2013년부터 온라인 카페로 운영했던 ‘아줌마 학교’는 세종시로 오면서 오프라인 학교가 됐다. 최근 아줌마 학교 2기 학생들이 졸업했고, 3기는 개강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연극 연출을 전공했어요.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뒤 둘째를 낳고 나서는 4년 간 전업주부로 살았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결혼 생활의 답답함 때문이었어요.”

졸업 후에도 소설이나 시를 써서 등단하고 싶다는 욕구가 없었다. 그런데 결혼 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나를 알고 나니 삶이 평화로워졌다”는 게 그의 전언. 첫 책 『아줌마 당신은 괜찮은 사람입니다』는 바로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 연재했던 블로그 글에 수많은 비밀댓글이 달렸어요.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과 자기 가치를 잃어버린 여성들의 목소리였죠. 글쓰기와 연극 연출을 살려 이들을 위한 재능기부를 해보자고 생각했고, 세종시 아줌마들을 모았습니다.”

글쓰기 통한 ‘자기 객관화’ 수업

아줌마 학교 신청 서류를 받기 시작하면서 놀랄만한 이야기들을 접했다.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는 호소부터 심각한 우울증까지. 타인과의 대화·소통 없이 육아에 매달려 지내온 여성들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글쓰기 강의를 시작했다. 매번 글쓰기 숙제를 내면서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창작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 배우로 나서게 하면서 그들만의 연극도 완성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강의를 통해 ‘나’와 ‘나의 기억’을 객관화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자신의 가난과 불행한 가정환경 등을 탓해왔지만, 나만큼 혹은 나보다도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로 과거는 객관화 되는 거죠. ‘과거를 이유로 내가 변명하고 있었구나’를 깨닫게 되면서 털어내는 거예요.”

아줌마 학교 1기 학생들은 대부분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다. 엄마라는 존재만으로 가지게 됐던 죄책감을 극복하고 다시 사회로 발을 내딛은 것이다.

“졸업생들은 다시 일을 시작하거나 대학원을 가기도 하고, 글을 쓰는 일에 빠지기도 했어요. 또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재능 기부자가 되기도 했죠. 오히려 다들 너무 바빠지는 바람에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됐어요(웃음). 글쓰기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찾은 겁니다.”

당시 세종에서 진행했던 글쓰기 수업은 그의 두 번째 책인 『나는 글 쓰는 여자다』에 담겨 지난 5월 출간됐다.


‘삶의 균형’, 행복한 아줌마의 조건 

여성, 주부, 중년 등의 단어를 마다했다. 굳이 ‘아줌마’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무얼까. 

“아줌마라는 단어는 사실 ‘주머니’와 ‘씨앗’이 합쳐진 단어로 아기집을 가진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는 부정적인 인식을 함축하고 있는 게 사실이죠. 아줌마가 아가씨보다 훨씬 근사한 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는 집 안에서도 출퇴근이 정해져있는 삶을 산다. 이 시간만큼은 오로지 글에 집중한다는 것. 삶의 균형, 아줌마 학교의 존재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생이라는 화단이 있어요. 엄마의 화단 옆에는 아이와 남편의 화단이 있고, 엄마는 자신의 화단을 깔고 앉아 아이와 남편의 화단을 지극정성으로 가꾸죠. 하지만 남은 건 빈 밭뿐이에요.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의 여성들은 비로소 이 허무함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4년 간 전업주부로 살면서 느낀 즐거움은 잠시였고, 이내 ‘나 뭐하고 있지?’라는 의문으로 괴로운 날들을 보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있는 일반 신도시와는 달리 세종은 정말 공무원스러운 도시예요. 특히 이곳 엄마들의 처지는 대부분 비슷하죠. 경력단절을 비롯해 타의로 이루어진 낯선 도시로의 이주,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어요.”

원치 않은 경력단절을 겪은 30, 40대 젊은 기혼 여성들이 많은 세종시. 아줌마 학교를 운영 중인 그가 세종시로 온 건 어쩌면 운명 같은 일이다.

공동출자로 공간 마련, "새로운 직업 창조할 것"

최근 윤 작가는 아줌마 학교 운영에 집중하기 위해 마음 맞는 졸업생들과 함께 공동 출자를 감행, 작은 공간을 임대했다.  

7월부터는 이곳에서 3기 학생들의 수업이 진행된다. 매주 화요일에는 오전 10시20분부터 2시간가량 글쓰기 강의를 하고, 매주 수요일에는 연극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여성들의 재취업이 어려운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존 사회 시스템과는 일과가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아줌마 학교를 육아와 자기개발을 병행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이 곳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직업을 창조해 경제활동으로도 연계할 계획이에요.”

누군가의 엄마, 아내로 살아온 날들. 그들도 언젠가는 간절한 꿈이 있었고, 자기 밖에 모르던 때가 있었다. 스스로 갇혀 있던 여성들이 서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려 한다. 이들의 움직임을 모두가 응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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