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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국' 부자(父子)의 세종시 동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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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국' 부자(父子)의 세종시 동업기
  • 한지혜
  • 승인 2016.01.27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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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 고운동 '꺼먹지 황태진국' 류익선(53), 류재현(25) 부자

아버지 ‘육수’내고, 아들 ‘식당 경영’
강원도 황태, 6시간 우려내야 ‘진국’ 완성
새우젓 간에 부추 곁들여야 ‘제 맛’

오랫동안 푹 고아서 걸쭉하게 된 국물을 ‘진국’이라고 한다. ‘참되어 거짓이 없는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여기 황태로 진국을 만드는 부자가 있다. 고은동 ‘꺼먹지 황태진국’ 류익선(53), 류재현(25) 부자. 아들과 아버지가 ‘황태’로 뭉쳐 세종시에 둥지를 틀고, 동업을 시작했다.

“평생 전기사업을 해왔고, 요식업은 꿈이었습니다. 원래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나이가 드니 몸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지더군요. 정월 대보름이면 어머니가 해주셨던 시래기 볶음도 그리워지고요. 그래서 꺼먹지와 곁들일 황태음식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꺼먹지’는 무청으로 만든 시래기를 뜻한다. 지난 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해 먹은 음식으로 유명세를 탔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꺼먹지는 단무지 공장 사장님을 통해 공수해 한 트럭씩 담가요. 꺼먹지는 말려서 보관하는 방법, 삶아서 냉장 보관하는 방법이 있지만 저는 고추씨를 넣고 염장해 보관합니다. 요즘은 손님들이 하도 많이 드셔서 감당이 안 될 지경입니다(웃음).”

카운터 앞에 한 장의 사진이 붙어있다. 아버지 류익선 씨가 가게 2층에서 직접 육수를 끓이고 있는 모습이다.

“깊고 진한 국물을 의심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들기름에 볶아 제가 직접 끓입니다. 직접 황태를 두드리다보니 너무 팔이 아파 시중에 없는 기계를 주문해 들여놓기도 했어요. 지금의 육수를 만들어 내는 데까지 딱 6개월이 걸렸는데, 이렇게 저렇게 끓여보면서 쓴 황태값만 2000만원이라고 농담처럼 얘기합니다. 육수는 끓이는 데만 6시간이고, 이틀 정도 냉장 숙성시키고 있습니다. 숙성을 거치면 더 맛이 깊어지거든요.”

오랜 시간 끓여낸 황태진국,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에 대해 물으니 그가 한 가지 고충을 털어놨다.

“가장 맛있게 드시는 방법은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부추를 넣어먹는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이나 청양고추를 넣곤 하는데, 황태는 매운 성분이 들어가면 특유의 고소한 맛이 사라져요. 그래서 깍두기 국물을 넣어 드시는 분을 발견하면 우리 직원이 바꿔다줍니다.”

진국과 같이 곁들여 먹는 ‘황태구이’. 이 구이의 특제 소스는 아들 류재현 씨가 전담하고 있다.

“양념은 제가 맡고 있습니다. 강원도에서 물어물어 전수받아 배웠어요. 양념은 기본 2주에서 3주정도 숙성시키고, 황태에 바른 후 다시 하루 동안 숙성시킵니다.

‘황호돈가스’는 황태와 단호박,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메뉴로 인기가 좋아요. 돼지고기와 황태만으로는 식감이 거친 편인데, 부드러운 단호박을 넣어 단맛과 식감을 살렸죠. 고기도 얇게 서 너 장 깔고, 황태도 일일이 비벼서 가루로 묻혀 부드럽게 튀겨냅니다.”

강원도는 황태가 유명한 지역이다. 류 부자 역시 강원도 황태를 으뜸으로 치고 있다.

“전국을 돌아 강원도 대관령 황태를 선택했습니다. 하얗지 않고 노르스름한 게 잘 만들어진 황태예요. 진국에는 가장 통통한 왕특(50cm이상) 사이즈를 사용하고, 구이로는 특(45~50cm) 사이즈가 알맞습니다.”
 
그가 아쉬워하는 한 가지, 사업 확장을 함께 할 젊은이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 가게에 26살 직원이 세 명입니다. 나중에 체인화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내 일처럼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세종시에서는 그런 청년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운 부분이죠. 서비스나 경영 측면에서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이나 서비스 태도 등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능력에 놀랄 때가 많아요.”

주변에 가게를 오픈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그에게 어떤 이유인지 물었다.

“평생 한 분야에서 일한 덕분에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어릴 적 친구들 외에는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만든 음식인 만큼 맛으로 승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개발부터 재료공수, 인테리어 등 3년을 준비했습니다. 가게가 잘되면 이곳은 진국만 집중해서 파는 곳으로, 옆에는 룸형식으로 황태정식 집으로 확장하고 싶습니다.

물론 전국 체인을 목표로 현재 황태 육수 농축방법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연구해 나갈 예정입니다.”

한 그릇의 황태진국을 팔면서 고수하는 그의 원칙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하나를 팔아 많이 남기는 것 보다 맛의 질을 높여 적게 남기자는 게 원칙입니다. 평생 전기업을 해온 사람이지만 요즘은 직접 개발한 음식을 세상에 내놓고, 또 많은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해요. 식탁위에 나가는 음식들 모두 지금처럼 국내산을 고집하고, 손과 시간이 많이 필요한 꺼먹지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지켜나갈 계획입니다.”

운영, 재무 등 경영 전반을 담당하고 있는 아들 재현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비스업은 처음 경험해보는 일입니다. 그래서 손님들을 해병대 선임 대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웃음). 그랬더니 고개를 숙이는 것, 말하기 전에 미리 챙겨드리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당연히 대접받아야 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자연스러운 거죠.

초반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젊은 사람이 음식점을 한다니 직접 만든 음식이라는 데 의문을 품으시는 분들이 많았다는 거예요. 사골이나 프림을 넣은 것 아니냐는 말은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제 사진도 걸어놓고 설명해드리다 보니 그런 의구심이 많이 사라졌습니다(웃음).”

‘남들처럼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3년 간 강원도를 오가며 준비한 부자의 첫 가게. 언제까지나 구수하고 진득한 맛으로 진짜 ‘진국’을 보여주는 가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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