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

영화와 사회 | '리스본행 야간열차'

2016-05-26     황혜진(목원대 TV영어학부 교수)
황혜진 교수
황혜진 교수

스위스의 베른, 고문헌학을 가르치는 그레고리우스는 혼자 식사를 하고 체스를 두는 건조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억수같은 비가 퍼붓는 어느 날의 출근길, 그는 다리 위에서 자살시도를 하는 젊은 여인을 구해 학교까지 동행한다. 하지만 의문의 그녀는 젖은 코트를 남겨둔 채 사라져버린다. 그녀의 코트 주머니에서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제목의 작은 책을 발견한 그레고리우스는 저자 아마데우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매료된다. 이제 사라진 여인은 물론 작가에 대한 호기심에 사로잡힌 그는 책장 사이에 끼워져 있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을 단서 삼아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이렇듯 로맨스인지 미스터리인지 모를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시작된다. 자연스럽게 나이 든 그레고리우스 역의 제레미 아이언스의 모습은 쓸쓸하지만 진중해 보인다. 누구나 한 번쯤은 팍팍한 일상으로부터 탈주하고 싶은 꿈을 꾸기 때문일까? 미지의 작가가 펼치는 존재와 인식에 대한 성찰에 깊이 공감하며 자신도 모르게 기차에 몸을 싣는 그의 결단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더욱이 그를 일상 밖으로 인도하는 힘은 어설픈 무기력이나 낭만이 아니다. 사그라져가는 내면의 열정을 다시 깨워줄 그 어떤 신비한 자력에 의한 떠남에는 삶 속에서 길을 잃은 자의 절실함이 담겨 있다. 일상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기대를 품게 하는 마법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의 집을 찾아낸다. 그리고는 우연히 책 속 이야기의 인물들과 조우한다. 그리고 1970년대 포르투갈의 역사와 그 안에서 삶을 견디기 위해 분투했던 청춘의 다양한 표정을 복기해간다. 판사의 아들이자 의사였던 아마데우는 독재의 서슬이 시퍼런 사회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레지스탕스 활동을 선택한다. 그의 선택은 청춘의 일시적 열정이 아니었다. 역사와 개인을 통합하려는 지성과 삶의 완전성에 대한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깊은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리라. 이를 깨달아갈 무렵 중년의 여행자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인연이 다가온다.

그레고리우스가 새 안경을 맞추기 위해 찾은 안경점에서 만난 검안사이다. 이 인연의 주인공은 그를 아마데우의 삶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마데우가 친구의 연인 스테파니아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통해 또 하나의 꿈을 품게 된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그레고리우스는 더 이상 젊지 않으므로 그가 맺는 관계 또한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는 격정적 운명에 이끌린 결과는 아니다.

아마데우는 동맥류를 앓고 있어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삶의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으로 더 완전한 삶을 욕망했던 이유다. 그레고리우스 역시 고문헌과 외로움에 파묻혀 삶의 활력을 잃었다.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내면의 빛에 목말라 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닮은꼴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다가온 여인들은 어쩌면 삶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온전한 민낯을 드러낸 그들의 용기에 매혹된 것이 아니었을까?

육체적 욕망이나 낭만적 환상이 아니라 서로의 영혼을 알아봄으로써만이 가능한 소통으로서의 사랑! 그러나 체포의 위협에서 벗어나 어렵사리 포르투갈을 탈출한 스테파니아는 아마데우의 곁을 떠난다. 삶과 사유의 통일을 추구하는 연인에 대한 진심어린 존중이 이별의 이유가 된 것이다. 결벽증 같은 사랑은 상대방의 존재에 지나치게 압도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이별은 아쉽다. 하지만 그 자체로 젊은 날의 치열함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청춘의 시간을 지난 그레고리우스는 베른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직전, 리스본행 여행이 갖는 의미에 공감해준 인연을 받아들인다. 모든 순간, 치열하게 현재를 살았기에 고귀할 수밖에 없는 아마데우를 찾아 나선 여정이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과거와의 작별을 가능하게 하고 결국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는 감동적인 엔딩인 셈이다.

모든 삶은 사건의 연속이다. 삶을 구성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사건, 즉 변화가 일어나는 장소가 된다. 이 사건은 외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내면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아마데우가 썼듯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일고 있음에도 우리는 세계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자신의 내적 반응을 돌아보지 않은 채, 시류에 휩쓸려 쉽게 상심하거나 고단한 삶이 자신의 영혼을 삼켜버렸다는 핑계를 대곤 한다. 올여름, 구차한 핑계를 거두고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지금, 이 순간의 삶이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를 찾아 영혼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만나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