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리고 부끄러움

어깨동무 사회 | 삶의 결, 죽음의 결

2014-07-22     강수돌(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생활고·분노·우울… 죽음의 일상화

모순에 눈 감고 귀 닫는 현실 두려워

불의·절망 넘어 정의·희망 위해 뭉쳐야

#장면1.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2월 26일 밤에 발견된 서울 송파구 반 지하집 세 모녀의 유서다. 삶의 마지막 순간조차 그들은 "미안하다"고 했다. 어머니 박씨(61)와 큰딸 김씨(36), 작은딸(33)이 생활고를 이겨내지 못하고 번개탄을 피운 채 작은 고양이와 함께 목숨을 끊었다. 하얀 봉투엔 5만 원짜리 14장, 모두 7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 집세는 50만 원, 나머지는 가스, 전기, 수도세였다.

#장면2. "박근혜 정부는 총칼 없이 이룬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 정부입니다. (…) 모든 두려움을 불태우겠습니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작년 12월 31일 오후 5시 27분, 이남종씨(41)는 전라도 광주에서 몰고 온 은색 스타렉스 렌터카를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 세우고 이런 유서를 써 놓은 채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다음날 숨을 거두었다.

#장면3. ‘싱글맘’(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으로 알려진 박은지(35) 노동당 부대표가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 새벽에 숨진 채 발견됐다. 초등 2학년 아들을 남겨둔 상태에서 자살한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씨는 평소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교사 출신인 박씨는 학생 시절, 서울지역 사범대학학생회협의회 의장과 전국학생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2008년에 정계에 입문, 진보신당과 노동당 대변인을 거쳐 노동당 부대표를 지냈다.

사람들이 죽어간다. 생활고 때문에 죽고, 분노해서 죽고, 우울해서 죽는다. 여기에 적어본 세 가지 장면은 단지 상징적인 사례들일 뿐이다. 박씨 가족처럼 생활고로 인한 자살은 그 전에도, 그 후로도 계속된다. 앞으로 더 많이 생길까 두렵다. 두 번째 사례의 분노한 이씨가 분신하고 삶을 마감한 뒤 49제가 열리던 날 바로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분신이 있었다. 시민단체 활동가 김창건씨였다. 그는 "이명박을 구속하고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현수막 3장을 내걸기도 했다. 세 번째 장면에 나오는 박씨의 죽음에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우울증이 원인이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그렇다. 세상이 너무나 척박해 갖은 난관 무릅쓰며 진보정당 활동을 하나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우울증, 절망감, 무력감을 피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9살짜리 아이를 두고 떠났을까?

그렇다면, 여기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이들의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이들의 죽음은 슬픔과 두려움, 부끄러움을 동시에 남긴다.

슬픔. 부모님을 잃었을 때의 슬픔과는 결이 다르지만 이들의 죽음은 또 다른 슬픔이다. 세 모녀의 경우, 남편이자 아버지 박씨가 12년 전 방광암으로 숨지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8만원인 그 집에 세를 들었다. 큰딸은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렸고, 작은딸은 편의점 알바 등 불안한 일자리를 떠돌았다. 큰딸은 돈이 없어 병원도 못 가고 약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 이남종씨의 경우, 광주에서 서울까지 차를 몰로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국정원 대선 개입이 확실하고 부정선거가 확실한데, 왜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가? 마치 1970년 11월, 청년 전태일이 자기 몸을 불살라 열악한 노동 현실에 온 사회의 눈을 뜨게 촉구한 것처럼 이씨도 죽어가는 민주주의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게 아닌가? 슬프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분노도 치민다. 갈수록 죽어가는 민주주의가, 갈수록 무뎌지는 우리의 감성이 두렵고도 안타깝다. 자본과 권력의 탄압도 두렵지만 모순적 현실에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사람들이 더욱 두렵다. "아니오!" "이제 그만!"이라고 외쳐야 할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고급 도둑놈들’이 던져주는 떡고물을 받아먹고자 팔꿈치로 옆 사람을 밀쳐내는 모습이 섬뜩하다.

그리고 부끄럽다.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 독일 시인 브레히트는 이런 시를 썼다. "나는 운 좋게도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그 친구들이 나를 두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순응한 자는 살아남는다.’ 갑자기 나는 내가 미워졌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요, 부끄러움이다.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부끄러움,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머물 수는 없다. 실컷 느껴보자. 그리고 천천히 또 일어서자. 나 홀로 일어나면 힘들지만, 여럿이 같이 일어나면 힘이 난다. 슬픔은 줄어들고 기쁨이 솟구치며 두려움이 줄어들고 용기가 샘솟는다. 부끄러움 대신 당당함도 자라난다.

체코 계 미국인 작가 안드레 블첵은 ‘시와 라틴아메리카 혁명’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한 편의 좋은 시가 번쩍거리는 고급 자동차보다도 더 많은 찬미를 받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도둑질을 멈추고 시를 쓰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 가난해도 식의주(食衣住) 걱정 않고 살 수 있는 사회, 시가 있고 음악이 있으며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가득한 저녁이 있는 삶, 부정부패와 거짓조작이 없는 나라, 생계 걱정 없이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 풀뿌리 민초들이 뭔가를 외치면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는 나라, 우리 당대보다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가 좀 더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 궁핍과 불의와 절망에 내몰려 억울하게 죽기보다 사랑하는 이들과 따뜻한 인사를 나누며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존엄한 죽음, 바로 이런 가치들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함께 어깨를 걸고 나가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전쟁터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필요하다. 요즘은 일상이 곧 전쟁이니까.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에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에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 뭉크는 깊은 좌절에 빠진 사람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형태의 왜곡’을 사용했다.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읊조리다 뭉크의 ‘절규’가 연상됐다. ‘절규(The Scream)’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93년, 템페라화(Tempera on board), 83.5×66㎝, 오슬로 뭉크미술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