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流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살아온 강박관념 표현?

2016-05-26     김지용(중부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조디, 당신 마음속에 들어갈 기회를 주십시오. 이 일로 당신의 존경을 얻고 내 사랑이 입증되길 바랍니다.’ 존 힝클리 2세가 묵었던 숙소에서 발견된 메모의 내용이다.

1981년 3월 워싱톤 힐튼호텔 앞, 몇 발의 총성이 울리며 취임한지 석 달도 안 된 레이건 대통령의 가슴에 총알이 박힌다. 다행이 대통령은 목숨을 건졌지만, 사건은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가 상영된 1976년, 주연배우인 로버트 드니로와 조디 포스터는 일약 스타가 된다. 특히 당시 10대 소녀였던 조디 포스터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이 때 당시 이 영화를 본 힝클리는 조디 포스터의 매력에 흠뻑 빠지다 못해 과도하다싶을 정도의 집착을 보인다.

이후 그는 그녀에게 수백 통의 메일을 보내며 스토커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되자 힝클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당선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미국 대통령 ‘도널드 레이건’을 죽여 애정을 확인시키고, 조디 포스터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겠노라고 생각하지만 암살은 결국 미수에 그치고 힝클리는 감옥이 아닌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1970년대의 베트남 전쟁은 미국사회를 일시적 혼란에 빠트린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는 상처 입은 영혼의 어설픈 영웅심을 그린 미국영화이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 베트남전쟁의 트라우마로 사회와 단절된 사람들의 삶을 뉴욕의 밤으로 포장해 보여준다.

베트남전쟁 참전 용사 트래비스 비클(로버트 드니로)은 불면증 환자이다. 그러나 그 원인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태로 심야 택시 운전을 하게 된다. 이런 그가 뉴욕의 밤거리에서 깨달은 것은, 세상은 창녀, 포주, 마약 중독자 등의 인간쓰레기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청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리곤 열두 살짜리 창녀 아이리스(조디 포스터)의 포주 스포트(하비 카이텔)를 죽인다.

영화의 배경은 뉴욕이다. 그러나 뉴욕의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결코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 트래비스만이 택시를 몰고 뉴욕의 밤거리를 몽유병 환자처럼 헤매고 있을 뿐이다. 세상과의 의사소통을 단절하고 홀로 거리를 떠도는 그에게,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그에게, 뉴욕은 단지 형체 없이 떠 있는 그림자의 형상일 뿐이다.

택시 공간에 고립된 트래비스는 자신을 청소부, 곧 집행자로 여기는 편집 증세를 보인다. 그가 살인하기까지 표출하는 극렬한 가치관의 혼란은 베트남전쟁의 증후군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아이리스의 포주 스포트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이 빠져 있던 혼란에서 벗어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트래비스 비클은 썩어버린 세상에서 시대의 영웅으로 다시 조명되지만 그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세상과 단절된 자신만의 밤거리를 달린다.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 2014)>는 조단 벨포트가 월 스트리트에 입성하여 억만장자가 된 후, 쾌락을 쫓다 FBI의 표적이 되는 생생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자서전 <월가의 늑대(Catching the Wolf of Wall Street)>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의욕 넘치는 젊은 월 스트리트 신출내기에서, 부에 눈이 멀어 부패한 주식중개인이 되기까지 월 스트리트의 늑대로 변모하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따라간다.

할리우드 최고의 파트너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5번째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폭발적인 ‘케미’를 보여준다. 이 작품으로 디카프리오는 제71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움켜지게 되며 관객의 기대를 져 버리지 않는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사치와 쾌락을 쫓는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삶을 마치 서커스의 공연처럼 판타지와 강렬한 영상을 통해 보여주며 관객들을 영화 속의 또 다른 현실로 끌어들인 스콜세지 감독은 영화의 결말에서 택시 드라이버 트래비스의 모습을 오버랩 시킨다.

어처구니없는 살인을 하고도 영웅으로 주목받은 그는 다시 평범한 택시 드라이버로 돌아간다. 뉴욕의 밤거리를 달리며 차창 밖으로 비춰지는 평범한 일상의 뉴욕의 밤거리를 건조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조단 벨포트 역시 더 이상 특별하다고 할 수없는 초라할 정도의 차분하고 소박한 세일즈 강연의 강연자로 무대에 선다. 그리고 펜 한 자루를 들고는 청중에게 다가가 이 펜을 자신에게 팔아보라고 이야기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거의 4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택시 드라이버> 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들여다보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일관된 표현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소외된 자들의 고통과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는 화려하다거나 극단적인 삶의 여러 이면 속에서도 인간은 보편적으로 외롭고 나약한 존재라는 걸 인식시키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실패가 예정된 작품을 만드는 고집쟁이로 유명한 그는 대도시 뉴욕을 무대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집요하게 탐구해온 작가주의적 표현을 하는 감독이다. 늘 아메리카 드림을 배격하며 폭력적 성향으로 이루어진 미국을 비판하여 보수적집단인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던 그도 결국 영화 <디파티드>로 감독상의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분노의 주먹(성난황소, 1980)> <좋은 친구들(1990)> <갱스 오브 뉴욕(2002)> 등 지난 40여 년 동안의 그의 작품들을 보면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성장기에 대한 강박관념을 폭력의 형태로 스크린에 투영하며 주류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100편에 가까운 필모그라피를 지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아직도 재치 충만한 젊은 악동의 이미지를 지닌 채 거침없는 대사로 나에게 이야기한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아나?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다.’(<갱스 오브 뉴욕>에서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분한 빌 더 버처 커팅의 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