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속 말, 인류사 담긴 투쟁의 원본

미술 산책 | 말(馬)의 해를 맞이하며

2014-01-10     이순구(화가)

인류에게 문화는 평범한 삶의 흔적이 아니다. 삶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질적 가치이며 자존의 발자취이다. 문화로 남은 기록들은 우리가 보지 못한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며 확인해 주고 완결해주는 열쇠인 것이다. 따라서 함부로 거스를 수도 없고 바꾸어서도 안 된다.

2014년 갑오년(甲午年), 60년 만에 돌아 온 푸른 말[靑馬]의 해이다. 말은 오래전부터 인간과 매우 밀접하게 지낸 동물이다. 그 역사는 라스코(Lascaux) 동굴 벽과 고구려 무덤 벽에 그려진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수명으론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시기에 그려진 라스코동굴 벽에 그려진 말의 진실은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사에 의문을 갖게 한다. 여전히 먼 시간의 이야기인 고구려 벽화는 그래도 우리의 역사이기에 조금은 가깝게 느껴진다.

라스코 동굴벽화는 기원전 1만5000년에서 1만3000년 즈음의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천연 안료인 숯이나 흙에서 추출된 안료를 이용한 그림들이 동굴 안에 1940년까지 밀폐되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보게 된 것이다. 이 동굴에 그려진 800여점의 그림들은 말, 들소, 사슴, 염소들이며 그 외 사람형상과 순록, 고양이 등도 나타난다.

이 그림들의 용도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주술용도와 또 하나는 사냥시의 간절한 바람이었다는 것이다. 즉 동물의 형상이 토템으로서 상징하는 힘과 속성에 대한 주술적 목적이며, 사냥에서 동물이 많이 나타나 더 많이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바람이나 기원하는 의미로 본다.

라스코 중국말-chinese-horse-france
라스코(Lascaux) 동굴벽화, <중국 말>, 프랑스, B.C 15,000-13,000

라스코 동굴벽화의 그림은 <중국 말>로 지칭되어 있다. 프랑스지역에 중국말이 등장하는 것은 좀 생소하다. 물론 중국말 종류가 전 세계에 퍼져있었다거나 하는 동물분포의 세부사항이 있겠지만 중국말이 그려있다는 점에서 미술사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학자도 있다.

이 말 종류는 몽고말이며 ‘타르망’이라는 불린다는 것과 말 그림 주변에 보이는 화살 같은 것은 부러진 화살촉이 아니라 성스러운 풀을 뿌리는 의식의 한가지로 해석한다. 풀은 곧 인간의 먹이이자 가축인 초식동물의 먹이이기 때문에 성스러운 것이다. 갈기 위에 보이는 4개의 선은 인도 베다신화에서 발견되는 말의 제의를 상징하며 이는 우주이자 4방향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이러한 주장은 말과 곰의 토템사상에 뿌리를 둔 한민족의 상고사와 관련지은 다소 과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 이유로 라스코 동굴의 벽에 그려진 그림의 반 이상(59.5%)이 말 그림인 것에 주목한다. 이렇게 많은 말 그림은 따라서 식용을 위한 사냥목적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당시 사람들은 주로 순록을 사냥하여 먹은 잔여물들이 가장 많이(86.8%)발견되었는데 정작 순록의 그림은 소수(0.2%)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말의 뼈 흔적들은 식용을 위한 해체가 이루어진 점이 극소수라는 것에 식용(0.75%)에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로써 말은 식용으로서가 아니라 제의에 사용되었으리라는 확신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조심스럽다. 물론 세계의 역사가 서양입장으로 기록한 것이 일반화되어 그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일방적인 사관일수 있다. 따라서 세계사의 관점을 서구중심 외에 다른 지역의 관점으로 연구할 때 다른 결과나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배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장기적으로 연구해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할 수 있다.

검정과 갈색의 주조, 새끼를 밴 듯 불룩한 배를 가진 이 말은 풍요롭게 보이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다. 라스코 동굴벽화가 발견된 후 단순 명료화된 형태로 시작되었다는 미술의 역사는 한때 혼란을 겪기도 했으며 그 논리들이 분분하기도 하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고구려 무덤벽화 ,<수렵도>, 가로 3.79m , 세로 5.42m, 중국 집안현(集安縣) 5세기

이에 비해 우리와 근접한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 중 <수렵도>는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것이다. 석총을 쌓은 현실 안에 백회를 바른 후 역시 원형질적인 안료로 그려진 이 그림은 도식화된 단순미를 가졌으나 장면의 특성은 매우 동적이며 활기차다. 앞으로 달리는 호랑이를 겨냥한 사냥꾼의 힘차게 달리는 모습은 속도를 보여준다. 더욱 압권인 장면은 앞을 지나친 대형의 말사슴(馬鹿)을 향해 상체를 뒤로 돌린 채 활을 겨냥한 무사의 동작이다. 뛰어난 복식과 뛰는 말의 큰 움직임, 쫓기며 당황한 호랑이와 사슴, 그리고 단순화되어 그래픽적인 요소를 정확히 보이는 산의 기하학적 표현, 기호화된 구름 등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내용을 전달하기에 뛰어난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말 그림하면 떠오르는 이 두 그림은 라스코에서는 좀 더 원초적인 인간의 바람과 기원을 읽으며, 무용총의 그림에서는 시대의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보는듯하여 일만 수천 년의 시간차이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아직도 계속되는 삶과 투쟁의 원본으로 볼 수 있다. 서양의 유니온이나 페가수스, 한국의 천마도처럼 신령스러운 기를 가진 말, 자신을 내어 줄줄 아는 이 동물처럼 나만이 아닌 주변과 타인을 생각하는 그런 마음으로 이 한해를 살아봄은 어떠할지 혼란스런 이 겨울에 조용히 한발을 내디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