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에서 조직 보스, 얄궂은 운명의 끝은?

1920~30년대 플로리다 조직 이끈 ‘조’의 숨 가쁜 인생 궤적

2013-12-20     고경석 기자
‘리브 바이 나이트’ 데니스 루헤인 지음 | 황금가지 펴냄 | 1만5000원
‘리브 바이 나이트’ 데니스 루헤인 지음 | 황금가지 펴냄 | 1만5000원

미국 역사에서 금주법 시대만큼 매력적인 시기가 있을까 싶다. 미국 영화의 걸작 목록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스카페이스> <대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등이 죄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사랑 받는 작가 중 한 명인 데니스 루헤인이 1920~1930년대로 간 것도 욕망이 요란하게 꿈틀거리던 시대에 대한 페티시즘 때문이 아닐까 싶다.

<리브 바이 나이트>의 시작점은 1920년 발효된 미국 헌법 수정 제18조가 미국 전역의 주류 판매를 금지한 뒤 6년쯤 지난 때다. 시점으로는 격동의 20세기 초 미국을 그린 루헤인의 전작 <운명의 날>의 속편 격이다.

보스턴에서 37년째 경찰로 근무 중인 아버지를 둔 조 커글린은 밤의 남자다. 아버지를 ‘누구보다 뻔뻔한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그는 친구 두 명과 함께 강도질을 일삼고 다니던 중 불법 도박장을 털다 에마라는 이름의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보스턴 거대 범죄 조직의 보스인 앨버트 화이트의 애인이다. 조는 에마와 함께 도망가기로 하고 은행 강도에 나서지만 의도치 않게 지역 경찰관 셋이 죽으면서 감옥에 잡혀 들어간다.

범죄 조직이 지배하는 건 감옥 안이건 밖이건 다르지 않다. 마피아 조직의 보스 마소 페스카토레는 고위 경찰인 조의 아버지가 마소의 경쟁 조직을 쓸어버리도록 압박을 가한다. 앨버트 화이트와 마소 페스카토레의 무자비한 전쟁 속에서 조와 ‘네 범죄가 낳은 아이들은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보복으로 돌아올 거야’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운명적으로 엇갈린다. 범죄, 복수, 음모, 배반, 치명적인 사랑 같은 범죄 누아르 장르의 익숙한 재료들이 초반부터 숨 가쁘게 맞물려 돌아간다.

소설은 중반부터 출소 이후 마소에게 조직을 물려받아 플로리다에서 사업가로 성공하게 되는 조의 궤적을 좇는다. 1918, 1919년을 배경으로 인종 간 갈등, 보수와 진보의 대립, 노동 문제 등을 다룬 전작과 달리 <리브 바이 나이트>는 1926년에서 1935년까지 10년의 이야기를 펼쳐 낸다. 캔버스의 폭은 넓어졌지만 책 두께는 얇아졌고 주제의 폭도 좁아졌다. 세 인물의 중심이 됐던 <운명의 날>과 달리 이 소설은 주인공 한 명에 초점을 맞춘다.

루헤인은 니콜라스 레이의 누아르 영화 <데이 리브 바이 나이트>와 라울 월시의 <데이 드라이브 바이 나이트>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미스틱 리버)와 마틴 스콜세지(셔터 아일랜드), 샘 레이미(운명의 날) 등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들이 앞 다퉈 그의 작품을 영화로 옮겼으니 이 작품을 쓰면서도 영화를 염두에 뒀던 것 같다.

600쪽에 달하는 긴 소설이지만 영화 같은 생생한 묘사와 대사 덕에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분주해진다. 절반을 넘어서면서 중심을 잃고 다소 주춤거리는 인상을 주지만 마지막까지 일급 장르 소설로서 위엄을 잃지 않는다. 영화 연출은 루헤인의 1998년 작 <가라, 아이야, 가라>로 감독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치렀던 배우 벤 애플렉이 다시 맡았고 주인공 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