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유물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무궁무진

세종 문화자산이야기 | 행복도시 역사자료전시회

2013-10-14     세종포스트

임율선생 분묘서 발견된 늑대털모자
보관하던 후손, 두통과 몸살 시달려
늑대와의 각별한 인연 등 이야기 전승

이젠 우리나라 어딜 가나 박물관과 미술관을 보게 된다. 과거에 비해 문화시설이 많아졌으니 그만큼 문화수준이 높아졌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건물이 있더라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본래부터 자기를 노출(?)하려는 욕심이 있어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독특한 외관에 벽면마다 다양한 행사 현수막이나 포스터가 붙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왠지 이들 건물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숨어 있을 것만 같다. 먼저를 뒤집어 쓴 유물이 가득한 수장고, 수많은 열쇠로 대표되는 철통보안시설,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 등등.

10월 7일부터 우리 도시에서 도시역사를 몸소(?) 입증하는 유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회 ‘도시야! 넌 누구니?’가 열리고 있다. 국립세종도서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지만 규모가 크지 않아 전시유물은 많지 않다. 그렇더라도 유물 하나하나에는 마르지 않는 샘을 파 놓은 듯 끊이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시유물 중 털모자는 방한모로 추정되는데 흥미진진하게도 늑대 털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옛 종촌리 한 야산에 있던 조선 초 임 율 선생의 분묘를 이장하던 중에 발견된 이 모자는 목관의 내부에 가득찬 물에 잠긴 채 있었다고 한다. 이장을 주관하던 후손이 별 생각 없이 모자에서 물기를 짜 내고는 집으로 가져가 보관했지만, 그 날 이후 알 수 없는 두통과 몸살에 시달려야 했고, 참다못해 이장된 분묘 옆에 다시 묻어 둔 후에야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사실 분묘에서 털로 된 유물이 출토되기는 쉽지 않은데, 모자가 물에 잠겨 공기가 차단되면서 다행히 원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묘주인 임 율 선생과 늑대의 각별한 인연 때문에 늑대가 죽은 후 그 털로 모자를 만들어 쓰고 다닌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털모자 하나를 두고도 많은 스토리가 생성될 수 있겠다 싶다. 유물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이를 이용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름 하여 ‘기억의 흔적’.

행복도시 건설을 위해 문화재조사가 실시되었고 여기서 출토된 유물은 법에 따라 원형을 유지한 것은 국가에 귀속되고 파편인 것은 폐기하게 된다. 이들 폐기품 중에서 기와편, 토기편, 자기편을 선별해 활용한 설치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니 한 번쯤 감상을 권유하고 싶다. 또 하나, 지금도 사용하고 있고 우리들 주위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성냥을 전시하였다. 이것이 과연 전시유물로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성냥의 사용이 갈수록 줄어들고 언젠가 우리가 찾아 볼 수 없게 되는 날 이 성냥은 언제 어디서 누가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정보가 분명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성냥보다도 유물로서의 가치가 높을 것이다.

한양도성과 백지계획의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조선 초기 이성계는 계룡산 인근을 수도로 삼을 계획이었으나 일부 신하의 반대로 뜻을 굽히고 서울을 수도로 삼았다. 그로부터 570여년이 지난 1979년 박정희대통령은 행복도시 일부를 포함한 지역으로 수도이전을 추진해 상당히 구체적인 계획까지 수립했으나 이 역시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역사에서 만약은 없다지만 이 두 천도계획 중 하나가 원안대로 진행되었다면 이미 행복도시 일대가 우리나라의 수도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행복도시 건설이 숙명적인 사업이라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전시실을 둘러보면 벽면에 부엌문, 창문, 창호문 등이 걸려 있다. 막 도시개발이 시작되던 2007년, 송담리에 임병달씨가 살고 있었다. 그의 집안은 인근학교 건립 때 땅을 희사할 정도로 부유하여 대가옥을 짓고 살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전쟁 중 폭격으로 대부분이 파괴되고 그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렇더라도 남아 있는 건축부재만큼은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어 이주하면 행복청에 기증을 요청 드렸다. 그러나 이 때 이미 골동품수집업자들이 매입하려 해 자칫하면 지역건축물의 귀중한 자재가 남의 집 정원 장식품으로 전락하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여러 번 그를 찾아가 설득한 끝에 결국 국가에 기증해 오늘의 전시에 이르게 되었다.

어찌 이들 유물뿐이겠는가. 전시되는 유물 모두에 마을역사가, 주민의 애환과 기쁨이, 그리고 갖가지 사연들이 녹아 있기에 그저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관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