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처럼 서 있는 나를 보다

박석신의 말하는 소나무

2013-05-13     박석신


바다로 떠난 산은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남해 화첩 기행 중 벽련마을 바다 건너에서 만난 ‘노도’라는 작은 섬은 조선후기 정치가로서,
소설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대문호 서포 김만중의 발자취가 그의 고뇌 어린 일생과 함께 녹아있다고 합니다.
상주면 노도 항에서 어선을 타고 10여분 거리, 이 짧은 뱃길을 건너면서 유배당하는 한 문호의 감정은 먼 바다 일렁이는 파도보다 격했으리라 생각하며 뱃머리에 앉았습니다.
조그만 선착장에 몇 척의 빈 배가 묶여있고 인가는 있으나 인적이 없는 마을을 지나 서포 유배지를 찾아 빈 초당 앞에 섰습니다.
여름의 바다는 늘 설렘과 달뜬 흥분의 기대감을 주지만 그 바다에서 섬을 만나면 왠지 외로움과 그리움이 스치는 것은 외따로 떨어져 혼자라는 것 때문일까요?
육지에서 떠나간 산들이 섬이 되고 또 그 섬에서 떠나간 산들이 더 작은 섬이 되듯이 서포 김만중도 이 작은 섬으로 떠나와서 스스로 먹빛의 섬이 되었겠지요.
초당 앞에 화첩을 펼치고 초필로 그림을 그립니다.
‘바다로 홀로 떠난 산은 무형의 먹빛으로 섬이 된다.’
섬에 와서 만난 것은 섬처럼 서있는 내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