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이 아니어도 가족', 개념 확산이 필요하다

[주필의 시선]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건'이 시사하는 의미 반추해야 혈연만이 내 자식이라는 그릇된 혈연의식에서 빚어진 사건... 전 사회적 인식 전환 절실  

2021-01-06     이계홍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서양은 혈연 개념이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희박하다.

자식들은 남녀 16세가 되면 독립하고, 그리고 하나의 인격체로 독자적으로 살아갈 준비를 한다. 그런 가운데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경제적 독립부터 고려한다. 아르바이트 등 스스로 생활 기반을 다져나간다.

부모도 그 점을 인정한다. 혈연으로서의 인연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이라기보다 한 시민으로서 수용하는 입장이다. 

자식을 입양하는 것도 일반화되었다. 혈연 자식과 입양 자식간의 경계도 모호하다. 그리고 입양 아이들도 만 16세가 되면 독립해 스스로 자립의 길을 간다. 친 자식과 별반 구별되지 않는다.   

이처럼 서양의 가족 문화는 우리처럼 끈끈한 혈연과의 유대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기준이 가족 관계를 끌어가는 힘이 된다. 사랑이 기본 전제지만 박애·헌신·배려·봉사라는 사회규범적 가치들이 자리잡는 것이다. 

사진은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자기가 낳고 기른 자식이라야 가족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악착같이 자기 자식 낳으려고 발버둥친다. 혈연만이 가족구성원의 전부요 핵심이라고 여기는 탓일 것이다. 그래서 피를 나누지 않은 가족은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의식이 있다. 

혈연의식이 강한 만큼 소유욕 또한 강하다. 자식은 내 소유물이고, 그래서 나만이 아끼는 ‘부적’이 된다. 물건 이상이되 소유하는 물건이다.

그러니 자살을 해도 자식도 함께 데려가는 비정함이 있다. 소유 물건인만큼 내가 알아서 한다는 극단적 집착이다. 내 자식은 내 물건이니 내 뜻대로 해도 된다는 잔인한 혈연의식, 이런 그릇된 소유욕 때문에 ‘괴물 부모’도 나오는 것이다. 

내 자식인만큼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집요하게 간섭하고, 통제한다.

자식은 부모의 ’식민‘이 되고 부모는 어느새 ’식민‘을 지배하고 장악하는 ’총독‘이 된다. 요즘 며느리들이 차단하지만 부모 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다.

내면은 경계하는 며느리를 두둘겨 패버릴만큼 천불이 나는 것이다. 한 가족 한 자녀 가족문화가 지배하면서 오히려 그런 ’식민 지배의식‘은 강화된 인상이다.  

대신 내 자식이 아니면 대단히 배타적이다.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는데, ’정인이 사건‘도 내 혈육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서구식의 가족관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데서 빚어진 비극이 아닐까. 

내 친 자식이 아니니 왠지 정이 안가고, 살갑게 대하는 맛이 떨어지고, 그래서 함부로 취급해도 되고, 여차하면 내버리겠다는 무책임성. 이런 사고가 배태한 사건이 아니었을까.

서양에서 말하는 시민의식은 사회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자기 의무와 역할을 말한다. 그에 반해 우리네는 미풍양속이라는 아름다운 규범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유교적 가풍이라는 것이 물론 혈연중심이지만, 전통적인 유교 가풍은 남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측면이 강하다.

남이 어려움을 겪을 때, 내 일처럼 여긴다는 것. 배고픈 아이가 있다면 밥 한그릇 보태준다는 것.

그런데 이런 것이 알게 모르게 상실되었다. 국민의 가슴 내면에는 유교적 전통 규범은 사라지고, 오직 혈연이라야만이 가족이라는 것만 남아버린 것 같다. 

이제는 나라의 볼륨도 커졌다. 혈연만이 가족이 아니라 이웃이 사촌인 시대가 되었다.

요즘에는 형제자매들이 직업을 따라 뿔뿔이 흩어지면서 애경사를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각 종교 집단이나 취미 동호회가 애경사를 대신해주는 경향이 있다.

이중 종교단체가 헌신적으로 애경사를 주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기적이고 배타적 속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옛 혈연이 행했던 관혼상제를 대신해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꼭 혈연만이 내 자식이라는 인식을 바꾸었으면 한다.

생후 16개월 입양아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은 혈연만이 내 자식이라는 그릇된 혈연의식에서 빚어진 사건이라고 본다.  

사회안전망이 아무리 촘촘하게 짜여졌다고 하더라도 혈연의식만이 가족이라는 개념이 자리잡는 한 어린아이 입양 문제는 성공하기 어렵다.

아동학대 대응 긴급 관계자 회의를 열고, 입양아를 비롯한 아동 학대 근절 대책을 강구한다고 하지만, 사회적 연대에 의한 버려진 아이도 내 자식이라는 의식이 없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남의 자식 입양했지만 왠지 정이 안가고 때려죽이고 싶도록 밉기만 하다는 인식이 자리하는 한 아동학대 문제는 근절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아동과 양부모의 결연이나 아동 입양의 양부모의 적합성 판단, 사후관리 등에 대해서 관계 기관이나 시설들의 돌봄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버려진 자식을 기르는 시설들, 이들 중에서 입양하는 양부모들이 따지고 보면 내 친자식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지 않았나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기준을 까다롭게 따져야 한다.

원래의 부모 잘못으로 행복한 자식으로 선택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시설에 가면서부터 차별받고 구타 당하고, 물건 취급받는다는 것은 비정한 사회다. 이제는 혈연만이 가족이 아니다. 사회가 만들어준 가족이다. 

정인이 사망사건에 대해 “사건의 가해부모에 대하여 살인죄로 의율할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여변호사회)는 고상한 성명서도 나왔지만, 그에 앞서 버려진 아동에 대한 새로운 가족의식 캠페인부터 열어가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방송, 신문 등 대중 매체들이 드라마, 아침 가정 시간 등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