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연동면', 문화유산+최초 복컴 조화

[다 같이 돌자 세종 한바퀴 연동면 4편] 황룡사 등 문화유산 곳곳 산재 읍면 최초 복합커뮤니티센터, 지역 공동체 활성화 유도 효자·열녀·충신 많은 고장, 곳곳에 정려 눈길

2020-08-30     김인혜 기자
연동면

[세종포스트 김인혜 기자] 연동면은 세종시 동쪽에 위치한 인구 3600여명의 작은 면으로, 연동면사무소를 포함하고 있는 연동면 복합커뮤니티센터(이하 복컴) 소재지는 장욱진로 7(내판리 33-1)이다.

동쪽으로는 충북 청주시 강내면과 출범 당시 충북 청원군에서 편입된 부강면, 남쪽으로는 금남면과 합강동, 서쪽으로는 연기면과 연서면, 북쪽으로는 조치원읍과 충북 청주시 오송읍을 접하고 있다. 

연동면에 속한 리로는 내판리, 예양리, 송용리, 노송리, 응암리, 명학리, 합강리, 다솜리, 용호리, 문주리가 있다. 

이중 다솜리(5-2생활권)는 세종시 출범 당시 용호리(5-3생활권)에서 분리돼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지역으로 편입돼 추후 용호리와 함께 동으로 전환될 예정인 리다.

더불어 최근 연동면에 속했던 합강리 대부분은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건설로 미리 행정동 소담동이 관할하는 법정동 합강동(5-1생활권)으로 전환된 상황. 

최근 각광받고 있는 오토캠핑장으로 유명한 합강공원을 가기 위해서 지나야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지금은 부강면에 속한 갈산리가 연기군 동면 시절에는 이곳에 속해있었다.
 
8월 26일 기준 인구 3180명 규모의 작은 면인 연동면은 연기면과 전동면, 소정면 등과 함께 인구 5000명 이하인 면 지역이다. 

그 때문에 세종시 전신인 충남 연기군 때부터 살아온 토박이나, 이곳에 친척 등이 살고 있는 연고자가 아닌 이상, 세종시민이어도 연동면을 아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그나마 합강공원의 존재와 최근 한 케이블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교과서박물관이 내판리에 있기 때문에 이곳들을 방문한 사람들이 연동면을 아는 경우가 있다.

다 같이 돌자 세종 한바퀴 4편에선 연동면의 유래와 현재, 그리고 보유 문화유산 등을 살펴봤다. 

'읍면지역 최초’ 복합커뮤니티센터

1층은

복합커뮤니티센터(이하 복컴)는 신도시에서 파생된 신개념 주민공동체 시설이다. 주민들이 행정·문화·복지 등의 서비스를 누리는 공간으로, 생활권마다 특성에 맞게 건립되고 있다. 

읍면지역에는 기존의 면사무소 외 뚜렷한 편의시설은 부재했던 게 사실. 최초 복합커뮤니티센터는 연동면에서 탄생했다. 

연동면 복컴은 농촌형 복컴으로, 복컴의 용도와 부지선정, 면적, 시설활용 등의 계획 과정에서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해 더욱 의미를 더한다. 

연동면사무소

보건지소 이용은 일반 병원과 동일하게 접수 후 하면 되나, 치과의 경우 사전 예약(☎ 044-301-2224)이 필수다.

진료비는 만 65세 이상 어르신 및 장애 1~6급 대상자는 무료, 일반 시민은 보통 1100원에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대장암 검진과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되는 불소 용액은 세종시민이라면 모두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연동면

보건지소 바로 옆에 자리한 농업기술센터 동부지구지소는 연동면 농민들에게 영농·기술교육, 농업 현장 진단 및 솔루션 제공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매달 주의해야 할 농작물 재해 예방 등의 정보도 제공한다. 농민뿐만 아니라 농업에 관심 있는 일반인도 농업 상담이 가능하다.

전화 상담(044-301-2655)과 대면 상담이 가능하나 연동면 복컴 내 기술센터 상담은 시행하지 않는 만큼, 연서면 농업기술센터로 직접 가야한다.

2층 로컬푸드 가공센터는 연동면 생산 농작물을 로컬푸드 직매장(싱싱장터)에 판매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연동면 대표 문화유산이자 풍수지리 속 명당, '황룡사'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문화유산은 유형문화재와 문화재자료, 향토문화유산으로 구분할 수 있다.

조선 18세기 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룡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은 유형문화재의 대표적 상징이다. 

또 조선시대 합호서원과 고려의 송용리 마애여래입상은 지난 2012년 시 출범과 함께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이밖에 ▲밀양박씨 오충 정려(표창) ▲효자 김백열 정려 ▲효자 임양문 정려 ▲열녀 언양김씨 정려 ▲열녀 광산김씨 정려 ▲열녀 한양조씨 정려 ▲열녀 밀양손씨 창녕성씨 정려 ▲육영재 ▲용호산제 및 관련 자료가 지난 2001년부터 2003년 사이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중 연동면 황우산 자락에 있는 전통사찰 황룡사는 황희의 후손들의 나라의 태평성대와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한 원찰(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사찰)로 지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황룡사 터는 국내 풍수지리 저서인 만산도에 소가 앉아서 쉬는 모양으로 용과 거북이가 동서로 문을 지키고 있는 형세의 명당지로서 대대손손 자손이 번창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입지로 기록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황우산의 상징인 황소가 밭을 갈기 위해 황우재에서 출발하여 ‘잿절’(황우산 주변 마을)에서 쟁기를 챙기고 ‘보석굴’에서 쟁기 줄을 갖추고 ‘생지울’에서 여물을 먹었다. 그 뒤 ‘합강’에서 밭을 갈기 위한 도구를 다 챙기고 ‘원당’에 가서 물을 마시고 황우재로 돌아와 밭을 갈고 현 황룡사지인 평탄 안에 누워 쉬고 있는 지형이라 한다.

성리학의 대가, '녹문 임성주'를 기리다

녹문

임성주 선생은 조선의 저명한 유학자로서 '조선 성리학의 6대가'로 불린다. 호는 녹문이고, 충북 제천시 한수면에서 태어났다.

녹문

1730년 도암 이재의 문하에 들어가 청주 옥화대, 괴산 화양동 등에서 송명흠, 김원행 등과 함께 공부하고 학문을 교유했다. 1750년 사도세자의 익위사세마(왕세자의 시위를 맡아 보던 관아)에 임명된 이후 세자교육에 힘썼고, 양근군수와 성천부사로 부임해 칭송을 받았다.

1782년, 공주 녹동에 돌아와 학문 연구와 강학에 힘쓰다 6년 후 1788년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충북 문의에서 공주 녹동으로 이장했다가, 1816년 현 위치인 연동면 명학리 황우산 아래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