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지역특색에 어울릴 영화제를 상상한다면?

2012-10-14     송길룡

지난 5일 저녁 찾아간 경북 상주농업인회관 건물에서는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농민영화제’가 첫 상영작을 선보였다. 3일간의 행사일정 중 첫날 저녁 영화는 <농민가>.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객석에는 몇몇 관객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감회가 새로웠다. 국내에서 최초로 농민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프로그램으로서 이 농민영화제가 개최됐다는 것 자체가 매우 큰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풀어본다.


요즘 국내영화제로서는 최대규모인 부산국제영화제(10.4-13)가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연일 영화소식은 그 영화제의 상영작들과 인기배우들의 방문 에피소드로 가득한 상황이다. 일찌감치 예매를 하지 않았다면 한 편의 관람은 언강생심이다.

같은 시기, 하지만 거기서 멀리 떨어진 또다른 곳, 경북 상주에서는 아주 특이한 영화제가 개최됐다. 농민이 주인공이고 농민이 관객인 상주농민영화제(10.5-7)가 그것. 그런데 어디서도 관련 소식을 얻기 어려운 이 영화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세종시는 건설지역을 빼면 사실상 농민들의 터전이다. 지역특색을 감안한 영화제를 상상한다면 상주농민영화제가 하나의 모델이 될 법했다.

세종시에서 상주시까지 가는 길은 자동차로 가면 시원스러운 청원상주고속도로를 탈 수 있기 때문에 서두르면 1시간 남짓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충청권에서 영남권으로 넘어가는 것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잠깐 들러도 좋을 가까운 거리다. 게다가 상주시는 인구가 10만명 정도로 현재의 세종시 인구와도 비슷하다. 세종시는 이제 곧 건설지역에 행정시설과 마천루들이 즐비하게 들어설 예정이지만 상주시는 통일신라적부터 서라벌에 버금갈 정도로 유서깊은 고도시로 역사를 견뎌왔다.

▲ 상주시농민회 이혁 선전부장
그런데 이 상주시에서 농민영화제가 개최되는 계기는 ‘자생적’인 것이 아니었다. 행사장 준비를 하던 상주시농민회 선전부 이혁 부장은 "어느 날 정말 뜬금없이 농민영화제에 대한 제안이 우리에게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농번기라 바쁘고 게다가 곧 곶감축제가 열리는 시기라 영화제를 하기에는 좀 어려운 상황이기는 했지만 주최측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행사를 갖게 됐다"고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상주는 곶감으로 유명하다.)

▲ 대구경북시네마테크 남태우 대표
이 농민영화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대구경북시네마테크 남태우 대표는 "그동안 대구경북지역에서 꾸준히 기획영화제를 개최해왔다."며 운을 뗐다. 그에 따르면, 포항, 칠곡 등지에서는 대단히 큰 호응을 받았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대구경북지역의 북부권이 매우 취약하다. 영화제를 하자면 지역특색에 맞게 ‘농민영화제’가 적절하리라 여겨졌다. 그런데 여러 곳을 대상으로 영화제 개최를 타진해봤지만 상주시만이 긍정적이었다는 것. 그는 "어떤 치밀한 계획속에 마련됐다기보다는 북부권의 척박한 영화문화에 어떤 참신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보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소개했다.

이를 위해 남 대표는 영화진흥위원회의 ‘2012년 비상설극장 및 다양성영화기획전 지원사업’에 지원신청을 해 영화제 경비 일부를 지원받는 등 수완을 발휘했다. 상주농민영화제의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7편의 영화들과 감독 초빙도 그의 ‘인맥’으로 가능했다. 진지한 의도를 가지고 구체화하는 시도와 방편이 농민영화제의 가능성을 일궈냈다는 얘기다. 참여의 규모가 크든 작든 말이다.

도시-농촌 복합의 특성이 보이는 지역이라고 세종시의 지역특색을 규정하는 말들이 있어왔다. 이른바 ‘도농복합도시’라는 표현이 드러내는 바가 그것이다. 세종시에서 영화제를 기획한다면 아마도 ‘세종시 도농영화제’라는 이름 정도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상주시의 농민영화제를 모델로 한다면 어찌됐든 기회를 만들어 구체화하는 실행력을 본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참에 세종시 특유의 지역기반 영화제를 상상해본다. 명품도시 영화문화에 농토를 지키는 지역주민이 소외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 행사장 입구. 농민회현판, 한미FTA반대표어, 영화포스터가 함께 있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