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모순, 유권자의 모순

2012-10-09     최민호(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부도덕 하고 부정직한 지도자
'정치'라는 이름으로 용납해서야…

우리나라 미래지도자 선출
기준은 '맑은 도덕적 가치관'

석 달도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시중의 화제는 온통 그 이야기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고도 한다. 하지만 엄청난 돈과 인력과 정열이 들어가는 이 민주적인 축제에는 즐거움보다는 피비린내 나는 처절함이 서려 있다.

모택동이 말하였던가. "정치는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요, 전쟁은 피 흘리는 정치다"라고.

정치(政治)란 무엇인지 하도 복잡해서 새삼 정의하고 싶지 않지만, 정치란 정치(正置), 즉 사물을 바르게 놓는 것이라는 생각을 나름 어렸을 적부터 해왔다.

국민들이 정치에 바라는 것은, 비뚤어진 사회, 소외받는 어려운 계층, 악과 불의가 선과 정의를 이기는 세상, 못사는 사람들의 한, 이러한 것들을 바로잡아 우리 사회가 올바로 놓여지는 것, 그것일 거라는 생각을 지운 적이 없다.

그리하여 중국의 맹자가 도덕을 앞세우는 왕도정치를 주창하고, 그리이스의 플라톤이 현명한 군주의 철인정치를 외쳤을 때 가슴 두근거리며 공감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는 정치란 늘 마키아벨리를 연상시키고, 또 그것이 정치의 속성인양 굳게 믿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에게는 군주의 도덕이 있고, 일반 국민에게는 그들의 도덕이 있다" 면서 권력을 위해서는 권모술수 또는 윤리성이 배제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라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로부터 정치의 세계는 당연히 마키아벨리의 논리가 정당하다고 여겨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순을 범하고 말았다. 선과 정의가 바로 선 세상을 만들어 줄 정치를 기대하면서 정치인은 원칙론자이거나 양심적인 사람보다는 거짓말하고,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사람이 성공한다는 모순.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고 어려운 사람의 편에 서서 정의롭고 풍요로운 사회를 구현하겠다면서, 스스로는 속임수와 배신과 변절을 일삼는 정치인.

정치인 또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라며 너그럽게 묵인하는 유권자.

애당초 그런 정의를 실현할 양심도 자질도 없는 사람을 정치인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하고, 곧 그런 사람들의 정치에 실망과 배신감을 느낀다.

마키아벨리즘은 잘못 이해되고 있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저술할 때의 이탈리아는 세상과 동떨어진 왜곡된 중세의 종교관과 낡고 미신적인 도덕관을 타파하고 분열된 이탈리아의 통일과 강력한 국가권력체계를 바로잡을 새롭고 혁명적인 군주가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그는 새로운 군주에게 기존의 도덕과 윤리에 얽매이지 않는 혁명적인 정치적 파격을 요구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그리이스 로마시절의 도덕적인 지혜와 역량을 강조하는 르네상스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나 혁명이 필요한 세상도 아닌 시대에 우리는 왜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지도자를 정치인이라는 이름으로 합당화시켜야 한단 말인가.

우리 사회의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못받고 있는 것에 정치인만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 또한 모순된 사고방식을 통해 스스로의 불행을 자초한 면도 있는 것이다. 정치인의 모순이자 유권자의 모순이다.

선과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악과 불의를 미워하는 법이다.

대선을 앞두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자랑스런 우리 한국. 이제 또 하나의 차원높은 기적을 이루어야 한다. 민주화의 질이다.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케케묵은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부도덕하고 부정직한 지도자를 '정치'라는 이름으로 절대 용납하지 않는 맑은 도덕적 가치관으로 우리나라의 미래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