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역사성, 보존할 문화의식조차 없나 

[주필의 시선] 세종시 집현리(옛 금석초 터) 느티나무 훼손 현장을 돌아보며… 

2019-09-03     이계홍
세종특별자치시

오래전, 읽은 소설이다. 작고한 여류작가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라는 소설이다. 부모의 재혼으로 만난 주인공 여학생과 이복오빠 대학생의 순수한 사랑과 갈등을 여고생의 시선에서 그린 작품이다. 

사회적 도덕률과 인습의 금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젊은이의 고뇌, 그리고 순수한 영혼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젊은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내 60년대 선풍을 일으킨 소설이다. 필자 역시 청소년기에 읽고 한없는 동경과 상상력에 취한 추억이 있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라는 첫 문장부터 젊은이들에게 청순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했다. 1960년대 농업이 주산업이던 시대, 외국인이 김포공항에 내리면 맨먼저 인분 냄새부터 맡는다고 한국의 첫 인상을 말하던 그 시절, 갓 스무살의 젊은 대학생에게서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는 것은 깨끗하고 청초한 청춘의 표상이다.  

이렇게 느타나무는 청춘의 풍성한 꿈과 미래를 상징했다. 그리고 전통과 역사를 말해주는 증언자이기도 하다. 옛 마을 앞에 이르면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가 수문장처럼, 혹은 수호신처럼 우람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면 공연히 마음이 듬직하고 풍성해진다. 유서깊은 마을의 역사는 물론 수백 년의 세월을 지켜온 증인으로서 저절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르게 된다. 

¶ ‘역사의 산증인’ 느티나무, 세종시에서 싹둑 잘려 나가다 

이곳의

그런데 이 오래된 느티나무가 거짓말처럼 싹둑 잘려져 나가버렸다.

세종특별자치시 행복도시 집현리(4-2생활권) M5BL(옛 금남면 석교리) 민간참여 공공주택 건설사업 부지 중 근린공원 부지에 있는 느티나무다. 100년 정도 된 나무라고 한다. 높이가 12m, 둘레가 3.6m 가까이 되는 노거수(老巨樹) 반열에 오르는 나무다. 이 나무는 지난 4월말 누군가에 의해 세 트럭분의 목재로 잘려 실려 나갔다고 한다. 건설업자거나 해당 기관이 귀찮아서 잘라내버렸을 것이다. 

그곳은 오래된 마을과 금석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마을 사람들이나 그곳 학교 출신들은 사라진 학교와 마을 대신 오직 하나 남은 느티나무를 보고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 그늘 아래서 쉬면서 농사의 고단함을 달래고, 소년들은 느티나무 그늘에서 공책을 펴들고 숙제를 하고, 때로는 놀이를 하면서 나라의 듬직한 기둥이 되겠다는 꿈을 다듬었을 것이다.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은 고향을 찾으면서 변함없이 맞아주는 느티나무에 어떤 자부심과 함께 고마움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느티나무가 사라지지 않고 다행히 근린공원 지역 안에 보존된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고 한다. 느티나무가 그대로 보존됐다면 고향 사람들 뿐 아니라 근린공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에게 마을의 유래와 세월의 더깨가 낀 사연들을 제공하고 여유와 낭만을 안겼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잘려나가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누구 짓이냐고 항의해도 뚜렷하게 주체가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 사랑의 일기연수원, ‘법정 싸움’의 한 켠에 선 느티나무 

느티나무가

그곳은 (사)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세종지역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 있는 곳이다.

1990년대 초부터 2016년까지 전국 초ㆍ중ㆍ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사랑의 일기쓰기 보급운동을 펼치고, 20여년동안 전국 5000여 학교에서 수집한 사랑의 일기 120만권을 폐교한 금석초등학교에 보관해놓고, 유네스코에 등재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도시정비 구역지구라고 해서 학교를 철거하면서 보관된 사랑의 일기 대부분을 매립했다고 한다. 사랑의 일기 운동본부측은 사업주체인 LH를 상대로 지금 법정 다툼 중이다. 

보관된 기록물 중에는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전 대통령, 미당 서정주 시인의 서간문 등 명사들의 격려의 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사랑의 일기 측은 매립된 기록물을 발굴하고자 지금도 현장에 머물러 있다. 

¶ 선진국과 대비되는 ‘LH’의 개발 행정 

사랑의 일기 연수원과 관련해선 법정 다툼 중이니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고, 이에 대해선 자세히 논하지 않겠다.

그에 앞서 우리의 문화의식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신생국 미국 댈러스, 캐나다의 몬트리올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인디안의 집, 산막 움집으로 사용하는 옛 통나무 집을 도시 복판에서도 그대로 보존한 것을 봤다. 역사가 짧기 때문에 나무토막 하나라도 보존하려는 갸륵한 뜻으로 비쳐졌지만, 문화의식의 지평을 넓히려는 철학을 볼 수 있었다. 

직선으로 도로를 내야 편의성이 담보될텐데도 노거수를 살리기 위해 옆으로 도로를 내서 돌아가는 경우도 봤다. 

세종시로 다시 돌아와 백보 양보해서 설사 법적 문제가 없다고 해도 편의적으로 소중한 기록물과 오래된 나무를 철거할 이유는 없다. 토지구획 정리에 지장이 온다고 없앤다는 것은 그 발상 자체가 폭력적이고 몰상식적이다. 

그것 또한 법적 권한의 여부를 따진다는 것이 아닌가. 정 현장 보존이 어렵다면 대안을 고려했어야 했다. 

도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