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면의 주요 지명유래(1)

2012-09-17     송길룡

세종시 행복도시건설지역에 대체적인 관심이 쏠려있는 가운데 기존 생활터전을 이루던 면단위 지역 마을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더욱 줄어든 상황이다. 세종시라는 큰 울타리 안에 오랜 전통을 이어져 내려오는 마을들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필요한 때다. 최소한 지역내의 마을 지명에 대한 관심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한다. 지난 7월 본지에서 소개하던 지명이야기를 이어가며 좀 더 마을들에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연서면
세종시의 서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조치원읍, 연동면과 접하고 서쪽은 공주시, 남쪽으로는 연기군, 북쪽으로는 전의면, 전동면과 인접해 있다. 연기군의 서면에서 세종시 출범과 함께 연서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연서면의 남부지역은 조치원읍 생활권으로 군사 및 농업지역으로 미곡생산의 중심지이며, 사통팔달 간선도로망 확충으로 도농복합형 생활권이 형성되어 있다.
연서면의 북서부지역은 과수주산지로서 배, 복숭아, 포도가 유명하여 서울 등 대도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고복저수지가 시립공원으로 위치해있다.
와촌·기룡지역을 중심으로 한우, 젖소, 돼지 중심의 축산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나 축산오폐수 시설이 미비하여 하천오염 우려가 있어 공동정화시설 설치가 요구되는 지역이다.
지리적 여건과 교통의 발달로 다수의 제조업체들이 입주해있으나 산업기반 조성은 다소 열악한 실정이다.

청라리(靑羅里)
조선말엽 연기군 서면의 지역이었다. 이곳은 지형이 나발 같다 하여 ‘나발터’ 또는 ‘청라(靑羅)’라 불리게 됐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시 이웃마을을 병합하여 청라리라 하고 서면에 편입됐다.

용암리(龍岩里)
조선말엽 연기군 서면의 지역이었다. 금당산에 용이 산다고 하는 설산이 있고 용바위가 있으므로 용암(龍岩)이라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시 서면에 편입됐다.

와촌리(瓦村里)
조선말엽 연기군 서면의 지역이었다. 이 지역엔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기와집이 많은 곳으로 와촌(瓦村)이라 불렸으며 또한 기와를 굽던 곳이기도 하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시 서면에 편입됐다.

쌍전리(雙錢里)
조선말엽 연기군 북이면의 지역이었다. 이곳은 산세가 수려해서 마치 중국에서 경치가 으뜸인 전당(錢唐)과 흡사하다 하여 그 이름대로 ‘전당리’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혁 개혁시 쌍괴리와 병합하면서 쌍전리(雙錢里)가 되어 북면에 편입됐다. 이후 1917년에 서면에 편입됐다.
<연기군지(2008)>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