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봉에 안기면 이야기가 보인다

[부강이야기] 노고봉2

2012-08-30     김수현

노고산성과 애기바위성, 그리고 전설


산사람들은 산행을 ‘등산(登山)’이라 하지 않고 ‘입산(入山)’이라 얘기한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의 표현인 것이다.
산이 품고 있는 유장한 역사와 이야기 속에서 성찰하고 배워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이다.
노고봉은 구간거리는 짧지만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다. 부강사람들은 40분이면 족히 정상을 오를 수 있지만, 외부인들은 중간중간 쉬어가지 않고는 쉬이 오를 수 없다.
어차피 쉬어갈 것이라면 노고봉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노고봉을 매개로 시공간의 경계를 초월하여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기도 하다.
부강약수에서 연개소문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고, 육철식 시비에서 빨치산 이야기와 한국현대사의 비극적 인물들을 조우할 수 있다. 노고산성과 애기바위성에서는 삼국시대의 치열했던 접전지로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시대와 지역의 상징을 ‘전설’이라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냈던 선조들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
오늘은 ‘노고봉 1 - 부강약수와 육철식 시비’에 이어 노고산성과 애기바위성, 그리고 그곳에 담겨있는 전설과 이야기를 만나보기로 한다.


노고산성
부강면 중심부에 우뚝 솟은 해발 305m 노고봉을 둘러싼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196m이다. 산성의 평면형태는 동-서 방향으로 긴 타원형으로 서쪽이 좁고 동쪽이 넓다. 성내의 규모는 동-서 방향의 길이가 70m 정도이고, 남-북 방향의 길이가 42m 정도이다. 노고산성에서는 금강을 하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며, 남쪽으로는 신탄진과 대전, 북쪽으로는 부강 전역과 조치원을 조망할 수 있다. 부강면에 남아 있는 10개의 산성 가운데 중심적 위치에 있으며, 성안에서 삼국시대의 토기와 기와조각이 다수 발견됐다. 지금은 산성의 구조물은 찾아볼 수 없고, 흔적만 확인할 수 있다.

▲ 거북바위, 애기바위에서 30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노고성의 전설
오랜 옛날 이곳에 힘센 장사 가족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모두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아들은 산신의 노여움을 사서 힘을 빼앗겨 죽고 말았다. 아들과 남편을 잃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한 집에서 살다 보니 매일 싸우며 언쟁을 벌였다. 이에 산신은 두 사람의 언쟁이 끝이 없으니 내기를 해서 지는 쪽이 집을 나가기로 했다. 내기로 시어머니는 노고봉에 성을 쌓고 며느리는 널빤지를 써서 문주산을 허물어 곡식이 많이 나도록 전답과 평지로 만드는 것으로 기한은 백일로 정했다. 그 결과 산신의 도움을 받은 며느리가 이겼다. 내기에 패한 시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이곳을 떠나 만뢰땅에 들어가 성을 쌓으며 여생을 보내다가 거기서 죽었다. 그때부터 시어머니가 쌓은 성을 노고성(老姑城, 늙은 시어머니성)이라 부르고 있다.

▲ 애기바위

애기바위성
노고봉 산성(老姑峰山城) 남서쪽의 해발 291m 정상부에 있는 석축산성이다. 성 남쪽으로 45m 떨어진 곳에 ‘애기바위’라는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천연 암벽 위와 암벽 사이에 석축 성벽을 축조하여 남서쪽으로 금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성의 형태는 북동-남서 방향의 긴 타원형으로 둘레는 123.8m 정도이며 봉수터로 전해지고 있고 봉화대가 자리잡고 있다. 성내의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경질의 회색을 띤 삼국시대 토기편이다. 지금은 노고산성과 마찬가지로 산성의 구조물은 찾아볼 수 없고, 흔적만 확인할 수 있다.

▲ 노고산성의 구조물은 찾아볼 수 없고, 돌무더기 흔적만 발견할 수 있다.

애기바위 전설
아득한 옛날 하늘에서 노고봉의 정기를 받아 장사 하나를 내려 보내기로 하고 힘센 황소에게 24개월 잉태시켜 노고봉으로 보냈다. 이에 장사를 잉태한 황소가 출산하는데 분만이 어려워 하늘에서 선녀를 내려 보내 해산을 도와주기로 했다. 황소는 해산자리를 정상에 있는 바위로 정하고 장수를 낳자 산이 흔들리고 무지개가 하늘로 뻗었다. 이에 선녀가 산바라지를 끝내고 하늘로 승천하자 바위에 앉아있던 호랑이가 바위로 올라가 아기장사를 에워싸고 호위했다.
이 때 조산에 사용했던 가위 자리와 황소가 일어나 물을 마셨던 발자국이 남아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애기바위’라 부르기도 하고 혹은 ‘소머리 바위’라고 부르고 있으며, 범이 많아 이리떼의 접근을 막은 고을을 ‘범 바위마을’ 또는 ‘범벅골’이라 이름 지어 전해오고 있다.

▲ 애기바위 위에 전설에 나오는 황소 발자국이 남아있다.
▲ 봉화대 아래의 애기바위성 흔적, 노고산성과 마찬가지로 돌무더기 흔적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