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더워! 한복은 반팔이 없나봐요

한여름의 고전영화 ⑥ (장윤현, 2007)

2012-07-24     송길룡

이번에는 말그대로 고전영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영화 속에서나마 ‘고전’을 즐겨볼 수 있는 한국 사극영화를 골라봤다. 본지에 세시풍속을 연재하시는 정규호 전통장류명품화사업단 사무국장님과 잠깐의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정 사무국장님이 영화 <황진이>와 <신기전>에서 민속의례 부문 감수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반가웠다. 확인해 보니 정말 엔딩크레딧에 이름이 나왔다. 이참에 해를 거듭할수록 제작비를 상승시키며 ‘명품사극’ 열풍을 불러온 몇 작품들이 떠올라 소개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무더위에 두툼한 한복 옷차림을 보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정 사무국장님의 지난 호 삼복 이야기 제목처럼 ‘이열치열의 지혜’란 말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 황진이의 한 장면. 잠시 계곡에 머문 황진이. 유혹하려 했으나 서경덕으로부터 세상을 보는 큰 배움을 얻게 된다.

여배우 송혜교는 TV드라마에서 남다른 주목을 받으며 이력을 쌓아오다가 2005년 <파랑주의보>를 계기로 천천히 그리고 신중한 듯한 모습으로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하는데 영화 여배우로서의 아름다움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두번째 출연작 <황진이>를 통해 확실하게 일반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신분제가 엄격하던 조선 초기 양반가에서 태어나 사대부 규수로 성장했지만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면서 황진이는 부모에 대한 분노를 머금고 집을 떠난다. 그리고 신분제의 질곡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으며 자청하고 천대받는 기생이 된다. 황진이는 자신의 이름을 명월이란 이름으로 바꾸고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비천함 속에서 더욱 이문을 크게 남길 수 있는 손님을 받기 위해 서로 이판사판 물고뜯기만 하는 기생들의 집단. 특유의 고집과 집념으로 버텨낸 명월은 이후 명성을 쌓으며 양반계급의 군자연하는 사내들을 차례로 농락하면서 누구도 함부로 넘겨볼 수 없는 천하의 ‘평양 기생’이 된다.

그 이전 사극영화에서와는 달리 <황진이>에서의 한복 디자인은 화려함을 억제하고 다소 어두운 계통의 색조를 전반에 입힘으로써 비천한 운명속에서 자기자신을 깨달아가는 황진이의 심리를 잘 드러내도록 하고 있다. 한복뿐만 아니라 기생 규방에 아기자기하게 진열된 고가구와 소품들도 눈여겨 볼 만하며 가옥 정원에 꾸며진 아담하면서도 품격있는 조경무대 역시 영화에 잘 어울린다.

옛날 가옥, 옛날 옷을 입기만 한다고 해서 사극의 풍모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고급스럽고 유려하게 디자인된 소품과 세트장으로 꾸미기 시작하고 사극영화를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화려하게 만들기 시작한 그 출발점에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2003)가 있다. 바람둥이 한량이 요조숙녀를 유혹해서 결국 사랑에 굴복하게 만든다는 설정이지만 이 영화는 이후 사극영화의 제작방향을 확 바꿔버렸다. 배용준-전도연-이미숙의 호연도 눈부신 구경거리다.

<스캔들...>의 각본가가 자신이 직접 연출한 <음란서생>(김대우, 2006)도 역시 화려한 한복의상과 소품들을 대거 투입하면서 ‘명품사극’의 바통을 이어갔다. 당대 명문가 선비가 잡스러운 도색소설을 쓰면서 왕가의 여인과 은밀한 연애를 하다 들켜 크게 봉변을 당한다는 이야기 구성이다. 한석규-이범수-이민정 등 스타배우들이 출연하고 더욱 에로틱한 국면을 부각시켜간다.

아마도 화려한 사극영화 제작 유행의 정점에 <쌍화점>(유하, 2008)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조인성-주진모-송지효 배우 라인이 보여주는 개성넘치는 외모의 조화와 그들이 펼치는 삼각 동성애 구도의 극적인 매력이 크게 돋보인 영화다. 왕이 신하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왕비와 동침하게 한다는 설정은 사극영화의 에로틱한 측면을 극점까지 끌어올려 커다란 쾌감을 낳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