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출범 특집좌담회] 세종시를 지킨 사람들

세종시 출범 맞는 충청권비대위와 연기 사수대책위

2012-07-03     홍석하


아직도 많은 과제 남아... 새로운 조직으로 정상건설 견인해야

<세종포스트>는 7월2일 역사적인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을 앞두고 2002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 등 3대특별법 제정부터 지난 10년간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수도 지속추진, 세종시 원안추진에 앞장섰던 행정도시정상추진충청권비대위와 행정도시사수연기군대책위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을 초청해 ‘세종시 10년의 투쟁과 과제’를 주제로 특별좌담회를 열었다.좌담에는 이상선 충청권비대위 상임대표, 이두영 충청권비대위 운영위원장(충북경실련 사무처장), 금홍섭 대전집행위원장(대전참여연대 사무처장), 노민용 충청권비대위 조직부장(금송아파트조합장), 채평석 청원군대책위원장, 황치환 행정도시사수연기군대책위 사무처장이 참여했다

◇출범을 맞는 소회와 세종시 원안추진 운동에 참여한 계기는?

금홍섭= 2003년부터 참여해서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는데 의미를 담아 소회를 정리하자면 행정도시인 세종시 출범의 의미는 국내외적 의미가 크다.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발전을 위한 국책사업의 상징적 정책이다.

그런 점에서 세종시 출범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태도는 여전히 미온적이고 대통령이 참석 않는 점은 엄중히 따져물어야 한다. 언론과 여론에도 나타나지만 비대위 차원에서도 언급할 것은 언급하고 지적할 부분 하는 게 남아있는 역할중 최소한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상선= 2001년 지방자치헌장 선포식을 시작으로 행정수도 싸움에 참여하게 됐는데 분권운동에 집착하고 나름의 소신을 자지게 된 것은 경험적 계기가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서울로 올라가 23년동안 살면서 서울의 생활양식, 규모, 수준을 직접 체득하면서 느낀 점 많았다.

지역운동을 위해 청양이라는 동네에서 지금도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물리적 조건,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서 지방이 너무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고 차별이 심하다.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에 모든 인프라가 집중되고 지방은 황폐화되고 과소화되는 문제를 고민하면서 허덕이고 있을 때 마침 분권운동과 만났다. 돌이켜보면 지난 12년 동안 내 운동의 절반이상, 생활의 절반 이상을 세종시에 전념했다.

채평석= 2005년도에 부강이 주변지역 지정, 고시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군수는 부용면이 세종시 편입되어야 발전될거라고 얘기해와서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걸로 생각했는데 주변지역 고시에 대한 발 빠른 대처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어 지역 번영회를 중심으로 얘기하다 초대 주변지역대책원장으로 추대됐다. 당시는 부용과 강내 3개리가 주변지역이었다.

청원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남면의 안원종위원장, 공주 이충렬의원과 함께 몇 번 회의를 개최했다. 당시에는 주변지역에 대한 규제가 심했는데 그린 링을 두고 연담화를 방지하겠다는 계획이라 규제완화를 강력히 요구해 개선시켰다.

황치환= 공교롭게도 오늘이 1300년 역사의 연기군이 사라지는 날이다. 의미있는 날에 지난 10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세종포스트에 감사한다. 이상선 대표의견에 공감한다. 이 지역 사람으로 시민사회운동 경험도 없고 순수하게 개인일 만 하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신행정수도 공약에 굉장히 공감했다.

대책위 일을 실질적으로 한 것은 1기~5기로 나누었을 때 5기에 중점적으로 일했다. 지역주민들의 뜻을 하나로 모아 견인해 내는 데 애로사항이 있었으나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두영= 출범을 하루 앞두고 이야기하는 현실이 꿈같고 이제야 좀 실감이난다. 특히 이명박 정권 말기에 이런 대담을 하는 것이 감개무량하다. MB 당선때는 이 정권 하에서 어찌 지낼까 깜깜했다. 아예 외국나갔다 온다는 사람도있었다.

◇ 시민운동 관점에서 본 세종시 원안사수투쟁은

금홍섭= 행정도시 세종시 출범 역사는 충청권 역사이자 전국 지방분권, 균형발전의 역사였다. 세종시와 관련된 대전에서 과정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 상생발전의 충청권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 준 과정이었고 대전지역은 지역정당과 맞물려있는 애매모호한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양보하고 최우선적으로 이문제를 의제화한 정치력 업그레이드 과정에도 세종시 문제였다.

시민운동 굵직한 의제인 것은 물론이고 시민운동과 지역사회가 같이 융화할 수있는 한 원인에 세종시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싸움이었다.

이상선= 돌이켜보면 신행정수도-행정도시-세종시까지 시민사회에서는 명칭도 걸맞게 움직여왔는데 지방분권국민운동충청권협의회를 촉발시킨 것도 적절한 계기였다. 이것이 세종시정상추진충청비대위의 태동이었다. 시민사회가 이 운동전개하면서 상황판단을 먼저하고 가장 앞장서서 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여론의 흐름, 물줄기를 잡아 언론이 이를 적절히 보도해왔다는 점이 무척 중요했다.

많은 고비와 위기의 단락마다 시민운동이 이익단체도 아니고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희생을 감수하면서 여론 주도 흐름을 이끌어왔다. 충청권 시민운동이 세종시 둘러싼 역사를 훑어보면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다. 진정성을 갖고 해왔는데 처음부터 현 단계까지 평소에 팔짱 끼고 있던 정치권이 필요할 때 이용하고, 과실을 따먹고 차려진 밥상을 독차지하는게 현실이다.

정치권과 생리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느꼈다. 행복청청 개청, 세종시 기공식에 참석하면서 착공하면 되돌릴 수 없다고 안전판이라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참여정부가 강하게 어필하지 못한 허점이 있었다. 시스템이나 제도가 미비한 부분이 있었다. 분권운동의 흐름을 그동안은 영호남이 잡아오다가 행정수도가 핵심의제가 잡히면서 흐름이 충청권으로 넘어오게 됐다.

작년 12월14일 균형발전지방분권전국연대 출범에 박원순 시장이 흔쾌히 동의하고 참여했다. 이제는 수도권하고도 갈등이 아닌 상생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오는 7월11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과 만나고 서울시의회 측과 분권관련 토론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두영= 충북은 균형발전 싸움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고 민관산하 공조협력이 잘 구축돼 있었다. 여야 정치권은 가끔 문제가 있더라도 시민사회는 좌우없이 하나의 단일한 대책기구를 만들어 해 왔고 인적자원도 형성되어 왔다. 오송오창, 케이티엑스 등 성과도 있었다.

충북은 하나인데 오히려 대전충남은 시민단체에 행범련으로 분할, 분리돼 있어 이중 삼중 구조를 가지고 있어 어려웠다. 충북 안에서도 비판은 있었지만 국가균형발전운동을 먼저 시작했고 그것이 신념이 되어 흔들림없이 올 수 있었다. 오송역 싸움에서 좀 갈라진 부분 있었다. 이것 때문에 세종시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오송역에 집중하자는 제기가 있었는데 세종시를 살려야 한다는 것으로 가면서 세종시는 연기공주입지선정으로, KTX는 오송역으로 결정됐다.

▲ ◆ 좌담 참석자왼쪽부터 이상선 행정도시정상추진충청권비대위 상임대표, 이두영 충청권비대위 운영위원장(충북경실련 사무처장) 금홍섭 대전집행위원장(대전참여연대 사무처장), 노민용 충청권비대위 조직부장(금송아파트조합장) 채평석 청원군대책위원장, 황치환 행정도시사수연기군대책위 사무처장 사회: 홍석하 기자, 정리: 김소라 기자

◇ 10년의 과정에서 특별히 떠오르는 장면은

금홍섭= 지금도 사진, 자료를 가끔 보는데 정말 기억에 남는 것은 수정안 확정 기자회견하던 날이 떠오른다. 2010년 겨울, 확정 발표하던 날, 연기주민이 보여준 발언하는 내용과 태도, 자세가 보통 훈련된 구성원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었다. 2003년부터 조직적 싸움으로 인해 세종시 추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그런지 높은 수준의 자세와 입장을 견지했던 흔들리지 않았던 주민들은 감동을 주었다.

어떤 떡고물에도 회유당하지 않고 대의적 차원에서 행정도시 사수의지를 보여준 주민들을 보며 이 싸움은 이기겠다고 생각했다. 7년 정도 투쟁의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상경집회나 대규모집회가 아니라. 그날 억울해 했던 연기군민들의 자세였다.

이상선=정운찬 총리와 토론회 때 그가 계속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손을 떠는 모습을 보면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정 총리에 마지막 자존심 지키기 위해 정권에 이용당하지 말고 총리직을 내려놓으라고 강력히 요구했던 기억이 난다. 정권의 부도덕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충청출신 심대평의원을 총리로 내세우려다 이회창 브레이크에 걸려, 다시 충청출신 정운찬을 내세워 충청의 염원인 행정수도를 무산시키려 했다.

그때 정총리와의 토론이 9시 메인뉴스에 나와 100여통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난 10년간 활동하느라 기름값만 월에 7,80만원정도 들었다. 2007년도에는 안동대에 2단계 균형발전선포식에 다녀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차량수리비로 500만원이 들기도 했다.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10여년 일지를 살펴보면 며칠을 얘기해도 부족할 거다. 워낙 집안 일 안 돌보고 돌아다니니깐아내가 이혼을 하고 싶어도 함께 법원에 갈 시간이 없어 못하는 처지라는 말을 하더라. 항상 미안함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채평석= 주변지역 일원으로 역할하다 보니 세종시가 노무현 대통령이 준 선물이라는 걸 그 때 눈을 뜨게 됐고 대한민국이 재도약하려면 세종시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인식하고 그 때부터 신념을 가지고 운동을 해왔다. 이전에는 시민사회운동을 접하지도 못했고 역할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온 사람인데 이 일을 하면서 시민운동가도 만나고 눈을 뜨게 돼 보람을 느낀다.

당시 연기군 통추위와 이견이 있었는데 보상을 좀 더 받으려는 흐름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재도약의 기회인데 선물을 갖다놓고 건설도 되기 전에 통합논의는 안타까웠다. 그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김재욱군수가 당선됐는데 첫 기자회견 때 청원군 땅은 세종시에 한평도 줄 수 없다고 언론에서 공언했다.

청원군편입반대대책위가 이장을 중심으로 행졍력을 동원해 반대를 하기 시작했고 계속되는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등으로 어려움이 예견됐다. 행정력이 그렇게 강할 줄이야! 걷잡을 수 없이 반대운동이 번져나갔고 2007년 5000여명을 동원해서 집회하고 현수막이 수백장 걸리고 지금도 생각하면 어떻게 막강한 행정력과 대응해 싸웠는지 아찔하다. 원안사수도 하고 반대파와도 싸우고 참 힘겨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연세드신 분들이 동조해줬고 반대를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격려해 주는 분들이 있어 힘을 많이 받았다. 살면서 두 번 울었다. 5000명 동원해 복지회관에서 궐기대회를 하고 시가행진하는 데 군수가 자기 땅인 것처럼 막무가내로 반대하는데 대항할 힘이 없으니 눈물이 나더라. 먼발치에서 눈물만 흘린 일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잠시침묵) 그럴수록 내 마음과 함께 한 분들 때문에 힘을 더 냈다.

세종시 당위성은 갈수록 굳어졌다. 당위성을 알고 나서는 편입찬성을 더 열심히 했고 국회 행안위 법안소위에 가서도 편입의견 당당히 밝혔다. 우리나라 변혁을 주는 데 함께 한다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졌다.

황치환= 신행정수도가 세종시로 오는 과정에서 가장 분노한 것은 이명박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연기군청에서 함께 시청하면서 분노했고 MB가 루비콘강을 건넜다. 명분과 국민정서, 여론으로 분명히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정치적 현안 속에 오해도 있었고 우리군민 정서가 국가사업에 이처럼 빨리 협조하고 보상에 협의한 것은(1년8개월) 이례적인 일이었다. 수정안의 원형지 공급 등 장사꾼 논리로 협잡꾼에 가까웠다. 군민의 힘으로 진정성으로 국가권력을 이겨낸 사례가 됐다.

한편으론 수정안을 막기위해 촛불집회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150회 참여했는데 집에 들어가면 집사람이 붙잡고 울었다.그만하라고 그 때 참 힘들었다. 여러사람의 회유와 압박으로 집안도 힘들었다. 사수투쟁에 참여하다보니 생업도 포기하고 뒤늦게 들어간 야간대학도 결국 수업시간을 채울 수 없어 끝내 졸업도 못했다.

◇ 세종시 출범을 맞았다. 싸움은끝났나, 향후 과제는?

금홍섭= 여전히 우리의 역할은 남았다. 전국 분권연대 모임을 하면서 행정수도-행정도시- 지금 세종시 과정에서 행정도시 만드는 데 동의했던 국민들의 지방분권, 균형발전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종시 출범을 비대위 역할 끝난 것 아니다.

대의적인 명분을 이해 못하는 국민들을 설득하고 수도권 국민들의 양해도 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당장 대전-충남북-세종시 상생발전과 공존의 가능성과 비전과 전망을 우리가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에 우리의 태도와 자세는 명확하다. 역할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상선= 세종시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으로 만든 도시로 행정수도를 지향해야 하는데 아쉽고 국가, 사회적 합의를 관철해 완벽한 도시, 행정수도로 가는 게 궁극의 목표가 돼야 한다.

대내외적으로 유의해야 할 것은 내부적으로 볼 때 세종시 자체가 조치원특별시, 충청권 특혜시로 건설되는 게 아니라는 걸 지역 내에서도 대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지역의 리더나 시민운동가들이 짐을 내릴 단계 아니다. 세종시의 완성도 높이기 위해 새로운 2단계 사수운동으로 새로운 운동흐름을 빨리 잡아내야 한다.

이두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세종시가 정상추진 과정까지는 아직 멀었다. 2일 출범식에도 청사를 갖지 못한 상황을 볼때 여전히 정상은 아니다. 또한 네트워크형 도시로 설계된 세종시에 있어 광역권 도시계획이 중요하다. 주변도시와 기능분담해 네트워크가 돼 있는데 10개 혁신도시와의 기능분담 연계성, 기업도시로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토종합계획도 이 정부들어 수정되고 다 훼손됐다. 균형발전특별법도 껍데기만 남은 상태다. 전체적으로 세종시 정상추진과 균형발전정책도 원래의 정상 궤도로 되돌려야 한다. 세종시민 만의 노력이 컸지만 지방민의 공조협력이 없었으면 원안추진은 어려웠다. 우려는 세종시가 충청권의 블랙홀이 되면 국가적 불행이 된다. 그동안 세종시가 도움을 받았다면 원천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세종시의 위상과 역할이 중요하다. 국무총리가 와 있는 곳인데 중앙부처 권력기관 내려와 있어 마치 시어머니 모시는 것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대등한 협상과 싸워나갈 수 있는 위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초대 시장으로이해찬 총리를 생각하기도 했다. 선거결과 세종시의 역량과 자원으로는 어려움이 많다. 보완을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정책자문단을 전국 규모로 꾸릴 필요가 있다.

국가균형발전 선도 거점 도시로 만들기 위한 과제와 대안이 필요하다. 분권균형발전 세력과의 연대도 더욱 공고히 해야한다. 싸움의 과정에서 모두가 외면했던 어려운 상황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충북대전충남 공동의 공조협력체제 공고히 해서 충청권공동발전을 위해 몇가지 할 일이 있다. 공동으로 자금도 출연해서 만들 필요도 있다.

영호남공동발전을 위한 기금조성을 하고 있는데 충청권도 이를 과감하게 할 필요도 있다. 청원의 독지가의 도움으로 균형발전연구원을 준비하고 있는데 세종시에도 세종시와 관련 연구원을 만들어 연구와 연수, 교육 등 복합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단 공공행정기관형태 아닌 거버넌스 형태로 만들어가는 것도 적극 검토,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수도권에 대항축을 만드는 것인데 이 대항축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경부고속도로의 반대축 도로건설이 필요하다고 조명래 교수가 주장하는데 필요하다. 역할은 수도권의 대항축 형성인데 이를 위해서는 경부축 반대축을 빠르게 형성해야 한다. 세청진이라고 청주청원 통합시. 기업, 혁신, 연대 축인 X축이 세종시와 공조협력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지역이 균형발전에서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이기 때문에 서로 협조가 필요하다.

황치환= 향후가 더 걱정인데 국가균형발전의 핵심도시로 역할을 수행하려면 난제와 과제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보다 더 기민하게 대응해서 움직일 조직과 역할보다 더 촘촘한 조직이 다시 필요하다. 금년 9월부터 일부 부처이전을 시작한다.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에게 세종시 문제를 정리해서 공약에 제대로 담을 수 있도록 빠른 대응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출범을 앞두고 과제가 많다. 원주민과 이주민과의 관계등 세종시 정상추진을 위해 새로운 조직을 제대로 만드는 게 옳다. 시민단체가 많이 생길 예정이다. 함께 소통하고 정책적 대안 찾아 역량있는 지역사회로 발전해 가야한다. 과정에 문화예술 단체의 활동과 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문화예술인들 모아 크고 작은 문예정책을 만들고 지역축제와 동네축제 등 시민사회, 문화예술단체가 어우르는 단체가 필요하다.

노민용= 고향은 아니지만 섭섭한 것은 희생당한 사람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들 없었으면 이 도시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생각해 달라 원주민들의 보상문제를 얘기하고 싶다. 세종시가 절반의 성공이다, 출범이다 하는데 이런 논의에 원주민 애환은 안 담겨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맘이 든다.

원주민은 직접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세종시는 원주민 재정착율을 60% 이상으로 높이기 위한 정책을 가지고 있었고 원주민을 첫시민으로 삼겠다고 했지만 원주민 대부분은 아직도 재정착을 못하고 떠돌고 있다. 주민입장에서 보면 4,400가구가 있었는데 얼마나 재정착할 것인가 주 관심사인데 10~20% 예상한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도 지자체도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면 세종시 출범은 정치권, 외지인, 지자체 만의잔치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이제라도주민들의 애환을 다시 생각하자. 원주민이 살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지원해야 한다. 대부분이 직업없이 생활하고 있다. 원주민의 이주와 생활에 대한 추적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 행정수도 재추진에 대해

금홍섭= 행정수도는 걱정했으나 마침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에서 청와대 집무실, 국회 분소 언급되고 있는데 우리가 무리하게 선거국면에서 행정수도로 공식화하고 요구하기보다 적절하게 과정을 상정해서 청와대 집무실, 국회 분소를 만들어 행정도시 기능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하는 게 전략전술상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특히 대선 후보자들, 자연스럽게 수위조정하면서 기회가 됐을 때 언론 토론회나 간담회에서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행정수도에 대한 대권후보자들에게 묻는다면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하다. 자연스레 제기를 통해 행정도시 갈등요소 최소화하면서 추구하는 성과물을 극대화할 수 있을것이다.

채평석= 당초 목표는 행정수도, 누군가는 서울을 분할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래야 우리나라 경쟁력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고 잘한 일이라는 평가를 받을수 있다.

이두영= 출범이후 행정수도 문제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나설 필요는 없다. 자연스럽게 부처 이전 후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확하고 정교하게 해나가야 한다. 청와대 집무실, 국회 분원 설치등 주장은 나쁘지 않으나 감정적으로 할 게 아니라 수도 주장은 좀 더 단계적으로 해야한다.

◇ 세종시 관련 그밖에 의견들

-세종수정안 부결, 박근혜 역할?
이명박정부 시작되면서 행정도시 무산과정에서 박근혜대표는 어떤 역할 했나? 지금 행정도시를 지켜냈다고 감사할 일이라지만 그 중요한 맥락에서 행정도시가 무산됐는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면 이건 동조한 거다. 사실은 지켜 낼려면 행정수도를 지켜 냈어야 역사적평가를 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명분축적용이었지 정치적으로 전략적 판단을 해서 충청권이라는 정치적 거점을 확보하는 차원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행정도시 지켰다고 고맙다 할 수 있나, 아버지 때부터 수도권 과밀집중을 막기위해 임시수도까지 세웠는데 행정수도를 지키는 것이 맞는다고 위헌판결 당시 주장했어야 한다. 행정도시 지킨 고마운 사람이라는 평가는 역사적 맥락 차원에서 재평가하고 짚어야 한다.

-지역 언론의 반성이 있어야
놓치고 싶지 않은 것. 이명박정부 들어와 백지화 음모를 노골화시키면서 2009년 정운찬 등장하면서 지역언론의 행태는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그네들 선전기관지처럼 앞장서왔던 모든 언론들이 지금은 세종시 지키는 데 대단히 기여한 것처럼 호들갑떨고 있다.

그러나 지역언론은 하고 싶은 말을 할수 있을때 만 했지, 말해야 할 때 해야 될 때 하지 못했다. 말할 수 있을 때만 하는 상황논리에 매몰된 언론의 행태로 인해 결국 세종시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원인이었다는 생각이다.

-출범식 대통령 불참
세종시 출범 하루 앞두고 대통령이 출범식에 안 오는 것은 도저히 끝내 세종시를 노무현 브랜드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정말 옹색하고 속좁은 판단으로 국가 지도자로도 부끄럽고 역사적으로도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단일사업으로 단군이래 최대사업이고 대한민국 도시건설에서도 큰 의미를 담고있는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은 문제다.

그럼에도 자기 브랜드 4대강은 망가져도 집착하고 있는데 이미 실패한 대통령으로 이런 지도자를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12월19일 대선을 앞두고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