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만 하다 목숨 잃은 덩치 큰 괴물

[별자리이야기] 고래 케투스

2012-06-26     송길룡

▲ 2012년 6월 26일 06시 새벽하늘의 고래자리. 자료=한국천문연구원.

고래는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까? 포세이돈의 명을 받아 에티오피아 해변으로 온 괴물고래 케투스는 매일 바닷가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든다. 누가 봐도 흉측해서 고개를 돌릴 만큼 무서운 대가리와 어떤 바위도 으스러뜨릴 철갑꼬리. 집 채 만 한 몸뚱이를 한 번 뒤척일 때마다 고깃배들이 뒤집히고 해변마을이 폐허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케투스는 케페우스 왕국 앞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다 해안 언덕 바위에 묶인 안드로메다 공주를 발견한다. 자신의 제물을 멀리서 바라보던 이 괴물은 이제 자신의 사명이 얼마 안 있어 끝나리라는 생각에 마음을 가라앉힌다. 하지만 말로만 듣던 안드로메다 공주의 자태는 오직 황량하지 그지없는 난폭자의 시선을 들뜨게 한다.

자신의 모습이 누구에게나 공포감을 주기에 어떤 이들도 가까이하기를 꺼리는 야수 같은 괴물. 케투스는 모든 이들에게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운 존재를 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포세이돈으로부터 죽음과 파괴의 사명만을 받아 충성을 다해온 그다. 엄청난 괴력으로 사방을 두려움에 벌벌 떨게 하는 신의 대리자가 아닌가. 그런 그가 죄없이 바위에 묶인 맑고 어여쁜 제물 앞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그때 페르세우스는 케페우스 왕에게 한 번 더 힘주어 말한다. "제가 저 괴물을 처치한다면 제 말대로 공주와 결혼하게 해주십시오." 왕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는 날개달린 신발을 들어올리며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페르세우스는 어인일인지 몸의 움직임이 둔해진 바다의 괴물 케투스를 향해 돌진한다. 창공을 유유히 활강하다가 땅밖으로 무심코 기어나온 한 마리 뱀을 맹렬하게 공격하는 독수리처럼 그는 괴물의 빈틈을 칼로 찔러댄다. 괴물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그를 잡으려 하지만 그는 사뿐히 날아올라 괴물의 꼬리를 피한다.

온몸이 칼자국으로 난도질당한 케투스가 몸뚱이를 비틀어 페르세우스를 향해 피를 뿜어낸다. 페르세우스가 신고 있던 신발이 피에 젖어 더 이상 날 수 없게 된다. 그는 바닷물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신묘한 바위를 발견하고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 바위에 의지하여 페르세우스는 기진맥진한 케투스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오로지 충성만을 다해온 고래 케투스를 위로하기 위해 포세이돈은 그를 밤하늘의 별자리로 올려보낸다. 망망한 대해 같은 우주에서 고래는 더 이상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고 자유로이 헤엄치게 된 것이다.

▲ 존 플램스티드의 천체도(1729)에 실린 바다괴물 케투스. 흉칙하고 기이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