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발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중년남자

[고전영화의 한 장면 (7)] 로리타

2012-06-04     송길룡

고전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오면서 이해하기가 약간 어려우니 조금 쉽게 글을 써달라는 반응을 종종 듣게 된다. 필자 역시 그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모저모 해법을 살펴보고 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한국 고전영화를 다루는 글이 나갈 때에는 그런 요청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옛날 영화의 테마를 살펴보는 마당에 그것도 모자라 문화적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내용을 담은 해외영화를 글로 전하자니 독자들께는 우선적으로 낯설음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을 곁들어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이번에 골라본 고전영화는 미국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1962년작 <로리타>다. 직업이 대학교수인 중년남자가 나이차로 보아 딸 뻘 되는 소녀에게 매혹되어 체면이고 뭐고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사랑, 이를테면 ‘원조교제’에 목매 인생을 망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나이 많은 남자가 나이 어린 여자에게 흑심을 품고 다가가 그녀를 어떻게든 품어안으려 하는 탈선적 애정심리를 묘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있는 상태로 두 모녀만이 단출하게 사는 미국의 한 중산층 가정이 배경이고 여기에 지위와 교양을 겸비한, 어쩌면 문학애호 중년여성이 탐을 낼만한 지식인 중년남성을 투입하는 설정이다. 이를 통해 그 당시 미국사회에서 가족관계 형성이 얼마나 큰 환상과 허상에 기초해 있는지 냉철하게 비판하는 시각을 담아내고 있다.

이쯤 되니 벌써부터 영화 소개가 무거워지는 듯하다. 이 영화 <로리타>의 창작적 의미를 단 몇 줄로 압축하여 설명하자니 불가피하게 된 일이다. 하지만 꼼꼼하게 행간까지 다 납득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중요해 보이는 몇 가지 키워드, 이를테면 ‘원조교제’나 ‘가족관계의 환상’ 등등을 눈여겨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가능하면 소개하는 영화를 직접 보시기 바란다. 아무리 쉽고 자세한 설명이 주어진다 해도 사실상 영화를 직접 관람하는 것만큼 쉬운 이해는 없으니까 말이다.


인상 깊은 장면을 골라 소개하는 것도 비슷한 취지로 마련된다. 이 글에서 선택한 장면은 남자주인공인 대학교수 험버트(제임스 메이슨)가 첫눈에 반했던 소녀 로리타(수 라이온)와 우여곡절 끝에 함께 살게 된 상황 속에서 그의 애정이 물씬 풍겨나오는 것으로 고른 것이다. 로리타는 침대 위에 비스듬히 팔을 괴고 누워서 콜라를 마시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험버트와 대화를 나눈다. 험버트는 질투심이 가득한데도 애써 자제하
며 로리타의 남자친구들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 중이다.

험버트와 로리타는 법적으로 부녀지간이다. 험버트는 자신이 세들어 살던 집의 여주인과 결혼했는데, 그 이유는 어처구니 없게도 그 여주인의 딸인 로리타와 이별하게 되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영화속 인물설정이 더욱 장면해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통해서 영화의 장면장면이 지닌 묘미를 전달해주고 싶은 욕망은 억누르기 힘들다.

험버트가 로리타의 발에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장면에서 로리타의 침대 위 자세는 우연적인 것처럼 나타난 듯하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 험버트가 처음 로리타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장면을 거슬러올라가 보면 단순한 자세 연출이 아닌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그때 정원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햇살을 즐기며 책을 보고 있었다. 왼손으로 땅을 짚고 약간 비틀어진 자세로 누워 책을 읽다가 험버트를 바라보는 모습이 이미 제시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인상 깊은 장면이 앞서 나타난 다른 장면과 겹쳐서 눈에 들어올 때 관람자는 더욱 큰 감흥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감흥들을 전하려 하는 데에 있어서는 아무리 해도 글로는 이루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게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모두 다 옮기지 못해도 글을 쓰고 다 알아듣지 못해도 글을 읽는 것은 사실은 영화를 그보다 더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소망은 글을 통해 만나게 된 독자들과 함께 한곳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