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문화, '장님들의 우화'와 다르지 않다

[세종시 문화연대 창립을 준비하며] <2> 임동천 민예총 세종지회 이사

2019-06-10     임동천

16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풍속 화가인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gel)의 그림 <장님들의 우화>를 보면 여섯 명의 맹인이 앞사람의 어깨를 잡거나 지팡이를 잡고 서로 의지해 길을 나서고 있다.

맨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장님이 넘어진다. 나머지 뒤따르던 장님들도 도미노 현상처럼 넘어지기 직전이다. 그런데 브뤼헐은 여섯 명의 얼굴에 자신의 생각과 사회적 비판을 절묘하게 그려 놓았다.

이미 넘어져 황망해진 표정과 위험을 직감하며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 무언가 잘못됐다는 불안한 표정, 그러나 뒤쪽의 장님들은 곧 자신이 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듯 평온한 표정이다.

16세기는 여러 면에서 유럽의 가장 어두운 암흑기다. 예술적 표현에도 규제가 심했다. 공고한 계급사회라 브뢰헬은 비판의 대상인 정치인, 종교인, 귀족을 직접 비판하지 못하고 가장 낮은 신분의 장님을 그려서 알레고리, 즉 전체적인 은유를 꾀했다.

2014년 1월 28일 법률 제12354호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었다. 특히 제3조 ‘지역문화진흥의 기본원칙’을 읽으며 공감과 기대로 새로운 해를 바라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3조(지역문화진흥의 기본원칙)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다음 각호의 기본원칙에 따라 지역문화진흥 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
1. 지역 간의 문화 격차 해소와 지역 문화 다양성의 균형 있는 조화
2.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 추구
3. 생활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 조성
4. 지역 문화의 고유한 원형의 우선적 보존

대한민국은 서울(수도권)과 그 외 지역으로 양분되어있다. 서울은 거대하고 견고한 화원처럼 모든 꽃이 피어있다. 경제, 교육, 문화예술 등. 그리고 그곳에는 적자생존의 무정한 원칙이 존재한다. 현재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사라지는 냉엄한 현실사회다.

나머지 지역은 어떤가? 뿌리는 남아있지만 제대로 된 꽃 한 번 피우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나마 생활문화를 스토리텔링, 조금 가꿔놓으면 중앙과 네트워크가 있는 단체나 기관이 고유한 원형을 무시하고 보여주기, 실적 쌓기 식으로 변형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21세기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다. 패러디(parody), 다시 말해 재창작의 가치를 인정하는 시대다. 그러나 패스티시(pastiche), 즉 혼성모방은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 패스티시는 뿌리 없이 한순간을 위해 예쁜 여러 꽃을 모아놓은 꽃다발에 불과하다. 이처럼 지역의 수많은 축제가 지역적 특색을 갖추지 못하고 이것저것 짜깁기되고 있다. 문화산업이 양적으로는 커졌지만, 문화산업의 발전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생산은 없고 유통만 있는….

풍물놀이가 사물놀이가 되고 사물놀이의 리듬이 난타가 되는 과정은 전통문화의 뿌리에서 새로운 문화로 발전하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물론 뿌리까지 환호와 찬사가 전해지기는 힘들지만, 뿌리가 살아있는 한 제철에 꽃은 피고 새로운 접목으로 시대에 맞는 퓨전 예술의 꽃도 피울 수 있다.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6년이 되었다. 이 말을 누구에게 해야 할까? 지자체? 예술인? 세종의 시민들?

지역문화진흥법의 빛과 그림자는 피테르 브뢰헬의 그림 <장님들의 우화>에 분명히 묘사되어있다.

길을 인도하는 사람은 기관의 장이거나, 예술단체장일 수도 있다. 앞선 사람이 길을 잘못 들거나 중심을 잃는다면 도미노 현상처럼 함께 무너질 수 있다.

지금은 소수의 지식인이 계몽하던 봉건사회가 아니다. 시민사회이며 지식사회이다. 한 명의 길잡이가 아닌 다수의 생각들, 다수의 재능이 모이고 걸러져 길을 정하고 길들을 만들어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세종시 문화연대는 문화예술의 거버넌스(governance) 조직으로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의 수립에 대한 연구, 기획, 제안 등 협치를 준비하고자 한다. 많은 분의 관심과 참여로 세종시의 생활문화가 새로운 문화로 꽃피우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