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과 5월, 우리가 글과 붓으로 할 수 있는 것들

시인들이 기억하는 노무현, 시집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출간

2019-05-17     한지혜 기자

찔레꽃처럼 떠난 사람이 있다

남이 아프면

자기의 몸과 마음도 아파서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나는 사람

시를 쓴 이도

붓을 든 이도

모두 한마음으로 그의 영전에 책을 바친다

 

글쓴 사람과 붓을 든 이들을 대신하여

함민복, 김성장.                                            - 시집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서문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시는 글씨가 되고, 글씨는 또 시가 된다. 53명의 시인과 33명의 붓글씨 작가들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추모시집을 펴냈다.

산수유꽃 지면 오는 사람, 영혼이 선한 목수, 자신을 던져 역사를 끌고 간 사람, 홀로 산맥이 될 수밖에 없었던 바보. 시인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이렇게 표현했다.

글씨 쓰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붓글씨는 목수가 되고, 산맥이 되고, 또 바위를 닮은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와 붓글씨 작품은 지난 11일 대전 서대전공원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추모 10주기 행사에 전시됐다. 오는 18일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23일에는 세종호수공원 ‘새로운 노무현’ 시민문화제 행사로 옮겨 릴레이 전시될 예정이다.

김성장 서예가(시인)는 “세종과 대전, 공주, 서울 등에서 글씨를 배운 제자들이 작업에 함께 했다”며 “한 달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끝내느라 어려움도 있었지만, 글씨를 쓴 지 얼마 안 된 분들, 평범한 사람들이 주체로 참여해 역사로서의 글씨와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호수공원에서 열리는 세종추모문화제는 오는 23일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된다. 식전 공연과 문화공연 등이 마련됐다. 붓글씨 작가들은 이날 전시회에서 캘리 엽서쓰기 시연을 보인다.

#. 4월 세월호와 5월 노무현

추모시집이 나오기까지는 약 3주가 소요됐다. 새로 쓴 시, 전에 써 뒀던 시인들의 작품을 모았다. 도종환, 안도현, 신경림, 함민복 등 원로 시인을 포함해 중견 시인, 젊은 시인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김성장 서예가는 “시인이기도 한 걷는사람 출판사 김성규 대표 덕분에 시집까지 나올 수 있다”며 “직접 쓴 시집 표지 제목은 생전 노 대통령이 방명록 등에 자주 쓰던 글귀”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추모시집이 나오기 전, 시인들과 붓글씨 작가들은 세월호 5주기 추모시집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를 먼저 펴냈다. 약 두 달 만에 시집 두 권을 연달아 출간한 셈이다.  

이번 작업은 최소 5개월에서 2년 이상 글씨를 써온 그의 제자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됐다. 시 한 편을 반복해 쓰며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면서다. 

실제 지난달 27일 세종에서 열린 출간기념회는 영화 <생일>의 한 장면처럼 눈물바다가 됐다. 그가 혼자 쓰면 비교적 금방 마쳤을 작업에 굳이 초보 제자들을 불러모은 이유기도 하다.

그는 “특히 세월호 사건은 현재 30~40대에게 역사적으로 가장 큰 사건”이라며 “우리 사회가 이 감정을 풀어낼 기회를 마땅히 주지 않았고, 사람들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죄책감이나 충격을 갖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번 작업이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생일> 관람 현장에서 만난 이낙연 총리와의 일화도 언급했다. 총리실 산하 세월호 지원단에서 주최한 행사에는 시집 출간에 참여한 시인과 작가 13명이 초청됐다.

김 서예가는 “세월호 시집을 미리 총리실로 전달했는데 이낙연 총리가 누가 어떤 시를 쓰고, 또 그 시의 내용까지 기억해 깜짝 놀랐다”며 “영화를 보고 차를 한 잔 마시며 시집과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이번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슬로건 ‘새로운 노무현’은 죄책감과 아픔 등 복합적 감정으로부터 그가 남긴 더 좋은 것들을 살려 나가자는 취지, 방향 전환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며 “세종시 추모 행사를 방문한 시민들이 시와 붓글씨 작품을 통해 이 날을 함께 보내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그는 신영복체를 완벽에 가깝게 구현하는 서예가로 알려져있다. 현재는 세종시 어진동에 위치한 세종글쓰기연구소에서 수강생들에게 붓글씨를 가르치고 있다. 

정지용 시인을 주제로 한 시 해설서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문학관 기행서 <시로 만든 집 14채>, 시집 <눈물은 한때 우리가 바다에 살았다는 흔적>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