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선진국 잇따른 러브콜 받는 ‘뜨개질 화풍’

[세종의 문화인물] 서양화가 정우경

2018-10-17     유태희

서양화가 정우경은 충남 금산에서 나고 대전에서 자랐다. 목원대학교 산업미술과를 졸업하고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회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 채 캔버스 앞에 앉아 묵묵히 작업했다.

정우경을 보면 법학 교수가 되려다 모네의 ‘건초더미’를 보고는 추상화의 선구자가 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연상되곤 한다. 전공대로 직장을 구하지 않고 화가의 길을 택한 것도 그렇고, ‘뜨개질 화풍’이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정우경은 세종시에 자신의 이름을 딴 ‘정우경 갤러리’(갈매로 211 세종 에비뉴힐 4142호)를 오픈하고 작가들에게 전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22일부터 11월 20일까지 자신의 개인전도 연다.

정우경의 작품은 얼핏 뜨개실로 한올 한올 짜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 봐야만 섬세한 붓 터치를 알아차릴 수 있다.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릴 줄 앎으로써 구도를 단순화해 주제를 완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섬세하지만 강렬하고 이야기가 구체적이며 신화적이다. 바로크 시대 조각가인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의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하데스’에 비견할만한 어려운 작업을 인내로써 극복하고 완성의 결실에는 미소를 띠는 작가로 그를 봐왔다.

정우경은 기본적으로 예술의 덕목인 미를 추구하는 작가다. 뜨개실의 이미지는 오랜 숙련을 통해 터득했을 터. 고도의 테크닉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하이퍼리얼리즘이나 포토리얼리즘으로 불리는 극사실주의 추상에 전혀 손색이 없다.

정우경의 이 같은 성취는 프랑스 파리 살롱 앙뎅팡당, 미국 뉴욕, 시애틀, 마이애미, 일본 다카마쓰 등 해외 선진국의 잇따른 러브콜로 이어졌다. 국내에서도 서울아트쇼, 대전아트쇼 등에서 여러 갤러리의 박수갈채를 받은 바 있다.

미술사의 결정적인 순간들에는 정우경처럼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은 비주류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작업이 있었다. 이들이 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꿔왔다. 관점, 시각, 세계관 등으로 번역되는 패러다임은 본래 과학 용어다. 가령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천동설이 지동설로 대체되는 과정이다.

그 대변혁의 순간을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이라고 일컫는다. 정우경이 이런 전환기에 서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우경의 새로운 시도가 과거에 없던 ‘새로움’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작가가 서울이 아닌 지방에 있다는 것이 문화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정우경은 “예술은 사랑이다”라고 말한다. 어느 날 얼핏 엄마의 얼굴이 스치면서 한동안 그리움에 파묻혀 살았다고 했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의 방식에 넣고 며칠을 끙끙거리며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그것이었다. 창작활동에 변화가 찾아오고 관점과 시각이 바뀐 순간이었다.

그렇다. 창조는 겉이 아닌 속을 이해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니던가. 미국의 예술철학자이며 전위예술의 옹호자인 아서 단토(Arther C. Danto)는 ‘예술의 종말’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1964년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보고 '무엇이 이것을 예술로 만드는가'를 평생 화두로 삼았으며 “현대예술을 전통적 미학으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이는 예술을 규정하는 모든 제약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정우경, 그는 벌써 한국화단의 중견작가다. 14회의 개인전을 비롯해 서울, 광주, 세종 등 많은 곳에서 단독 초대전을 가졌다. 얼마 전에는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위해 개인 갤러리를 열었다. 작업에 더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칸딘스키는 화가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림에서 사물을 묘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지 그때 처음으로 의심했다.” 모네의 그림에서 추상의 씨앗을 받아든 칸딘스키처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뜨개질 화풍’의 화가 정우경을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