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대성당에 도착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44>순례를 마친 감동

2018-10-08     김형규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20㎞ 남겨둔 오 페드루오소(O Pedruozo)에서 마지막 결의를 다진 우리는 내친김에 최종목적지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기로 했다. 멋진남님은 자신의 페이스를 감안해 나와 아들을 먼저 보냈다.

시내까지 들어가는 길이 다소 복잡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거리라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지나친 믿음이었을까. 산티아고 가는 길은 막바지에도 쉽게 길을 터주지 않았다.

보통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막판 코스는 오 페드루오소에서 547번 도로를 따라가다 비행장을 끼고 돌면서 터널을 지나 남쪽 634번 도로를 따라간다. 그 길을 따라 라바코야(Lavacolla)-산 마르코스(San Marcos)-몬테 도 고소(Monte do Gozo)-산 라사로(San Lazáro)를 거쳐 최종목적지에 도달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에 그만 터널을 지나 반대편 북쪽의 숲길로 들어선 것이 마지막 길을 헤매는 단초가 됐다. 맹수가 나타날 듯한 적막한 숲속의 오솔길은 순례자는커녕 인적이 전혀 없었다. 아들은 그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동반자들과 서로 교감하며 환영리에 입성하고 싶었을 터였다.

근교 시골길을 미로처럼 빠져나오자 마지막 직선도로는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550번 간선도로였다. 다행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번화가인 갈리시아 주정부청사에서 550번 도로는 634번 도로와 합쳐졌다. 여기부터 거리는 순례자들로 붐볐다.

멀리 성당 첨탑이 눈에 잡혔다. 대성당 주변은 차량통행이 제한적이다. 차도 대신 화강암 보도블록이 깔려있다. 수백 년간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스치면서 바닥에 박힌 돌은 광택제를 입힌 듯 윤택이 돌았다. 석조건물 거리를 지나 아치형 어두운 통로를 지나치자 환한 햇살과 함께 시야가 확 트였다. 오브라도이로 광장(Praza do Obradoiro)이다.

광장 입구의 거리 악사가 순례자의 입성을 경쾌한 선율로 환영했다. 광장 동쪽에 수년째 공사 중인 산티아고 대성당의 웅장한 자태가 보이고 반대편에는 대성당보다 키가 작은 라소이 궁전(Palacio de Raxoi)이 서로 마주 보았다. 광장에 앞서 도착한 순례자들은 각자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누워 새로운 얼굴과 악수하고 포옹을 하며 감동을 나눴다.

나는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아들의 등을 토닥였다.
“아빠도요.”
좀 더 감동적인 언행으로 아들과의 대장정을 자축하고 싶었지만, 우리나라 부자지간의 정감이란 그 정도 선에서 매조지 짓나 보다.

대성당 광장에는 자전거 순례자들이 의외로 많았다. 5~6명씩 팀을 이뤄 도착한 이들도 있었고 홀로 라이딩족도 눈에 띄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10년 지기는 된 듯 반갑게 눈인사를 나눴다.

멋진남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처럼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건 아닌지.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데 우리보다 30분 정도 늦게 멋진남님이 나타났다. 말이 통하지 않아 길을 찾는데 고생은 했지만, 현지 주민들은 멋진남님이 어디로 가는지 뻔히 알아 친절하게 길을 알려줬단다. 마지막 날 달린 거리는 93㎞였다.

멋진남님은 아들과 내 덕분에 꿈에 그리던 산티아고 순례를 마쳤다고 다시 한번 고마워했다. 일행이 모두 안전하게 도착해 기념촬영을 하면서 산티아고 대성당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중심지이자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산티아고(성 야고보)가 순교해 유해를 찾지 못하던 중 별빛을 따라 숲속의 동굴로 가보니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을 ‘별의 들판’이란 뜻으로 ‘캄푸스 스텔라’라고 부르고 차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굳어졌다.

이 도시는 1078년 산티아고의 무덤 자리에 착공된 대성당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주변에는 유서 깊은 성당과 수도원, 교육기관, 미술관, 박물관 등이 밀집돼 있다. 교황 레오 3세가 성지로 공표함으로써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유럽의 3대 순례지가 됐다.

순례자들이 순례를 마치면 반드시 해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순례인증서를 받는 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