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은고개 민간인 학살지, 숨겨진 역사 드러날까

충북대 박선주 교수팀 공동조사단 22일 시굴 작업 시작, 유해 발굴 시 추모의 집 안치

2018-06-22     한지혜 기자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지로 알려진 세종시 은고개 지역의 유해 시굴·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LH 세종특별본부와 세종시에 따르면, 이번 작업은 22일 오전 행정중심복합도시 6-3생활권 산울리 인근 부지에서 이뤄졌다. 기간은 이달 말까지로 계획됐다. 

시굴 작업은 충북대 박선주 명예교수(71)를 단장으로 하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맡았다. 

은고개는 옛 충남 연기군 남면 고정리였으나 현재는 6-3생활권(산울리)에 편입됐다. 주민들은 해당 지역을 ‘수멍재’라고 부르기도 했다.

행복도시 6생활권 개발이 진행되면서 유해 확인 필요성이 제기됐고, LH 측은 해당 분야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박선주 교수를 삼고초려 해 이번 작업을 추진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이곳은 1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다만, 당시 유가족이 대다수의 시신을 수습해갔다는 증언 등을 고려할 때, 실제 유해가 발굴되더라도 그 숫자는 최대 10여 구 이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949년 6월 5일 창설된 보도연맹은 좌익활동 전력이 있는 국민들을 전향시키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정부가 주도한 연맹이었던 만큼 대대적으로 가입을 독려, 6.25 전쟁 무렵 연맹원은 전국적으로 33만 명에 달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발 다음 날인 1950년 6월 26일 조치원경찰서로부터 ‘보도연맹원들을 지서에 모아 놓아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이들은 7월 8일 학살됐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후퇴하던 수도사단 17연대 군인들은 피난민 중 연기군 보도연맹원들을 색출해 총살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이곳에서 추모제를 지내온 세종민예총 임동천(59) 이사는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일밖엔 해오지 못했는데, 이렇게 시굴 작업까지 보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며 “내달 7일 추모제도 예정돼있다. 향후 이곳이 개발 되더라도 작은 추모 공간은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굴 작업, 호(濠) 찾는 게 우선”

이번 작업의 단장을 맡은 충북대 박선주 명예교수는 6·25 전사자, 민간인 유해 발굴을 위해 전국을 떠돈 학계 전문가다.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설립과 함께 조사단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중단되자 시민사회가 나서 구성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에 참여했다.

이후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대전시 산내 골령골,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유해발굴, 최근에는 세월호 내부 미수습자 수습,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 유해 발굴까지 진두지휘했다. 그의 손을 거쳐 세상의 빛을 본 유해만 6000여 구에 이른다. 

박 교수는 “유해는 어느 지점에 같이 모여있기 때문에 찾기가 힘들다”면서도 “산등성을 따라 도랑처럼 파인 호(濠)가 있었고, 이 호에서 처형됐다는 증언이 있었다. 우선 호의 유무와 위치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공동조사단은 아산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 작업을 마치자마자 휴식도 없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민간인 학살지라고 알려진 곳은 전국 160여 곳에 달하지만, 세종시에서 시굴 작업이 이뤄진 건 이번이 최초다. 

박 교수는 “세종시 개발을 위해 시굴, 발굴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부탁도 있었고,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작업을 마쳐야 하는 시간적 한계도 있다”며 “증언자들이 60년 전 기억을 정확히 떠올리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지형도 바뀌었다. 기록에 의해 특정된 곳을 시작으로 전체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작업에는 박 교수의 아내인 부인 박데미 씨도 동행했다. 그는 박 교수의 최대 파트너이자 민간인 희생자 발굴의 숨은 공로자다. 오랜시간 현장 촬영 및 유해 감식 과정에 참여해왔다.

시굴 작업을 통해 유해가 발굴되면 연구소로 옮겨 약품 처리와 감식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해부학적인 특징 등을 확인한 후 세종시 전동면에 위치한 추모의 집으로 옮겨진다. 추모의 집은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임시 봉안 시설로 현재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가 안치되고 있다.   

LH 관계자는 "이곳 6생활권 부지가 내달 본격적인 개발사업에 착수하기 때문에 유해 시굴작업을 서두르게 됐다"며 “민간인 희생자와 관련한 추모 공간은 인근 공원부지를 활용해 작게 나마 마련하는 방향으로 세종시와 이야기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