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결별코스' 산티아고 순례길

[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8>기다릴 것인가 찾아 나설 것인가

2018-01-29     김형규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유난히 뜨거운 날이었다. 밀밭 사이로 뚫린 NA6000번 도로는 오전부터 태양에 벌겋게 타들어갔다. 햇볕을 가려줄 나무 한그루 없었다. 산티아고 도보순례자길은 드문드문 나무 그늘이나 카페라도 있을 텐데 이 도로 주변은 들판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들과 내가 타는 미니벨로는 비포장길에는 취약하다. 포장도로만 다닐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간혹 흙길을 지나쳐야 하는 도보순례자길을 피해 아스팔트길로 돌아가다 보니 산티아고 코스와는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

12번 고속도로를 따라 난 보행자길이나 지방도만 쫓아가면 정식 산티아고길이나 다름없는데 우리는 지도에서 보듯 팜플로나-로그로뇨 초반과 말미 구간에서 제 코스를 너무 벗어났다.

왕복 1차선 농촌 도로를 달리는데 뒤에서 멋진남님이 다급하게 나를 불러 세웠다. 무언가에 배를 물렸다며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다.

상의를 걷어 올려 살펴보니 옆구리부위에 모기에 쏘인 것처럼 붉은 반점이 부풀어 올랐다. 몸을 이리저리 살펴봤으나 벌레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선 가끔 산에서 벌에 쏘인 사람이 큰 화를 당하곤 한다. 이럴 때 대비해 상비약도 준비해왔는데 안타깝게도 렌터카에 있다.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 이외에는 인적이 없다. 라이딩을 멈추고 잠시 멋진남님의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늘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사방은 온통 메마른 들판뿐이다. 5분 정도 지나자 멋진남님이 안정을 되찾았다.

다시 출발했으나 이후 멋진남님의 페이스는 급격히 떨어졌다. 나와 아들과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졌다. 갈림길이 나타나면 엉뚱한 길로 들어설까봐 멋진남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늘 한 점 없는 들판에서 생이별

한번은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길이 어긋났다는 걸 직감했다. 언어 소통이 전혀 안 되는 70세 노인이 외국에서 미아신세가 된다면 모두가 난감한 상황에 빠지고 만다.

나보다 아들이 더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멋진남님과 재회하려는 행동은 달랐다. 나는 기다리다 못해 찾아나서는 스타일이지만 아들은 진득하게 현지점을 고수하는 방법을 선호했다. 찾아 나섰다가 아예 생이별할 수 있다는 논리다. 부자지간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한국의 명절 귀성길에선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고속도로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국도나 지방도로로 나가보지만 더 악화된 상황에 낭패를 보곤 한다. 그 때문에 집안싸움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둘 이상의 동반자가 있다면 지금 꽉 막힌 길을 그대로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도박처럼 다른 길로 빠져나갈 것인지를 놓고 각자 선택의 고민에 빠진다. 환경이 열악하고 심신이 녹초가 된 상태에선 결정에 혼선을 빚고 결과에 책임지기 싫어한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산티아고는 ‘친환경 결별’ 코스

‘나의 산티아고’ 영화에선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한 쌍의 젊은 커플이 말다툼을 하면서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여기자 레나가 주인공 하페에게 ‘친환경 결별법’을 알려준다. 레나에 따르면 힘 안들이고 연인과 헤어지고 싶다면 산티아고 순례에 나서라는 것이다. 연인이 산티아고 순례에 동행하면 자연스레 헤어진다는 게 ‘친환경 결별법’이란다.

왜 그럴까.
극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강요당하는 선택과 망설임, 결과에 대한 실망감에 상호 신뢰가 조금씩 허물어지기 때문 아닐까.

영화에선 다루지 않은 ‘친환경 결별법’을 좀 더 파헤쳐보자. 사랑 하나면 모든 걸 다 극복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선 순진한 청춘들의 오판은 없었을까. 피 끓는 젊은이라면 고행의 산티아고보다는 발리나 바르셀로나 같은 발랄한 관광지가 더 낫지 않을까.

영화 속 주인공 하페는 ‘무조건 쉬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고 아무런 생각 없이 산티아고행을 결심한다. 주변에선 ‘(부족할 것 없는 네가) 무엇 때문에 거길 가느냐’며 만류한다.

하페도 산티아고 순례 초반에는 벌레가 들끓고 노숙자 합숙소 같은 열악한 알베르게와 힘겨운 행군, 주변의 홀대 등 전혀 예상치 못한 환경에 중도포기하려 한다. 순례의 낭만만을 기대했을 청춘남녀에게 닥친 당혹감도 비슷하리라. 

사람의 숨겨진 본성은 극한 상황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배부르고 등 따신 상황에선 해코지할 일이 없다. 서로 적대시할 일이 없는 태평성대가 영원히 지속되면 좋겠지만 세상사가 어디 그런가.

우리나라 근현대사만 보더라도 경술국치, 일제강점, 한국전쟁, 군부독재 등의 비상상황 속에서 나만 살아남기 위해 가까운 동료•이웃을 얼마나 팔아넘겼던가. 우리들은 의를 저버리지 않고 동포와 이웃•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사•열사에 무한한 경의를 보내야 한다.

본성은 극한 상황서 드러나

청춘 이야기로 되돌아가자면 연인이 산티아고 순례도중 헤어졌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어차피 백년가약을 맺었더라도 더 아픈 파국을 맞았을 터이니까.

영화는 영화일 뿐, 그렇다고 해서 작정한 산티아고행을 꺾을 필요는 없다. 굴곡 많은 인생의 축소판이자 시험대라 생각하고 서로 배려해가면서 끝까지 함께 한다면 인연은 더욱 단단해지리라.
  
나와 아들은 천륜이기에 ‘친환경 결별법’은 적용이 안 되지만 산티아고 여정의 경우 나의 선택보다는 진득하게 기다리는 아들의 방법이 약간 더 적중했다.

샛길까지 되돌아가 샅샅이 뒤졌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후 조바심을 내는데 멋진남님이 멋쩍게 스윽 나타났다. 도보순례자 꽁무니를 쫓아갔다가 나와 아들이 앞서간 길이 아닌 것 같아 되돌아오느라 늦었다는 것이다. 무사히 우리가 있는 곳까지 찾아와준 게 고마웠다.

비록 거리는 늘어났지만 낮 12시를 넘기고 50㎞ 가까이 달려 1차 목표지점인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했다. 시간이 지체돼 아담한 이 마을은 그냥 지나치기로 하고 20㎞정도 떨어진 ‘에스테야(Estella)’로 직행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