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부터 범죄자? 롬브로조가 틀린 이유

[미노스의 동화마을] <7>악인의 우상

2017-10-20     미노스

세종포스트는 격주로 동화작가 미노스의 동화마을을 연재합니다. 아이에게 읽어주는 동화부터 어른을 위한 동화,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동화까지. 미노스가 펼쳐 보이는 환상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편집자 주>

30여년을 한 교단에서 작은 교실을 지키고 있으면서, 나는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을 증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작은 중학교의 교사.
해마다 입학시즌이 되면 들어오는 신입생들.

그들이 새롭게 채운 첫 교실에 들어가 보면, 분명히 졸업하고 떠났을 그들 선배들의 얼굴이 다시 신입생으로 돌아와 앉아 있곤 한다.

동그란 얼굴에 선하고 착실함이 두 눈에 쓰여 있는 저 아이는 바로 엊그제 졸업한 은영이고, 중간에 앉아 연신 지껄이는 저 녀석은 분명히 떠버리 광석이고, 말없이 옹골차게 다리를 꼬고 선생님을 외면하는 저 놈은 말썽꾸러기 그 놈과 똑같다.

학교가 그러하다면, 사회도 그러하리라.
사회가 그러하다면, 역사 또한 그러하리라.

그러나 어느 때는 새로운 교실에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학생이 앉아 있는 경우가 있다.
특별한 아이다.
때로는 두뇌가 기막힌 학생, 예능에 특출한 학생, 아주아주 똑똑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학교를 뒤집어 놓는 골치 아픈 괴물...
반복에도 예외가 없을 수는 없다.

역사의 반복과 예외.
그것이 어디서, 왜 이루어지는 것인가?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교실. 
교실을 보면 학생이 보이고 학생을 보면 미래가 보인다.
10년, 20년 후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어 있을 줄 궁금한가?
교실에 가보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실에 우리사회의 미래가 거울처럼 기다리고 있다.

국가의 미래의 운명이 알고 싶은가?
교사들을 보라.
그들이 그들 운명의 거울들을 어떻게 닦고 있는지를 보라.
깨끗하게 닦는 거울에 깨끗한 미래가 있고, 더럽게 닦고 있는 거울에 더러운 미래가 있다.

교실과 교사에 미래가 있다. 역사가 있다.

이상국. 체육교사.
체육대학에서 검도(劍道)를 했다.
검도가 체육인가?
몸의 민첩성과 팔목과 허벅지의 근육, 눈초리와 반사 신경이 필수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이다. 산란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정신력 없이 달인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도(道)를 닦는다고 했다. 

검도 5단.
고수 검객의 눈을 속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 몸의 움직임을 알기 위해서는 눈의 움직임, 곧 마음의 움직임을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해마다 들어오는 신입생을 관찰하는 것은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가 먼저였다.
저 학생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견실한 마음으로 신입생들을 살피곤 했다.

신학기가 되었다.
이상국에게 학부모 한 분으로부터 보자는 연락이 왔다.
아담한 한정식 집에 그를 초대한 사람은, 공들여 화장하였지만, 굵은 손마디에 허름한 모습을 감출 수 없는 40대 어머니였다.

“윤혁수 어미 되는 사람입니다.”

윤혁수.
기억난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할 때나 교실 맨 뒷자리에 의젓하게 앉아있는 녀석. 새로 전학 왔다고 했다. 
중3이지만 어쩐지 어른스러워 한 눈에 들어오는 학생.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과묵한 성격에 성적은...?

“예, 혁수 어머니시군요.”

‘훌륭한 아들을 두셨습니다’라는 말을 인사삼아하고 싶었으나, 어머니의 눈빛에서 얼른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갈한 식사가 나오자,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두 손으로 술 한 잔을 따르고 나서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 아들 사람 좀 만들어 주십시오.”

“......윤혁수? 의젓하고 듬직한 아들 아닙니까?”

어머니는 손수건을 꺼내 눈가의 눈물을 지긋이 눌러가며 말을 하였다.

“아닙니다. 혁수는 그런 아이가 아니에요. 아무도 모릅니다. 낮과 밤이 다른 아이입니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전혀 다른 아이예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어머니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윤혁수.
중3년생이라 하지만, 그의 신체적 성숙은 이미 성인의 그것이었다.
그의 지적 능력이야 물론 중학 수준이지만 감성적 사고력은 그 나이에 보일 수 없는 조숙성을 보이고 있었다.
말하자면 특별한 학생이었다.    

큰 키에 단단한 어깨와 주먹, 두뇌 회전,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 겁 없는 ‘깡다구’, 그리고 핸섬한 얼굴...
그는 악인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 금상첨화는 가난과 홀어머니 밑에서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

악인으로서 그의 눈으로 볼 때, 악인은 세 부류였다.

첫째 부류는, 악인으로 태어나는 악인이다. 악인으로서 소명이 있는 양 만들어져 내려온 악인이다. 그들은 동정심이나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없다. 자신의 목적 그것만이 전부인 악인이다.
위험한 사람이다. 

둘째 부류는, 세상이 만들어낸 악인이다. 악인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될 조건에 둘러싸여, 살기 위해서 악인이 된 사람이다.
그들은 불행한 사람이다.

셋째 부류는, 스스로 되지 않아도 될 악인이 된 악인이다. 생각 없이 우쭐거리는 겉멋으로, 어떠한 열등감에서, 또는 부족함이 없는 것에 지겨워서, 친구와의 불운한 사귐으로 악인으로 빠져 버린 사람이다.
못난 사람이다. 

그렇지만 세 부류의 악인들 모두에게 조금씩 다 섞여있기는 하다.
악의 피가...

스스로는 어느 부류인가?
‘첫째 부류’ 악인의 특징인 욕망이 생기면, 타인의 고통 따위 감정이입이 전혀 되지 않는 기질.
그는 그런 학생이었다. 
 
원래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윤혁수는 모범생 정도가 아니었다.
걸출한 어린 재목이었다. 잘 키우면 크게 될 놈이라며, 담임 선생님들은 어머니에게 칭찬과 기대를 아끼지 않았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주먹이면 주먹...
윤혁수는 늘 대장이고 반장이었다.
아마도 중학교를 시험으로 입학했다면 그는 당연히 일류 중학에 입학하여 인생이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시원찮은 학군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빈곤과 불우함에 그의 눈이 밝아졌다. 
세상은 미운 놈 투성이였다.
집에 돈 좀 있다고 껍적대는 놈.
무슨 빽인지 선생님들에게까지 으스대는 놈.
공부 좀 하면 밴댕이 속으로 좁아터진 놈.
특히 거슬리는 놈은 학교에서 주먹 ‘짱’이라며 꺼떡거리는 녀석들이었다.

어느 날 그런 ‘짱’들 세 놈이 혁수를 보자 했다. 
인근 초등학교 화장실 뒤, 으슥한 곳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푸풋...
싸움에 있어 세 놈은 혁수의 적수가 아니었다.
며칠 후, 다섯 놈이 혁수를 불러냈다.
기다리고 있던 바였다. 
혁수는 책가방을 열었다. 자전거 체인과 손도끼를 꺼냈다.
체인으로 한 녀석의 머리를 후려쳐 눕히고, 담장을 타고 날아올라 두 번째 녀석의 머리를 오른발로 날렸다. 세 번째 녀석의 팔을 관절기로 제압하여 비틀어 버리고 새끼손가락을 손도끼로 내리치려 하자 비명을 지르며 녀석은 죽을 듯 하얗게 질렸다. 나머지는 그대로 도망쳤다.
혁수는 가슴에 늘 나이프를 품고 다녔다.

윤혁수는 상식적인 중학교 3년생이 아니었다. 
가볍게 학교라는 소왕국의 정복자가 되어 있었다.
키 175㎝.
교복은 늘 깨끗이 다려 입었고 단정하게 차려 입었다.
같은 반 학생들과 말을 섞는 법이 별로 없었다. 교실 맨 뒤 앉아있는 그 보다 더 의젓하고 점잖은 학생은 없었다.
윤혁수에 관한 전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까불거나 건방 떠는 놈은 없었다.  
 
‘까부는 놈’과 ‘건방진 놈.’

까부는 놈이란 객관적 관점이고, 건방진 놈이란 주관적 관점이다.
더 쉽게 풀이하면,

‘나에게 까부는 놈은 건방진 놈이고, 남에게 건방진 놈은 까부는 놈이다.’

악인의 세계에서는 모든 죄가 다 용서되었다.
폭행, 사기, 성폭력.., 용서뿐만 아니라 칭송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까부는 놈’과 ‘건방진 놈’은 절대로 용서될 수 없었다.
그들 세계의 존엄한 철칙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윤혁수에게 ‘조아리는 놈’과 ‘아부하는 놈’이 생기기 시작했다.
‘셋째 부류’의 악인들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악인들의 우상이 되어 갔다.
선생님도 굳이 그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겉멋이나 부리고 골이 빈 ‘셋째 부류’의 여학생들은 핸섬한 혁수에게 홀딱 반해 버렸다. 줄을 섰다. 그는 여학생들의 황태자였다. 

얕보지 마라. 크로마뇽인 이래로 인간은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과소평가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도 알 것은 다 알고 있었고, 어른들 머리 꼭대기에 서 있었다.

사고는 터지기 마련이었다. 역시 여자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출하여 윤혁수와 불장난하던 여학생이 유력인사의 딸이었다.

윤혁수가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매일 늦으시는 어머니가 그날따라 일찍 들어와 계셨다.
식당의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 어머니.
어머니는 손에 회초리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를 보자 회초리보다 양 주먹으로 혁수의 가슴을 치며,

“이놈아. 이놈아. 이 나쁜 놈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우는데...”

하면서 울었다.  
가출한 여학생의 부모가 식당의 어머니를 찾아왔던 것이다.
여학생 부모가 학교로 가지 않은 것은, 학교 간에 알려지면 자기 딸도 좋을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당장 성폭행으로 잡아넣겠다는 으름장, 자식 교육 똑바로 시키라는 호통,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라는 모욕에 어머니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행주물이 흐르던 손에 불이 나도록 빌었다. 여학생 부모의 시퍼런 서슬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이 자식아. 네가 후레자식이라고 이러는 거냐. 아버지가 없다고 본 데가 없어서 이러는 거냐? 무서운 것이 없어서 이러는 거냐?
네 아버지가 아시면... 아이고, 이 자식아...”

어머니는 혁수의 가슴과 자신의 가슴을 치며 북받치는 설움에 흐느끼셨다.
아버지.
군에서 복무하다가 사고로 전사하셨다는 말을 들었지만, 혁수는 아버지를 모른다. 어머니도 아버지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신 적이 없었다.
유복자였다는 말만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그쪽 부모와 어쩔 수 없는 타협을 보았다. 이쪽이 약자였다 
전학이라는 형식의 퇴학이었다.
전학시키면서 어머니는 혁수를 붙잡고 또 울었다.

“혁수야 나 좀 살려다오..다시는 아이들 때리고, 돈 뺏고, 학교 빠지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해라. 다시는 절대로. 꼭...”
결국 이렇게 윤혁수는 이상국 선생이 있는 지금의 학교로 전학을 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상국 선생에게 아들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 놓았다.

“선생님, 제 아들 사람 좀 만들어 주세요. 제 자식이지만 저는 감당을 못합니다. 선생님이 아버지라 생각하시고 제 아들 사람 좀 만들어 주세요. 죄송합니다. 못난 어미가 이렇게...”

어머니는 이상국 선생에게 고개를 숙이며 몇 번이고 절을 하였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돈에 쪼들리며, 식당에서 밤늦도록 젖은 행주처럼 일하면서, 감당치 못할 억센 아들을 둔 홀어머니의 심정이 어떨까.
이상국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저런 자식을 어찌할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상국은 어머니를 일단 안심시켰다. 그러나 막막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상국은 내심 궁금하던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왜 저에게 이런 말씀을? 담임선생님도 계신데...”

어머니가 머뭇거리며 말하였다.

“혹, 윤달중씨라고 아세요?”

“윤달중씨라고요? 무사인선배? 체육대학?”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 분이 혁수 아버지입니다.”

이상국은 깜짝 놀랐다. 얼른 자세를 고쳐 잡고,

“아이고, 형수님. 몰라 뵀습니다. 윤달중 선배시라고요. 진즉에 말씀하시지.. 혁수가 무사인선배 아들입니까?”

이번에는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공손히 절을 하였다.

윤달중.
그는 이상국의 대학 선배였다.
같은 검도를 전공한 하늘같이 무서운 직속선배였다.
사나이 중의 사나이 윤달중.
그는 별명이 무사인이었다.
사인검(四寅劍).
호랑이 해, 호랑이 달, 호랑이날, 호랑이 시에 벼려서 만든 검.
호랑이 인(寅)자가 네 개라서 사인검이라 했다.
12년에 단 2시간. 그래서 사인검은 명장이 일생동안 한 자루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호랑이의 기백과 혼이 깃든 명검이라 했다.

그의 별명은 그가 호랑이띠인 것도 있었지만, 네 마리 호랑이의 기상을 가진 검객이라 하여 무사인(武四寅)이라 붙여졌다.
과연 윤달중의 검술은 군계일학의 특출한 실력이었다. 그러나 후배들에게 그는 검술보다 영웅적인 카리스마로 깊이 각인되고 있었다.  

“사내자식들이 사내답게 안 사려면 고마 죽어라.”

그의 피는 전쟁터의 무사같이 끓는 것 같았다.
불의나 경우에 어긋나는 것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체육관에서 목검으로 그가 훈도하는 매는 매운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사리가 분명했다. 의리를 생명같이 알아야 한다고 했고, 개인보다 사회, 사회보다 국가가 더 중요하다는 국가 철학가였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망한 것은 무사들을 업신여기고 무시했기 때문이다. 최후에 국가를 지키는 것은 늘 군인이요 무인이고 무력이다.
이순신 장군을 보라.
그분이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가 존재하기나 했겠나.
허나 조선은 무인들을 무시하고 이념싸움에 골몰했던 썩은 문인들로 인해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 
외적을 물리치고, 약자를 보호하며, 의리를  숭상하는 건전한 상무 정신없이 어떻게 건강한 국민정신이 싹트겠는가.
올곧은 무인정신을 가르치지 않으면 비뚤어진 폭력이 나라를 좀 먹는다.” 
 
후배들은 호랑이 무사인을 가장 무서워하면서도 가장 존경하였다.
그는 졸업하면 체육교사가 되겠다고 했다.

“요즘 젊은 놈들, 나약해서 쓰겠나!
사내 녀석들이 빗이나 갖고 다니면서 모양이나 내고, 어려운 일 있으면, 징징거리며 불평이나 하지, 거기에 뛰어드는 사내다운 기백이 없어...”

그의 미래관은 분명했다.

가장 머리 좋은 녀석들이 그저 공무원이나 돼서 편히 월급이나 받고 살고자 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학생들에게 절제와 인내심을 길러주지 않는 교육에 미래는 없다!
오로지 저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부채질하는 학부모들이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그리고, 교사가 교장과 학부모 눈치나 보고, 학생들 비위나 맞추게 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이것이었다.
그는 체육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혼’을 넣어주겠다고 했다.

이상국은 잠시 윤달중의 회상에 빠졌다.
그 아들이 윤혁수라...
아마도 아버지가 살아있었으면 그런 아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레자식...’

혁수 어머니가 이상국에게 아버지 노릇을 해달라는 부탁이 온몸에 감전이라도 된 듯 짜르르 느껴졌다. 피가 솟구치는 듯 했다.

“자식 이길 수 있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나!
그래서 선생님이 높으신 거야. 가정교육으로 제 자식 사람 만들 수 있으면 학교선생이 왜 필요해? 그러니까 군사부일체다. 선생님은 임금님과 아버지와 동격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내 자식 사람 만들어 주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윤달중이 선생이 되려는 이유를 외치던 것이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 아니 형수님. 걱정 마십시오. 무사인선배님을 생각해서라도, 제가 무사인이 되겠습니다. 제가 혁수 아버지 노릇하겠습니다.”

‘윤혁수!’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윤혁수는 이상국 선생에게 체육관으로 불려갔다.
꼿꼿한 허리에 단단한 어깨.
학생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연약하거나 따돌림 받는 학생에게는 가장 포근하고 든든한 선생님이었다.
학생에게 문제가 생기면 이상국 선생님은 늘 학생편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윤혁수는 언젠가는 한번은 부딪칠 거란 예감이 들던 선생이었다.
이상국 선생의 다부진 몸을 보면서, 

‘계급장 떼고 사내답게 일대일로 맞짱 한번 뜬다면?’

하는 발칙한 상상도 해보았다.
싸움과 경기는 다르다. 싸움은 기술이 아니고 재능이었다. 타고 나는 것이다. 태권도 유도가 몇 단이라도 싸움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검도 5단...

체육관에 들어가자 선생님은 혁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위 아래로 죽 훑어보았다.

‘있다!’

과연, 무사인선배의 눈매가 거기에 있었다.
골격은 갖추었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체격이라 연하게 보일망정, 앞으로 키가 더 자라고 몸이 단단해지면 무사인선배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옷 벗어!”

이상국이 혁수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혁수는 웃옷을 벗었다.
선생은 등이며 배며 팔을 자세히 살폈다.
깨끗했다.
등과 어깨, 팔에 어떠한 문신도 없었다.
‘아직 물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른쪽 팔뚝.
상처가 하나 있었다.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담뱃불로 지진 동그란 자국이었다.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아 그 부위가 벌겋게 짓물러 있었다.
징표였다.

“네가 한 거냐?”

“아닙니다. 형들이...”

형들이 ‘끼’가 있는지 보겠다며, 팔을 강제로 붙잡고 담뱃불로 지진 것이었다.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이마에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담뱃불이 비벼 꺼질 때까지 윤혁수는 미동도 하지 않았었다.
그 상처였다.

이상국 선생은 혁수를 탁자에 앉게 했다. 준비된 음료와 다과를 내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 같이 부드러운 어조였다.

“혁수. 너 손 좀 펴 보아라.”

혁수는 손바닥을 펴 보였다.
이상국 선생은 쌀 한줌을 내보이며

“이 쌀을 쥐어 보아라.”

혁수가 한 움큼 쌀을 쥐었다.

“이제 주먹을 쥐어봐라.”

주먹을 쥐었다.

“쌀을 움켜쥐어 보아라.”

주먹을 쥐고 쌀을 움켜쥘 수는 없었다.
이상국 선생은 그런 혁수를 바라보며 어린아이를 보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혁수.
그렇다. 주먹으로는 쌀 한 톨도 쥘 수 없다.
주먹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혁수.  
왜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해 본 적 있나?”

“.......”

“좋은 대학가서 좋은 직장 취직하고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살려고? 출세하고, 권력 잡자고? 그래서 공부한다고 생각하나?”

“.......”

“아마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겠지.
그러나 좋은 대학 가는 사람은 극소수다.
나머지는? 좋은 대학, 좋은 회사 취직할 수도 없을 바에야 무엇 하러 공부하나? 
쓸데없는 공부지, 안 그런가?

“........”

“틀렸다...
공부는 출세하고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다. 혁수. 
공부는 왜 할까?”

“........”

“모든 생명이 하나같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다.

‘자유’다.
내 생명의 존엄을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는 것을 ‘외부로부터의 자유’라고 하자.
사람뿐이 아니라 의식주, 자연, 나아가 시간으로부터의 자유. 
이런 자유를 얻기 위해 공부를 한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게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목숨을 건 공부를 한다.
권력과 돈과 지위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을 더 많이 가지면 더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혁수.
그런데 인간이 해야 할 공부에는 또 하나가 있다.
‘자기로부터의 자유’이다.
바로 ‘욕망’과 ‘죄의식’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외부’로부터 자유로워도 ‘자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그 사람은 ‘자유로운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행복한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혁수.
‘자유’와 ‘행복’은 같은 단어라는 것을 아나?”

“...........”

“그래서 공부를 한다. 주먹으로 자유를 얻을 수는 없다.
쌀 한 톨도 쥘 수 없지 않더냐...
주먹으로는 얻은 자유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혁수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혁수. 우리는 단 한번 인간으로 태어났다. 단 한번.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다 죽고 싶지 않나?”

이상국 선생은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자유’를 얻기 위해 ‘남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했다. 그런 사람을 ‘악인’이라고 한다 했다.

이상국은 폭력이 얼마나 나쁘고 비인간적인 것인가를 혁수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아들을 타이르듯 긴 설교를 했다.
어머니를 만난 이야기도 했다. 선생님은 혁수의 아버지가 되어 혁수를 보살피겠노라고 했다. 몇 가지 약속을 하자고 했다.
결석하지 말고, 나쁜 친구 만나지 말고, 폭력 쓰지 말고, 어머니에게 효도할 것을 약속하자고 했다.

윤혁수는 침묵했다. 
선생님은 ‘사내답게’ 약속을 하자고 했다.
혁수는 짧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삶’

선생님의 말은 이제까지 어른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묘한 감동이 왔다. 마음이 약간 흔들렸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결국 공부하라는 말 아닌가.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다. 싫어서 안하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 나름대로 ‘자유’를 얻기 위해 이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자유들. 얼마나 자유로운가... 행복한가...

마약처럼 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나를 하늘같이 떠받들고, 따르는 졸개들... 그 여자애들...
그들과의 끊을 수 없는 의리...끈끈한 관계...
스릴 넘치고, 영화 주인공같이 멋있고, 스타같이 폼 나는 세계...
선생님도 어머니도 나를 모른다.   

“내가 지금부터 너를 유심히 관찰할 것이다.
약속을 어기지 마라. 사내답게 지켜라...”

이상국 선생이 헤어지면서 남긴 이 말.
그러나 정작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어른들이라 생각했다.

‘피는 못 속인다. 무사인선배와 어쩌면 저렇게 판박이인가.
그 체격에 그 성격.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상반될 수 있을까?
녀석은 악인이다... 타고 난 놈이다... 말로 될 놈이 아니다...’

혁수를 만나고 나서 이상국은 마음이 무거웠다.

‘체자레 롬브로조.’
공부는 별로였지만, 도서관에서 읽었던 이 이름만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는 범죄 심리학자이자 의사로서, 한때 형법계의 찰스 다윈이었다.
그의 유명한 이론.
‘생래적 범죄인’ 과 ‘범죄징표설.’

롬브로조는 범죄인 중에는 생래적으로 타고난 범죄인이 있다고 했다. 운명적으로 범죄를 범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그런 범죄인은 표시가 있다. 그는 생래적 범죄인의 골상과 신체 특징을 과학적, 실증적으로 분류해 발표하였다. 
롬브로조는 ‘문명이 결코 범죄를 없앨 수 없다’며 생래적 범죄인이 저지르는 범죄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범죄의 징표로 보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고 했다. 감옥이었다.
 
‘징표.’
혁수는 그 징표를 벌써 팔뚝에 나타내고 있었다.
악인의 징표...

체자레 롬브로조의 학설은 현대에 와서는 완전히 부인되었다. 그런 생래적 범죄인이나 징표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국의 뇌리 속에서는 잊히지 않는다.
범죄인의 징표 윤혁수와 의인의 표상이었던 무사인선배...
무엇인가. 가슴이 답답해진다.
무사인선배가 계셨더라면 아들 혁수를 어떻게 하셨을까?

학교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여전히 말없는 우상으로, 겉에서 보이는 변화라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윤혁수는 점점 더 흑표범같이 밤의 거물로 커나가고 있었다.

빙산의 일각이었지만,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폭행이었다.
경찰서에서 이상국 선생에게 연락이 왔다.
혁수는 다른 폭력배 두 놈을 잔인하게 짓이겨 놓고 유치장에 앉아 있었다.

이상국은 조용히 대학 후배들을 불렀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고 기민하게 혁수의 일을 해결했다. 이상국이 소리 없이 합의금을 지불하고 신원을 보증했다.
윤혁수는 아무 일 없이 풀려 나왔다.

며칠 후 이상국이 혁수를 체육관으로 불렀다. 긴 말을 하지는 않았다.

“혁수. 우리 약속했다. 내가 아버지 같이 너를 보호하기로.
나는 너를 지켜준다. 그런데 너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구나.
좋다. 용서하마. 다시는 그러지 마라.
다시 약속하자. 나는 너의 아버지. 너는 세 가지 약속.
꼭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기로...”

이상국은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다.
이번에는 혁수도 진지하게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약속 지키겠습니다.”

적어도 유치장에서 구해준 의리는 지켜야 한다.
윤혁수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켜주기로’ 마음먹었다.
졸업도 하고 볼 일이었다.
그 후로 그는 결석하지 않았다. 웬만한 일은 혁수를 따라다니는 ‘셋째부류’들에게 시켰다. 조신하게 몸조심을 했다. 
그럴수록 혁수는 더 구름 같은 신화요, 전설 같은 우상으로 몸이 무거워졌다. 선생님들은 혁수가 조용히 있어 주는 것에 고마워했다.
그는 ‘사내답게’ 어머니와 선생님과의 약속을 이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 날, 윤혁수는 학교를 나오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교문 밖을 나오는데. 몇 녀석이 기웃거리며 몸을 숨기곤 하였다.
악인들에게는 특유의 후각이 있다. 
몇 놈을 부를까하다 일이 커지면 곤란하다 싶어 묵묵히 길을 걸어갔다. 저녁은 어두웠고, 골목길에 접어들어 품속의 나이프를 꺼내들 찰나, 혁수는 기절하고 말았다. 후두부의 일격이었다. 몽둥이와 흉기로 짓밟히며 정신을 잃어갈 때 그는 그 중의 한 명에게 기억을 집중했다.

누군가의 신고로 응급실로 실려 갔지만, 그는 주소와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뒤처리는 빽 좋은 ‘셋째 부류’들이 해결했다.

한동안 몸을 추슬렀다. 혁수는 기억에 남았던 녀석을 기어이 찾아냈다. 녀석의 허리를 꺾고 담뱃불로 팔을 지질 때마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동료들 이름을 댔다. 혁수는 그 동료를 하나하나 찾아냈다.

혁수가 다시 학교에 나갔을 때는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였다.
학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셋째 부류’들의 입소문으로 인해 윤혁수의 영웅담은 몇 배로 부풀려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퇴학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다.
이상국 선생만이 직을 걸고 책임질 테니, 퇴학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교장 선생님에게 읍소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등교하자마자, 윤혁수는 이상국 선생에게 불려갔다.
체육관이었다.
이상국 선생은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의 손에 목검이 들려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혁수에게 선생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윤혁수. 너를 믿었다.
남들이 애비 없이 자란 놈이라 해도 너를 ‘사내’라고 믿었다.
그런데, 너는 아니었다. 어머니와 약속했고, 선생님하고도 약속해 놓고 약속을 깼다. 너는 비겁한 놈이다.
비겁한 놈. 어머니가 불쌍하지도 않나? 아버지에게 부끄럽지도 않나? 이 불효막심한 놈. 네 인생이 그렇게 비참해져도 좋단 말이냐?
이 못난 놈!

너는 무서운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오늘 무서운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선생님으로서 나는 너를 때릴 수 없다. 이 매는 아버지에게 맞는 매다.
이놈. 오늘 내가 네 아버지로 훈도하겠다. 아버지라고 생각해라.
엎드려뻗쳐!”

혁수는 말하고 싶었다. 

‘아닙니다. ‘사내답게’ 약속을 지키려 했습니다. 진정입니다.
그런데 녀석들이 못 지키게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러나 그건 변명에 불과했다. 징징거리는 계집애 같은 말이었다.

“엎드려뻗쳐!”

그는 엎드렸다.
선생님의 목검이 엉덩이를 내리쳤다. 

“으악!”

혁수의 입에서 비명이 절로 나왔다. 여느 몽둥이와는 달랐다. 
목검이 그렇게 아플 줄 몰랐다. 검도 5단...
그러나 엉덩이가 아픈 것보다 ‘사내답지’ 못한 비겁한 놈이 되어 매를 맞는 것이 더 아팠다. 

“선생님, 약속 지키려 했습니다. 저 지키려 했어요.”

그가 맞으면서 외쳤지만, 선생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을 믿어주지 않았다.

“거짓말... 비겁한 놈...”

사정없이 매가 꽂혔다. 온 몸이 우리우리 떨리며 아팠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선생님은 매를 멈추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악인의 피가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이를 부드득 갈았다.
혁수가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엎드려뻗쳐! 이놈!”

혁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흠칫했다.
혁수가 바지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아니, 이 녀석이...”

선생님이 놀란 눈으로 한 걸음 주춤 물러섰다.
그때였다. 윤혁수는 꺼내든 나이프로 전광석화같이 자신의 팔등을 그어 버렸다. 
팔뚝의 살이 날카롭게 베이며 속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그는 이상국 선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외쳤다.

“저 ‘사내답게’ 약속 지키려 했습니다. 이래도 못 믿으시겠어요?!”

팔에서 붉은 선혈이 분수같이 솟아올랐다. 흐르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는 피였다. 팔꿈치에서 팔목까지 예리하게 베인 틈에서 피가 폭포같이 흘렀다.
피가 흐르는 팔뚝을 들어 보이며 혁수가 선생님을 노려봤다.

“저, 약속 지켰습니다.”

이상국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이상국은,

“이런 불효막심한 놈. 불효막심한 놈...”

하며 허둥지둥 혁수를 들쳐 업고 입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체육관 문밖에 있던 학생들이 놀라 모두 길을 비켜섰다.
윤혁수는 선생에게 업힌 채 그들에게 손을 들어 여유 있게 흔들었다. 

“나의 전설은 이 학교가 있는 한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
‘사내답게’ 산 영웅으로...
아우들아, 보라. 내가 곧 부활할 테니...”

윤혁수는 즉시 퇴학당하였다.
이상국 선생은 해임되었다. 

학교 담장을 벗어나는 것은, 거추장스런 규율과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해방된 자연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학교라는 것이 그렇게 큰 성이고, 선생님이 그렇게 거대한 보안관인줄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사회는 얼음같이 냉혹하고, 사막같이 삭막했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파출소 순경이 손가락 하나로 수갑을 채우는가 하면, 그들의 펜 놀림하나로 하루하루가 결정되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죄도 아니고 그저 선생님에게 반성문이나 쓰면 될 대수롭지 않았던 일,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고 영웅적으로 해냈던 일들이 사회에 나오니 하나씩 들춰내져, 컴퓨터에 입건되면서 어마어마한 범죄로 둔갑하였다.

폭행, 상해, 강도, 성폭행....
  
선생님을 통하지 않고는 감히 학교에 들어올 수조차 없었던 형사들이 낮이나 밤이나 혁수의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과 집을 제 집 안방 드나들 듯 했다.

어머니는 손발이 다 오그라졌다.
경찰서다, 변호사다, 검찰이다, 법원이다, 구치소다 하면서 식당 일을 그만 두고 다리가 부서져라 돌아다녔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돈이 들었다.
변호사비야, 합의금이야, 인지대야, 뭐야, 뭐야...
전세도 내놓고, 예금도 다 털었다.
은행 대출은 말할 것도 없고, 빚도 얻어야 했다. 집안이 거덜 났다.
어머니는 소년교도소만은 피해야 한다며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황태자였던 그, 전설의 영웅, 그들의 우상이었던 윤혁수...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한없이 망가지고, 몰골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눈매와 주먹에 힘이 다 빠졌다.
하루아침에 천지가 이렇게 개벽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갑 찬 손으로, 책상 넘어 안경 끼고 펜을 놀리고 있는 저 범생이, 찌질이 같은 녀석들에게 한없이 굽실거려야 했다. 비참했다. 무력했다.

없는 돈과 어머니의 뼛골 빠지는 노력 덕분에 윤혁수는 소년원에 보호 처분되었다.

그곳은 교도소가 아니라 19세 미만의 비행 소년들을 위한 학교였다. 근무하는 사람들은 교사 자격증이 있는 선생님들이었고, 과목별로 수업이 있었으며 검정고시 준비반이 있었다.

소년원에서의 생활.
윤혁수가 인생에서 다시는 회상하고 싶지 않은 시간, 바로 이 때였다. 길게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불이 켜진 채로 잠 들어야 하고, 화장실까지 24시간 CCTV로 감시당하며, 운동과 수면시간 외에는 드러눕지도 못한다든가, 초등학교 5학년짜리와 19살 고등학생이 같은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것 같은 신체적 구속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혁수는 이상국 선생님의 말이 주마등같이 떠올랐다.

‘자유’와 ‘행복’은 같은 단어라는 것을 아나?’

‘자유.’
나이도 인격도 무시되고 오로지 범죄의 질과 양에 의해 인간의 서열이 매겨지고, 악독하고 변태적인 사람들의 일원이 되어 스스로를 끼워 맞추어야 하는 인격말살의 처참함에 ‘자유’는 호사스런 단어였다.
‘자유.’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러나 그 ‘자유’는 없어졌다. ‘행복’도 사라졌다.
무서운 것은, 소년원을 나가도 보이지 않게 옭아매는 그 무엇이 있어 이 ‘자유’가 인생이 끝날 때까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가슴 속에 찬 서리가 내리는 듯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소년원이 그럴진대, 어머니가 왜 소년 교도소는 절대 안 된다며 몸부림쳤는지 이해가 갔다.
그곳은 의리 있는 자들이 모여 있는 곳도 아니요, 악인들이 한번쯤 거쳐야 하는 골든 벨 무대도 아니었다.
윤혁수의 눈에는 그저 이 사회의 더러운 쓰레기 하치장이었고, ‘자유’의 단두대였다.
 
소년원 생활을 하면서 윤혁수에게 악인을 보는 눈이 생겼다.

‘첫째 부류’의 악인, ‘둘째 부류’의 악인, ‘셋째 부류’의 악인...

그의 눈으로 볼 때, 원생들의 대부분은 ‘셋째 부류’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학교 다니다 들어 온 폭력배 중에는 자신보다 약하고 소외된 학생들을 골라 폭행한 비겁하고도 야비한 철없는 녀석들이 많았다. 악인 흉내 내다 걸려 들어온 것이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거리고 건방피우다 온 어리석고 못난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나 컸다. 

혁수의 ‘첫째 부류’로서의 악인의 속성은 소년원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할리우드 액션도 필요 없었다. 그의 화려한 ‘무용담’과 ‘사내다운’ 기질 앞에서 점차 ‘까부는 놈’과 ‘건방진 놈’이 사라져 갔다.
선생님들이 원생들을 통제할 때, 혁수를 찾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짱’이 되어 가고 있었다.

소년원 직원 중에 혁수를 눈여겨보며 알 수 없는 신뢰감을 보여주는 선생이 한 사람 있었다.
김영옥 선생.
운동으로 다져진 몸에 훤칠한 키의 그는 윤혁수를 가슴에 부착한 번호로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러 주었다.

“윤혁수! 사무실로...”

사무실 테이블 위에 사탕과 과자가 놓여 있었다.
김영옥이 윤혁수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간단하고도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중학교 선배였다.
영옥은 혁수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따뜻하게 배려해 주었다. 덕분에 혁수의 소년원 생활은 지내기가 한결 수월하였다.
고마운 일이었다. 
하루는 김영옥이 은근히 혁수를 불러 간식을 주며 물었다.

"그때 같으면.., 이상국 선생이라고 알겠네...
지금도 거기 계신가?”

혁수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머뭇거리다가,

“그만 두셨습니다.”

“왜?”

“폭력 교사여서요.”

“폭력교사? 왜? 그럴 분이 아닌데...”

혁수가 영옥을 바라보며 직선으로 말했다.

“제가 잘랐습니다. 학생을 사랑으로 계도하는 것이 아니고, 개 패듯 패고, 학생의 말을 못 믿고 자기가 무슨 학부모라도 된 듯 아버지라며 폭력을 휘두르다가 잘렸습니다.”

김영옥의 두 눈에 비상등이 켜진 듯 했다.

“자세히 말해봐. 어떻게 했다고?”

윤혁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토해 놓았다. 그리고 왼팔을 보여주었다. 팔꿈치부터 팔목까지 길고 깊게 베어진 상처가 흉측하게 남아 있었다.
혁수의 뱃속에서 당시의 영웅심이 다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김영옥은 윤혁수의 말을 눈도 깜박이지 않고 듣고 난 후,

“그게 사실이란 말이지. 이상국선생이 그만 두신 게 너 때문이라는 말이지...”

하더니, 갑자기 벽력같이 혁수를 향해 소리쳤다.

“이런 나쁜 자식! 이런 자식을 후배라고...”

뺨을 부들부들 떨며 영옥은 흥분하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갑자기 돌변한 김영옥의 태도에 혁수 또한 말을 잃고 있자, 김영옥이 윤혁수에게 칼로 베듯 소리쳤다.

“너 따라와!”

혁수는 영문도 모른 채 납작 엎드린 자세로 김영옥을 따라갔다.
김영옥이 혁수를 데리고 간 곳은 체육관이었다.

“엎드려뻗쳐!”

영옥이 명령했다. 즉각 엎드렸다.
김영옥은 캐비닛에서 목검을 꺼내왔다.

‘목검!’

이상국 선생의 목검이 떠올랐다. 악몽 같은 트라우마였다.
마음의 각오를 했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김영옥은 사정없이 목검을 내리쳤다.
이상국 선생의 매는 매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었다.
그러나 김영옥 선생의 매에는 증오가 있었다.
엉덩이 살이 찢어지고 터져 피가 튄 뒤에야 김영옥은 매를 멈추었다.
윤혁수는 의무실에 입원하였다.
소년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듯 했다. 

혁수가 누워있는 의무실에 김영옥이 찾아왔다.
그는 차디찬 어조로,

“118번 윤혁수. 어서 나아라.
나아야 또 맞지. 너는 죽을 때까지 맞아야 해.
너는 맞아 죽어야 해. 알았어!”

이렇게 말하고 의무실 문을 꽝 닫고 나가버렸다.
윤혁수는 난생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김영옥의 말과 눈이 두려웠다. 더욱이 이유가 무엇인지, 그 알 수 없는 적개심이 더욱 두려웠다.

윤혁수가 의무실에서 퇴실하자, 김영옥이 여지없이 혁수를 불렀다.
체육관이었다.
김영옥은 이번에는 검도복으로 갈아입고 목검을 허리에 차고 장승같이 서서 혁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려움이 무서움으로 현실화되었다. 이렇게 무서워 본 적은 없었다.

“엎드려뻗쳐!”

저승사자처럼 서 있던 김영옥이 차디차게 내뱉었다. 
윤혁수는 그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맞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맞겠습니다. 하지만 이유를 말해주십시오.”

“이유? 그래 좋다, 이유는 알고 죽어야지.”

김영옥은 무릎 꿇고 있는 혁수의 머리 위에 목검을 거누며,

“네가 죽어야 할 이유를 말해주마.”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체육대학 다닐 때,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배님이 계셨다.
별명이 ‘무사인’ 선배였다. 너 같이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은 쳐다 볼 수 없는 사나이중의 사나이였다. 그 분은 늘 후배들에게 말했다.

‘사내답게 살지 않으려면 죽어 버리라’고...

그분은 사내답게 산다는 것을 이렇게 말했다.

첫째, 나보다 동포를 먼저 생각하라. 제 가족을 생각하는 것은 여자가 할 일이고, 더 큰 가족, 동포를 생각하는 것은 사내가 할 일이다. 
둘째, 의가 아니면 쳐다보지 마라. 제 목숨 아깝지 않고, 돈 싫고, 명예가 싫은 사람이 어디 있나. 그러나 사내라면 의를 위해 죽고 살아야 한다.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선생 같은 사내가 진짜 사내다.
셋째, 미래를 향해 살아라. 밝고 넓은 미래의 세상에서 살아라. 어리석게 과거와 현재에 미래가 묶여 어두운 세상에서 살지 마라.

그리고 그 분은 그렇게 사셨다. 우리 검도부는 그 분을 진정으로 존경했다. 우리의 사표로 모셨다. 그런데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다.
우리는 그 분 장례식장에서 맹서했다.
사내답게 살자고...
우리는 무사인 후계자를 만들었다.
그 분이 초대 무사인. 그리고 4대가 이상국 선생님.
내가 10대 무사인이다.
그 중 몇 분은 무사인선배님의 유지를 받들어 국가와 미래를 생각하며, 검도로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다음 세대를 올바로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4대 무사인. 이상국 선생님.
그런데 너를 아버지처럼 훈도하신 이상국 선생님을 폭력교사?
네가 잘라?
너는 네 후배들의 올바른 삶을 가르치려는 교육의 뿌리를 잘랐다.
너 같은 쓰레기는 없어져도 좋아. 그런데 네 후배들의 새싹까지 잘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무사인의 이름으로... 
엎드려뻗쳐!”

윤혁수는 고개를 들어 김영옥을 바라보았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그런지도 모르고...
그 매로 저를 죽여주십시오.”

윤혁수는 조용히 엎드렸다. 매를 기다렸다.
매는 내려쳐지지 않았다.
김영옥은 목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체육관을 나갔다.
윤혁수는 체육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떨어지는 눈물이 시냇물같이 흉터가 있는 팔등을 타고 흘렀다.

검도 사범으로 후진을 가르치며 소일하고 있던 이상국에게 오래간만에 전화가 왔다. 친동생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 김영옥이었다.
안부 차 전화라 하면서도, 선배가 어떻게 지내는가를 묻는 말이 지나가는 인사가 아니었다.

“오, 오래간만이네. 요즘 학교 명퇴하고 잘 지내고 있어.”

“명퇴요? 왜 명퇴를 하셨지요?”

“그만 할 때도 됐잖아...”

막무가내로 식사하자는 김영옥의 말에 둘은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다.
화제에 자연히 윤혁수가 떠올랐다. 이상국이 깜짝 놀라 물었다.

“윤혁수가 자네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다고?”

“그렇습니다. 그 녀석이 선배님을 잘랐다고 망발을 하길 래, 제가 훈도 좀 했습니다.”

이상국이 김영옥을 바라보았다. 엄숙하도록 진지했다.

“윤혁수가 무사인선배 아들이라는 거 아나?”

김영옥은 눈이 뒤집히듯 놀랐다.

“예에?!”
 
“혁수 본인도 모르고 있다. 나도 형수님 만나 뵙고 알았다.”

“아니 어떻게?”

“형수님도 아들에게 말을 안했대...
약간의 미스터리가 있는데, 무사인선배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는구먼...”

“........”

“형수님 말씀이, 해병대 수색장교로 입대했던 선배님이 휴가 나왔다가 폭력배들 하고 붙었다는구먼...
자네도 선배님 성격 알잖아. 약혼한 형수님하고 술집에서 데이트하고 있었는데 폭력배들이 술집 아가씨들을 희롱했다는구먼.
선배님이 그러지 마라고 충고하니까, 녀석들이 형수님까지 희롱했다는구먼. 참고 있을 분이 아니지...
술집이 뒤집어지고 녀석들 크게 당했는데, 선배님도 넘어지면서 뇌진탕으로 그리 됐다는 거야...
군 장교로서 좋은 일도 아니고 해서 서로 교통사고로 합의했다는구먼. 그러니 대놓고 말을 못하지. 전사라고만 하고...” 

“그게 그렇게....
그런데 아들은 학교 폭력배란 말입니까?”

“그래서 내가 사람 좀 만들려고 했지. 무사인선배님 생각해서...”

“어떻게 무사인선배님 같은 분에게서 저런 아들이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교육이야. 교육...
무사인선배님이 그랬잖아. 자식 교육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모 있느냐고. 그래서 선생님이 존경받아야 한다고. 사도가 떨어진 교육풍토에 일갈하면서 말이지. 그 말에 감동받아 나도 선생이 됐었지.
혁수한테는 정말 아버지 노릇 좀 해보려고 했는데...
그리 됐네.”

그러면서,

“혁수 만기가 얼마나 남았지?”

“1년입니다.”

이상국이 정색을 했다. 그리고 간곡하게, 

“자네가 사람 좀 만들게...
녀석 저렇게 망가지면 우리가 어떻게 무사인선배 얼굴을 보겠나?”

김영옥이 윤혁수를 다시 불렀다.
체육관이었다.
목검을 들고 있었다. 윤혁수는 부들부들 몸이 떨려왔다. 
김영옥은 근엄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118번, 윤혁수. 너 전번에 죽여 달라고 했지.
좋아. 오늘 죽여준다. 깨끗하게 죽을 수 있나? 사내답게!
너는 오늘 죽을 거다. 쓰레기 윤혁수는 죽는다. 
어머니에게 불효하고, 아버지 같은 선생님 망가뜨리고, 주먹이나 쓰는 학교 폭력배, 사회의 암 덩어리 너 윤혁수는 죽는다. 깨끗이 죽는다.
알겠나!”

“........”

“그 대신 새로운 윤혁수가 된다. 그게 너를 죽여주는 조건이다.
약속할 수 있나?”

“새로운 윤혁수란... 어떤?”

김영옥이 말했다.

“선생님이 돼라. 너 선생님이 돼서, 이상국 선생님 같은 훌륭한 분의 뜻을 이어라. 그 분에게 속죄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선생님이 되는 거다. 네 아버지의 꿈을 네가 이루어내는 것이다.
알겠나?”

‘아버지의 꿈?’

“엎드려뻗쳐!”

그는 목검으로 혁수의 엉덩이를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쳤다.

“이것은 이상국 선생님이 너에게 내리는 사랑의 매다.
죽어라. 윤혁수!”

그리고 두 번째 매를 내리치면서,

“이것은 네 아버지 무사인선배님의 매다. 네 아버지가 하늘에서 아들에게 내리는 사랑의 매다. 죽어라. 윤혁수!”

그 다음은,

“이것은 불쌍한 네 어머니가 울면서 너에게 내리는 사랑의 매다.
죽어라. 윤혁수!” 

세 번째 매가 가장 아팠다.

무사인선배가 바로 네 아버지였다!

김영옥은 혁수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윤혁수는 엎드려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의 두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체육관 매트를 흥건히 적셨다.
윤혁수가 흐느끼며 말했다. 피 끓는 참회의 절규였다.

“선배님. 윤혁수를 죽여주십시오.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상국 선생님, 아버지, 어머니!
전 정말 죽일 놈입니다. 절 죽여주십시오. 윤혁수를 죽여주십시오!”

윤혁수는 죽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무사인 2세가 되었다.
그는 선생님이 되었다. 체육교사가 되었다.
30여 년간 작은 교실의 교단에 서서 봉직하면서, 그는 수많은 첫째, 둘째, 셋째 부류의 악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반복하여 교실 안의 그 자리를 비우면 채우고, 채우면 비웠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윤혁수는 알고 있다.
역사의 무엇이 반복되어야 하고 무엇이 예외이어야 하는지를.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삶.’
이상국 선생이 말한 ‘자유로운 삶’은 사람에 따라 다른 것만이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무사인 아버지의 교육관도, 사랑의 매도, 무엇이 ‘자유’인지도 역사의 흐름을 타고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확신하고 있다.
그의 학생시절의 경험으로 미루어..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하여도..
‘악인은 없다’라는 걸..

얼마 전 돌아가신 이상국 선생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면서..

“나는 체자레 롬브로조가 왜 틀렸는지 이제야 깨달았네.
정말 유전적으로 생래적 범죄인이 있는지는 모르겠네.
헌데, 그는 법과 교도소만 아는 학자였어. 법과 교도소로 볼 때 그의 이론은 맞았네.
하지만 선생님을 몰랐어. 그의 오류는 학교를 모르고 선생님을 몰랐다는 것이었네. 선생님 때문에 롬브로조는 틀렸네.
생래적 범죄인. 그런 것은 없다네. 훌륭한 선생님 앞에서...”


※ 이 가족동화를 생을 다 바쳐 이 땅의 철없는 것들을 가르치며 애쓰시는 선생님들과 퇴직하신 은사님들께 바칩니다.  ― 미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