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동락’의 정신으로 스마트 팩토리 구현하다

[은퇴과학자, 강소기업을 만나다] <3>‘인더스트리 4.0’ 선도하는 지능형 용접시스템 전문기업 ㈜휴비스

2017-08-23     이충건 기자

[세종포스트 이충건 기자] ‘의기투합(意氣投合).’ 뜻과 기운을 던져 서로 합친다는 뜻이다. 마음과 뜻이 같은 사람들, 그들의 에너지가 차고 넘치는 강소기업이 있다. ‘인더스트리 4.0’을 선도하는 ㈜휴비스다.

대전 유성구 관평동에 위치한 휴비스는 산업 용접공정에 디지털 자동화 기술이 결합된 용접시스템을 적용한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즉 지능형 생산시스템을 구현하는 회사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김명진(39) 씨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뒤 10여 년간 시스템 엔지니어로 기업체에 근무했다. 산업자동화 회사였다.

동거동락(同居同樂) - HUBIS

그가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중심! 그랬다. 이 회사의 시작은 전우애였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직장. 회사는 회복이 쉽지 않을 정도로 경영이 악화돼 있었다.

그는 팀원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다. 같이 오랫동안 일 할 수 있는 회사, 땀 흘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그의 결심에 동료들이 의기투합했다. 2009년 한국원자력연구원 창업보육센터에서 휴비스(HUBIS)가 탄생했다.

휴비스란 회사 이름에는 ‘사람(HUman)이 중심이 된 최고의(Best) 산업‧공정 솔루션(Industrial Solution) 기업’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그는 창업의 목표인 사람중심의 기업문화를 하나씩 실천해왔다. 4년에 한 번씩 한 달간의 포상휴가를 보내주는 게 대표적이다. 공공기관에서나 지급하는 복지카드 제도도 운영한다. 해외 출장을 가는 직원들에게는 하루 정도 개인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경비까지 지원한다.

복지나 근무환경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결정하는 것도 직원들이다. 대표를 제외한 전 직원이 참가하는 회의를 통해서다.

김 대표를 포함, 전 직장 동료 4명으로 시작된 휴비스는 현재 직원 20명이 일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휴비스의 성장은 끊임없는 기술개발 덕분이지만, 그에 앞서 직원들을 가족으로, 회사를 그들의 울타리로 여기는 창업정신이 있었다.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사는 식구끼리 즐거움을 함께 나누겠다는 ‘동거동락(同居同樂)’의 정신이다.

금선탈각(金蟬脫殼) - HUBIS

‘금선탈각(金蟬脫殼).’ 삼십육계 중 제21계, 즉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날아가는’ 것처럼 전황이 불리할 때 그 자리에 주둔한 척하고 퇴각해야 한다는 전술적 의미로 주로 쓰인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애벌레가 성충이 되어 금빛 날개를 가진 화려한 모습으로 탈바꿈한다는 뜻이다.

흔히 혁신(Innovation)이라고 하는 개념을 동양에서는 탈피(脫皮)로 표현한다. 가령 게에게 있어 탈피는 성장을 위한 위험하지만 유일한 수단이다. 낡은 껍질을 벗으면 새롭게 형성된 연한 껍질을 갖게 되는데 이때 포식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쓴 탈피는 더 큰 성장, 지속적인 생존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기업들이 맞닥뜨리는 약육강식의 경쟁에서는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최고가 되지 않고서는 ‘동거동락’도 없다는 것을 김 대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휴비스는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30대 직원이 대부분인 젊은 회사였다. 매미로 치면 애벌레고, 게로 치면 언제 먹힐 줄 모르는 새끼에 불과했다. 하루 빨리 날개 짓하는 매미로, 딱딱한 껍질과 강력한 집게를 지닌 온전한 게로 성장해야 했다.

회사를 한 단계 성장시키기 위한 결정적인 한방을 그는 용접산업에서 찾았다. 휴비스가 2011년 ‘용접모니터링시스템’ 개발에 착수한 이유다. 자체 보유한 공정모니터링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용접시스템이다. 본격적인 ‘인더스트리 4.0’으로의 전진이었다.

ISO9001(품질경영시스템에 관한 국제규격) 이전에는 제품을 잘 만들었느냐 못 만들었느냐, 즉 사후관리가 전부였다. 하지만 새로운 인증이 시행되면서부터는 공정관리가 중요해졌다. 결과에서 과정으로 품질인증의 무게중심이 옮겨간 셈이다. 휴비스는 공정솔루션 전문기업이다. 하지만 용접공정에 특화된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용접은 생각 이상으로 더 많은 지식과 오랜 경험이 필요한 기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 대표가 우리나라 국제용접전문기술자(IWE) 1기 출신인 김종식(62) 전무를 만난 것도 이 즈음이다. 국제용접전문기술자는 480시간 교육을 받고 20시간에 걸친 시험을 통과해야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김 전무는 현대자동차에서 해외연구소장까지 역임하며 30여 년간 근무하다 2011년 정년퇴직한 베테랑 용접기술자다.

김 전무는 퇴직 후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고 있다가 2012년 김 대표를 우연히 만났고, 곧 의기투합했다. 김 대표는 김 전무와의 만남을 “간절함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 간절함은 ICT와 뿌리산업, 패기와 경륜의 결합이었다.

김 전무가 가세해 2013년 출시한 용접모니터링은 휴비스의 성장을 견인했다.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 중에 작업자는 17인치 터치스크린 모니터에 띄어진 제품도면과 함께 전류, 시간, 냉각수온도, 가압력 등 각종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공정을 분석할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경보음을 울려줘 불량품 발생도 막을 수 있다. 휴비스는 비로소 용접에 특화된 공정모니터링시스템 전문기업으로 진일보했다.

이에 힘입어 휴비스는 지난해 매출 30억 원을 돌파했다. 이 회사가 대덕연구개발특구의 대표적인 청년창업 성공사례로 여겨지는 이유다. 금빛매미가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게가 탈피를 통해 더 단단한 껍질을 얻은 것처럼 동거동락의 기반은 마련한 셈이다.

교토삼굴(狡免三窟) - HUBIS

‘교토삼굴(狡兎三窟).’ 꾀 있는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는다는 뜻이다. 최고경영자(CEO)라면 경영환경 변화에 대비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대책을 내놓을 줄 알아야 한다.

직원들은 회사에서 대표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국내외 제조현장을 직접 발로 뛰면서 체험하고 다녀서다. 100% B2B(기업 간 거래)에 의존하는 회사의 특성상 산업구조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를 통해 제조업체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회사의 미래방향을 정해왔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주를 이루던 자동차, 조선 등 노동집약적인 용접이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산업구조가 소형화, 집적화되는 추세에 발맞춰 레이저용접으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는 휴비스가 판 세 번째 굴이 됐다.

복사광선의 유도에서 나온 증폭된 빛을 레이저라고 한다. 그런데 레이저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빛이다. 정확한 초점은 레이저용접에서 제품의 품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초점 위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전적으로 작업자의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육안에 의한 초점검사는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고, 오차가 발생하면 용접결함 등 생산 불량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고밀도에너지인 레이저 용접시스템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정초점을 최적으로 설정하고 유지하는데 있다.

휴비스가 산업용 레이저장비의 정초점 위치 검출장치 개발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카메라로 정초점 위치를 찾는 원리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분기술이 곧 시스템이 될 수는 없었다. 국제규격에 대한 지식, 레이저 빔의 품질과 정초점 위치의 상관관계 도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우수한 은퇴 과학기술인을 중소벤처기업과 연계해주는 대전테크노파크의 고경력 과학기술인 지원 사업(Senior scientist&Engineers)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이를 통해 ‘기술닥터’ 최병길(70) 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최 박사를 김 대표에게 소개한 건 김종식 전무였다. 최 박사는 김 전무와 마찬가지로 독일인에게 교육을 받은 우리나라 국제용접기술자 1기 출신이다. 그때 맺은 인연이 기술애로 해결로까지 이어진 것.

최 박사는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와 영남대에서 각각 용접공학 석사, 정밀기계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다 한밭대로 옮겨 신소재공학부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최 박사는 레이저 빔의 측정에 필요한 ISO 규정을 수집해 이에 맞춰 개발이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최 박사가 제공한 기술 자료만 70여개에 달할 정도. 레이저 빔의 품질에 따라 용접조건이 달라지는데, 이는 보정 값을 도출해 정초점을 검출하는 알고리즘 개발로 해결했다.

최 박사의 도움으로 휴비스는 새로운 레이저 응용 신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 과정에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기술세미나도 수시로 열렸다. 최 박사의 합류로 진정한 산학연 융합이 가능해진 셈이다.

휴비스는 산업용 레이저 장비의 정초점 위치 검출장치에 대한 성능시험을 마치고 제품 상용화에 나선 상태다. 김 대표는 이 기술에 대해 “작업자의 경험에 의존하던 레이저용접이 정확한 계측에 의해 품질확보가 가능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산업계에서는 정초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 개발로 고가의 외산 장비에 대한 수입대체 효과는 물론 수출을 통한 경제적 효과도 예상하고 있다.

가공용 레이저기기의 세계시장 규모는 이미 120억 달러를 넘어섰다. 국내시장 규모도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휴비스는 한편으로는 국내 기업들에게 제조공정 개선을 제안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해외시장 진출을 겨냥하고 있다. 이미 중국시장에 내놓을 상표까지 출원한 상태. 점차 동남아시아, 일본, 미국, 유럽 등으로 시장을 확대해나간다는 전략이다.

“최근 산업은 제조기술과 IT기술의 융합을 통한 스마트공장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휴비스에게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될 것입니다. 동료들과 함께 오랫동안 일 할 수 있는 회사, 땀 흘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꿈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동거동락’에 바탕을 두고 끊임없이 혁신해온 휴비스.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커나갈 이 회사의 미래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