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선원 김치 장인, 모녀가 말하는 ‘약’ 되는 김치

[인터뷰] 정태선 약선원 대표, 딸 윤인자 씨

2016-11-18     한지혜 기자

급격한 핵가족화, 서구화도 막지 못한 한국인의 입맛이 있다. 바로 ‘김치’다. 갓 지은 흰 쌀밥에 쭉 찢은 김치 한 조각, 상상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맛이다.

세종시 전의면에 위치한 ‘약선원’은 3대째 이어져 온 김치 명가다. 종갓집에 시집 와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정태선(62) 대표는 1991년 시아버지와 함께 영농조합법인 약선원식품을 설립, 현재는 딸 윤인자(33)씨와 함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제철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100% 국산 재료로 담근 20여 종의 김치. 종갓집 친지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은 김장 비법은 뭘까. 

17일 오후 약선원 정 대표를 만나 무르지 않고, 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비법과 자신만의 김치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결혼 후 종갓집서 김치 배워… 계절마다 100% 국산 재료 공수 

정 대표는 1980년 종갓집에 시집왔다.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그의 시아버지는 음식에 대한 타박이 많아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을 익히지 않고서는 입맛을 맞추기 어려웠다.

그는 “손님접대가 많았지만, 그 덕분에 시부모님 밑에서 음식 비법을 배울 수 있었다”며 “동네에서는 김치 맛이 좋아 예전부터 공장을 내라며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는데, 1991년에 공장을 설립해 30여 년간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김치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지켜온 원칙은 단 한 가지다. ‘내 가족, 내 식구들이 먹는 김치’. 주 재료인 배추를 비롯해 각종 채소는 물론 양념재료까지 100% 국산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다.

그는 “배추의 경우 10월 중순부터 1월말, 5월말부터 8월 초까지는 세종시에서 공수하고 있고, 2월에는 해남, 8월 중순부터는 태백 고랭지 배추를 수급해 사용한다”며 “계절적인 영향이 있어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되 시기와 지역에 맞게 품질 좋은 재료를 공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우젓이나 멸치액젓 등은 충남 광천에서, 고춧가루는 세종시에서 수급한다. 필요한 농산물은 되도록 직접 지역 농민들에게 공수, 싱싱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정 대표의 원칙이다.

귀향해 김치 명인의 길 걷는 딸, 발효·위생 등 품질관리 주력


딸 윤인자 씨는 전의에서 태어나 자란 뒤 서울로 취업했다. 멀티미디어, 3D 영상 제작 분야에서 일하던 그는 지난 2007년 돌연 고향으로 내려왔다.

윤 씨는 “지역적 특성상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고, 그중에서도 품질관리 쪽 전문 인력이 부족해 계속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잠시 일을 돕기 위해 와보니 미생물이나 위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고향으로 내려온 그는 식품공학 분야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체계적인 미생물 분석·관리 등을 실시했다. 이후 약선원은 2008년 식약청 HACCP 인증을 받고, 2014년에는 배추김치 품평회 대한민국 최고의 맛 김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중국산 혼입김치가 유입되면서 국산 김치의 경우 단가경쟁에 밀려 배제되고 있는 추세”라며 “현재 60여개 세종시 학교에 납품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국산김치와 혼입김치를 동시에 생산한다는 것은 신뢰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기 때문에 국산 김치만을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약선원 역시 과거 대형 병원에 20여 년간 납품해온 이력이 있지만, 그 자리는 이미 대기업이 차지한지 오래다. 이제 식탁 위에는 배추는 국산, 양념은 중국산을 쓰는 혼입김치가 대부분이다.

정 대표는 “특히 요즘 아이들의 경우 균에 대한 면역반응이 약해 미생물에 민감하다”며 “특히 소금의 경우 중국산 암반 소금과 국산 천일염의 차이는 매우 크다”고 말했다. 

옛날식 ‘건염’ 방식 고수, 안전 공정 원칙

최근 공장화된 김치 생산방식과 비교하면 약선원은 여전히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속성으로 김치를 절여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한창 바쁠 때도 최대 생산량은 5톤 정도다.

정 대표는 “배추를 쌓고 소금물에 담궈 눌러 절이는 것이 아니라 옛날식으로 소금을 뿌리는 건염 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선별대 낱장 검사를 통해 배추 안까지 검사해 깊이 숨은 벌레나 이물질 등을 걸러 안전한 김치 생산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염 과정이 끝나면 15시간 절임을 거친다. 세척은 자동2단, 수동1단, 낱장검사, 수동검사 등으로 진행되며 이후 3시간 저온탈수 과정을 거쳐 양념한다. 최종적으로는 반 포기씩 금속검출기를 거쳐야만 포장까지 끝난다.  

그는 “최근 소비자 선호가 숙성되지 않은 생김치를 원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학교나 기관의 경우는 숙성을 맞춰 내보내고, 개인 주문은 생김치도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무르지 않는 김장 김치의 비법은 전의 초수(椒水)?


전의면에는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를 위해 밤낮없이 책을 보다 눈병을 얻었으나, 전의면 초수(椒水)로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때문인지 전의에서는 매년 ‘왕의 물 축제’가 열린다.

정 대표는 “전의가 대대로 물이 좋은 곳으로 유명해 일본 수출시에는 꼭 전의 초수로 절여 김치를 담궈 달라는 부탁이 있을 정도”였다며 “실제 게르마늄 함유도가 높아 김치가 천천히 익는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김치가 무르는 이유는 간단히 3가지다. 주재료인 배추가 비료와 퇴비를 통해 속성으로 재배됐을 경우 김치가 무를 수 있다. 두 번째는 곰팡이 균이 있는 고춧가루를 쓸 경우 혹은 중국산 암반 소금을 쓸 경우 김치가 무를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새우젓을 중국산 소금을 사용해 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배추를 자르는 순간 맛있는 배추인지 아닌지 단박에 안다”며 “깔깔하고 물기가 없으면서 까실까실한 배추, 매끈하고 예쁘게 생긴 1kg~1.5kg 사이의 무를 사용하면 맛있는 김장김치를 담글 수 있다”고 했다. 

김장체험 등 팸투어 개발… 잘 먹으면 ‘약’ 되는 음식

약선원은 최근 팸투어 개발 등 농업의 6차산업화에도 나서고 있다. 다문화 가정을 초청해 김장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 하면 10개 농가와 협력해 팸투어 상품 개발도 시작했다.

딸 윤 씨는 “현재 공장 위생 관리 문제로 현장투어를 자주 할 수 없어 공간을 따로 마련해야하는 부담이 있다”며 “농림부 대한민국 최고의 맛 김치 수상 이후 시로부터 지원을 약속받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정책사업도 바뀌어 중단되는 바람에 팸투어 도입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과거에 비해 현재 김치 소비량이 떨어진 건 사실”이라며 “다문화 가정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김장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 전통 음식을 가까이 접하고,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다”고 밝혔다.

끝으로 정 대표는 “김치는 잘 먹으면 약이 될 수 있는 음식”이라며 “현재 혼입김치가 대중화돼 어려운 점이 많지만, 지금처럼 내 가족, 내 식구들이 먹을 수 있는 안전한 김치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치 소비량이 과거에 비해 절반가량 줄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약 약(藥), 반찬 선(饍). 너도 나도 웰빙을 외치는 시대, 진정 ‘약’이 되는 김치만이 미래에도 우리 식탁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