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직전 수왕초, 학부모 입소문 난 ‘이유’

[인터뷰] 신도시 학교 마다한 학부모 임현진·김혜영·조윤미 씨

2016-10-04     한지혜 기자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좁은 시골 길, 세종시 연기면 눌왕리에 위치한 수왕초등학교는 한때 전교생이 20여 명에 그쳐 폐교 위기에 내몰렸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이색 학교로 주목받고 있다.

출범 이후와 비교하면 학생수가 3배 이상 늘었고, 올해는 동지역 학생 5명 모집에 24명이 지원, 5:1에 가까운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소규모 학교의 가치를 알아보는 학부모들이 증가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 학부모들은 단순히 자연과 함께하는 자유로운 교육환경뿐만이 아닌 작은 학교가 가진 교육적인 가치에 그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

신도시에 거주하면서 자녀들을 수왕초에 보내고 있는 세종시 학부모 세 명을 만나 물었다. 스마트 교육 시스템이 갖춰진 신설 학교가 아닌, 외곽의 작은 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통학불편 감수… ‘내적인 역량 키우는 학교’ 기대

종촌동에 거주하는 임현진(42)씨는 4학년인 딸을 지난해부터 수왕초에 보내고 있다. 오송에서 이사를 준비하면서 일부러 학교가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했지만, 결국 집과 떨어진 작은 학교를 선택한 것.
  
임 씨는 “2년 먼저 첫마을에 정착한 시누이가 세종시에 이런 학교도 있다며 수왕초를 소개했다”며 “학교에 직접 방문해 상담하고, 도서관에서 작은 학교에 대해 공부한 뒤 결국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관련 서적을 찾아 공부하다보니 작은 학교가 아이의 내적인 역량을 키워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같은 종촌동에 사는 김혜영(39)씨도 4학년 딸아이를 수왕초에 전학시켰다. 대전에서 이사오면서 인근 신도시 초등학교에 전학했지만, 몸으로 노는 것을 좋아하는 딸아이는 학업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는 “아이와 함께 몇 차례 학교를 방문한 뒤 결국 아이가 이 학교를 선택해 전학을 결정했다”고 했다. 

고운동 주민 조윤미(40)씨도 4학년 자녀를 수왕초에 보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오송에서 이사와 신도시학교를 다니다가 전학을 택한 경우다.

조 씨는 “예전부터 작은 학교에 대한 로망도 있었고, 잘 노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에서 전학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아이들의 ‘변화’… 잠재력과 가능성 발견하는 교육환경


수왕초의 반 정원은 12명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항상 교사와 눈 맞춤이 가능한 거리 안에 있고, 모두에게 충분한 기회가 주어진다.

학부모들은 “큰 학교의 경우에는 수업 중 발표 기회가 제한적이고, 자기 표현의 시간이 부족한 편”이라며 “무엇보다 선생님의 충분한 관심과 사랑은 아이들에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했다. 

교육 환경의 변화는 금방 아이들의 변화로 이어졌다. 목소리가 작고 내성적이었던 아이는 지금껏 학교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지만, 전학 온 뒤부터는 묻지 않아도 학교생활에 대해 자주 떠들었다.

특히 아침마다 반복됐던 ‘학교가기 싫다’는 불평은 깨끗이 사라졌다. 이들에 따르면, 자기표현이 즐거워진 아이들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얻어 한층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학부모 김씨는 “집 근처 학교를 다니는 둘째는 2학년인데 벌써부터 학교가기 싫다는 얘길 한다”며 “학업 스트레스를 고려하면 학습부담이 큰 4학년 첫째보다 둘째가 더한 상태인데, 기회가 된다면 둘째도 이 학교에 전학시킬 생각”이라고 했다.

또한 소규모 학교의 경우 학년 간 교류가 활발하다보니 아이들은 학교에서 또 다른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외동아이의 경우에는 형, 누나, 동생과의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추첨제 벗어난 자유로운 방과후 활동… 직장맘도 ‘안심’


이사 당시 직장생활을 했던 학부모 임씨는 방과후 활동에 가장 관심이 많았다. 신도시 학교의 경우 과목마다 경쟁이 치열해 수강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고, 이에 따라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기 때문.

특히 이들에 따르면, 과목과 과목 사이 빈 시간들은 학교에서 보내거나 집에 돌아와 기다려야 하는데, 학교 주변이 공사장이다보니 염려스러운 점도 많았다.

임 씨는 “방과후 활동을 전교생이 함께할 수 있어 아이들의 소질과 적성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며 “이곳 학교는 나가봤자 논밭, 운동장, 텃밭, 사육장이다보니 위험 환경에 대한 걱정도 없고, 아이들에게는 자투리 시간이 또다른 놀이시간이 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 학교에서는 하교 시간에 딱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면, 오히려 '왜 이렇게 일찍 왔냐'는 타박(?)을 맞기 일쑤다.

전 학년이 함께 ‘교류’… 학교·교사·학부모 동반자교육 성과

아이들과 선생님과의 유대관계가 깊다보니 교사들은 아이들의 생활습관, 부족하거나 보완해야할 점, 새롭게 발견된 적성이나 흥미 등 많은 부분을 캐치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학교는 한 달에 한 번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하는 간담회를 열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것.

학부모 조 씨는 “아이가 느린 편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선생님은 주위에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일을 꼼꼼히 해내는 아이라고 하셨다”며 “보이지 않는 장점과 잠재력을 찾아내시는 모습에 존경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수왕초에서 운영하는 가족텃밭도 교육공동체 형성에 일조하고 있다. 바쁠 때는 가족끼리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 밭을 일구고, 수확 시기에는 아이들이 따온 고추와 가지가 저녁밥상에 올라오기도 한다. 

매년 열리는 캠프와 운동회도 가족참여행사로 진행된다. 1박 2일 일정동안 전 학년 가족들이 모여 저녁을 해먹고, 이튿날 운동회를 즐긴다. 

특히 학년별로 팀을 구성, ‘6남매’가 참여하는 ‘동네 한바퀴’ 프로그램은 가장 인기가 많다. 각 가정을 방문해 미션을 해결하면서 동네를 탐방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웃 어른들과 만나 정을 쌓기도 한다. 

학부모들은 “요즘 학교는 큰 행사가 축소되는 경향도 있고, 운동장도 협소해 전교생이 어울리기가 힘든 구조”라며 “이곳 학교의 경우는 학부모 참여행사가 많은 편이다. 이번 학예회에서도 학부모들이 직접 연극에 나서는 등 재밌는 일이 많다”고 웃었다.


“학습 우려? 오히려 큰 가능성·잠재력 기대” 

학부모들은 학습에 대한 우려가 소규모 학교를 선택함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사실에 모두 공감했다. 다만, 기초를 쌓고 공부 습관과 태도를 기르는 시기인 만큼 주안점을 어디에 둬야 할지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학부모 김 씨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부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아이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며 “습관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발굴해야 할 점, 부족한 점 등을 잘 캐치해 아이의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초등학교 때부터 학습 부담을 안게 되면 정작 공부가 중요한 시기 놔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라며 “스트레스 없이 공부습관을 기른 상태에서 중고교 때 동기부여만 잘 된다면, 학습 에너지는 오히려 더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들에게 온 ‘변화’… “욕심 보다는 여유, 강요보다는 존중”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엄마로서도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무엇보다 학습적인 부분에서의 욕심이 줄었고, 아이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커졌다.

학부모 김씨는 “학습적인 측면에서 아이에 대한 기대나 욕심이 컸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지금은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고, 융통성도 커졌다”고 했다. 

이들에 따르면, 아이에 대한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으니 오히려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다. 주변 과 비교하며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도 크게 줄었고, 이는 곧 둘째 아이의 교육방식으로도 이어졌다. 

무엇보다 아이의 변화를 직접 곁에서 느끼다보니 아이에 대한 믿음도 커졌다. 

학부모 임씨는 “말수가 적고 표현이 적은 아이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최근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믿음을 가져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당차고 야무진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욕심을 내려놓고 기다려주고 있다”고 했다.

“작은 학교의 가치, 통폐합이 아니라 특성화시켜 육성해야”

최근 교육부의 ‘적정학교 육성사업’ 지침에 따라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는 여전히 작은 학교를 살려나가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일률적인 통·폐합의 부작용은 물론 소규모 학교만이 가진 가치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

학부모들은 “통폐합되거나 폐교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오히려 소규모 학교를 특성화하는 등 지원·육성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며 “주변에 작은 학교가 많은 세종시는 이 부분에서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이를 위해서는 선택하고는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수왕초의 경우와 같이 통학버스가 없어 직접 등하교를 시켜야 하는 불편 등을 해결해나간다면 더 많은 학부모들이 작은 학교를 찾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에 따르면, 이곳은 유해환경이 없는 ‘다른 세계’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만 학교에 가져갈 필요가 없다. 학교에는 언제나 보고 싶은 친구들이 있고, 재밌는 놀이와 놀잇감이 가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