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과 붓질 사이'…어머니가 준 독특한 '화풍'

정우경 작가 7번째 개인전, 세종문화회관 2일까지 전시 '뜨개질일까 그림일까?', 착각일으키는 특별한 '화풍'

2016-07-01     한지혜 기자



뜨개질일까, 그림일까. 구분이 안될 만큼 정교하다. 가는 가닥의 실로 직조된 듯한 그림은 저절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보는 이의 눈을 속이는 묘한 포근함, 정우경 작가만의 화풍이다.

 

지난 27일 정 작가는 세종에서 7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회가 열리는 세종시문화예술회관을 찾아 그를 만나 물었다. 어떻게 이런 특이한 화풍을 갖게 됐는지에 대해.

 

정 작가는 “어릴 적 부모님의 맞벌이로 오빠와 함께 할머니 손에 컸다”고 운을 뗐다. 어린 자식을 떼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정 작가의 모친. 그가 표현한 내리사랑의 방법은 바로 ‘뜨개질’이었다.

 

늦은 밤까지 뜬 눈으로 떴을 망토와 스웨터. 어린 시절 정 작가는 모자부터 시작해 덧신까지 뜨개실로 온 몸을 휘감고 학교를 다녔다. 떨어져 있어도 엄마의 사랑은 언제나 곁에 머물렀던 셈이다.

 

정성 담은 뜨개질… 어머니가 준 ‘화풍’

 


그의 모친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치매 초기에 접어들었다는 모친의 모습은 전시회장 한 편에 걸린 그림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여기 저기 풀려 나간 실들의 잔해. 사방에서 기억이 풀리듯 치매를 겪고 있는 사람의 기억도 그렇다. 군데군데 컬러로 표현한 부분은 모친이 드러내길 거부하는 특정 기억을 상징한다.


정 작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과거의 기억 중 너무 아름답거나 슬픈 기억은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구부린 모습. 오랜 시간 자식을 위한 기도를 반복해온 모친의 등허리에는 자연스러운 굴곡이 드러난다.

 

마주보고 있는 단발의 여성은 정 작가다. 그는 “오랜 시간 기도해온 엄마와 달리 구부린 자세에서 뻣뻣함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소통’에서 시작된 지폐 인물 소재 작품

 

갤러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화폐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소통의 기본 단위는 화폐”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작가는 지속적으로 ‘소통’에 대한 작업을 해 왔다.

 

그는 “어느 나라를 가든 소통을 위해선 환전을 해야 하고, 전 세계를 묶는 매개 역시 얇은 종이 한 장”이라고 했다. 지난 2012년 미국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다.

 

1만 원권 지폐에 새겨진 세종대왕과 5만 원권 속 신사임당. 위안화에는 중국 공산혁명의 상징인 모택동이 있고, 1달러 지폐에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얼굴이 담겼다.


정 작가는 “지폐에는 자국을 대표하는 인물을 비롯해 그 나라의 삶의 가치와 문화가 들어 있다”고 했다.

 

특히 화폐 인물을 소재로 한 모든 작품들은 ‘과거 현재 그리고’라는 제목을 붙혔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화폐의 역사 역시 그 자체로 ‘소통’을 의미하는 셈이다.


그는 “과거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하나의 정보와 역사가 돼 현재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풀린 올들은 매듭으로 묶이고, 다시 엮어진다.

 

 

이 중 신사임당을 담은 작품은 그에게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당시 마무리 작업만 남겨 놓고 있던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터진 것.

 

그는 “똑같이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며 “당시 슬픔과 분노의 감정으로 검정색 물감을 작품에 드립해 버렸다”고 했다. 작품 속에는 물감을 던지듯이 작업한 흔적이 남아 슬픔, 분노의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세종시 명소 담은 작품…‘희망’과 ‘소통’ 주력

 

‘세종시를 뜨개질하다’라는 이번 전시 주제에 맞게 세종시 대표 명소인 국립세종도서관, 세종시청, 한두리대교, 세종호수공원 등도 작품에 담았다. 특히 모든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는 ‘나비’는 꿈과 희망을 상징, 새로 지어지는 도시인 세종시의 가치를 담고 있다.

 

‘소통’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하는 만큼 아이들과의 소통도 시도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받은 꽃 작품 속에는 동화 속 토끼, 고양이, 버섯 시계 등의 이미지가 숨바꼭질 하듯 숨어 있다.

 

다양한 표정을 한 빨강, 노랑 라바들도 곳곳에 숨어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과도 소통할 수 있어 즐겁다”고 했다.

 

글로벌 아트페어 참가…“세종서 작품활동 이어갈 것”

 

정우경 작가는 지난해 일본, 인도로 작품을 보냈으며 지속적으로 아트페어에 참가해왔다. 특히 지난 2012년 미국 전시회 반응이 놀랄 정도로 뜨거웠다.


그는 "전시회 첫 날에는 엄마가 와서 보고 가고, 둘째 날에는 자녀를 데리고 왔다 가고, 셋째 날에는 어머니를 데리고 온 관람객도 있었다"고 했다. 당시 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 중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그린 작품도 있었다. 



주로 대전과 서울에서 활동하다 세종시로 이사 온 지 2년째. 정 작가는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내달 2일까지 열리는 7번째 개인전을 마친 뒤 오는 9월에는 광주에서 전시회가 예정돼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지역 내에 실력 있는 작가들이 꽤 있지만 활동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언론 노출 빈도, 명성, 작품의 가격 등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에게는 (전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작품이 알려지기 전 정 작가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

 

끝으로 그는 “내 화풍은 전적으로 어머니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엄마의 따뜻한 품속에서 자랐다면 절대 이런 화풍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가까이 보면 볼수록 실로 정성스러운 그림이다. 늦은 시간 뜬 눈으로 코바늘을 잡았을 어머니의 정성이 느껴지는 작품.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그림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