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혁명' 그 이후가 중요한 이유

2016-10-28     최태영

선거가 끝났다. 앞서 혼전 양상처럼 보였지만 결과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정치권 안팎과 일부 보수언론들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새누리당의 과반 확보는 무너졌다.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란 야권은 약진과 돌풍을 일으켰다.


야권분열의 원심력이 새누리당의 ‘막장공천’이라는 잡음보다 훨씬 깊은 상처를 줄 것이란 예상도 오판이었다. 박근혜정부의 심판론과 함께 대선 전초전 성격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번 선거는 과거와 달리 몇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먼저 16년 만의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졌다. 수도권의 표심이 승패를 갈랐다. 더민주는 수도권 전체 122석 중 82석을 얻어 압승했다. 호남에선 ‘반문(재인)’ 정서를 극복하지 못했으나 수도권 압승에 힘입어 원내 제1당이 됐다. 하지만 전통적 텃밭인 호남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총선과는 양상이 또 다른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다.


녹색바람을 앞세운 국민의당은 호남을 장악하면서 일약 3당의 위치에 올랐다. 20년 만의 3당 체제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통한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동시에 안철수 대표의 대권론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호남당’에 국한된 이미지를 벗어야 하는 숙제도 생겼다. 전국정당 이미지로 부상했다고는 하나 정책도, 인물도 없었다. 안 대표는 제3당 출현의 지지를 호소했지만 당의 정체성이 무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여권의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새누리당은 과반이 무너지는 참패를 당했다. 당장 선거가 끝난 하루 뒤인 14일 김무성 대표는 당 대표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이를 비롯한 당내 최고위원 등 책임론이 거세게 일 게 분명하다. 김 대표의 대권론도 무너질 수 있다. 선거 전부터 부글부글 끓던 친박은 김 대표에게 일제히 화살을 돌릴 것이다. 반대로 비박계는 친위대 구축 과욕을 부린 청와대와 친박을 겨냥하며 충돌할 것이다. 이래저래 당내 지지기반이 약한 김 대표의 앞날은 매우 어둡다.

 

박근혜정부의 심판론도 톡톡히 작용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흔히 써먹던 ‘북풍’도 이번 선거에서 크게 작용하지 못한 모양새다. 여기다 보수성향이 강한 50~60대 이상에서 투표를 포기하는 경향이 강했다. 상대적으로 야성이 강한 20~30대 젊은층의 투표율이 높았다. 정부의 실정에 대한 불만이 표심으로 드러났다. 당장 청와대의 국정운영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나아가 내년 말 대선을 앞두고 레임덕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곳곳에선 지역주의의 균열 흐름도 나타났다. 붉은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대구에선 세 번째 도전 만에 더민주 소속 김부겸 당선인(수성갑)이 4선에 성공했다. 정통 야당 출신 후보가 보수 심장부 대구에서 당선된 건 1985년 이후 31년 만에 처음이다. 김 당선인은 당내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과 견줄 수 있는 대권주자 반열에까지 올랐다. 더민주는 부산(총 18석)에서 5석을, 경남(총 16석)에서도 3석을 얻었다. 전통적으로 여당세가 강한 서울 강남을에서도 더민주 전현희 의원이 당선됐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는 전현희 의원을 업어주기까지 했다.


반대로 야당 텃밭인 호남에선 새누리 소속 이정현 당선인(전남 순천)이 최초로 재선에, 정운천 당선인(전주을)은 삼수 끝에 성공했다. 이들은 모두 지긋지긋한 지역주의를 깬 일등공신이다.


지역 맹주들도 사라졌다. 7선에 도전한 새누리 이인제 의원을 비롯해 오세훈과 김문수, 광주에선 더민주 이용섭 의원 등이 줄줄이 낙마했다.


여당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결과를 더민주의 완승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것도 민심이 보여준 절묘한 균형감각 때문이다. 의석에선 더민주를, 비례대표에선 국민의당을 선택한 유권자가 24~26%를 차지한다.

 

결국 여소야대라고는 하나, 민심은 여야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누구든 오만도 독주도 안 된다는 것을 유권자들의 집단지혜가 보여줬다. 더민주는 자만하면 안 된다. 새누리는 개혁과 변화를 해야 한다. 다당제 구축을 앞세운 국민의당은 정체성 확립부터 먼저 해야 한다. 지역주의에 기대던 흐름도 바뀌고 바뀌고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여야 모두 말 뿐이 아닌, 이번 민심을 진심으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