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도덕 사이에서 예술의 정체성을 묻다

문학과 미술사이 |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과 ‘살로메’

2016-10-28     유현주 미술평론가


바질의 마음 흔든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시인 남진우 퇴폐 미학의 바이블”


예로부터 미남 미녀는 우리의 눈길을 끈다.


황진이의 아름다움 때문에 상사병을 앓다 죽은 청년이 있었던 것처럼,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도리안의 미모는 소녀들과 귀부인들은 물론 도리안을 그린 화가 바질홀워드의 마음까지도 쏙 흔들어 놓는다.


19세기 아일랜드 출신의 유미주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Oskar Wilde)의 이 소설은 한마디로 ‘미(美)’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소년의 타고난 아름다움을 상찬하는 헨리경은 도리 안에게 그 아름다움이 가진 권력을 마음껏 누리라고 권한다. 도리안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자신의 외모가 나이 들면 시들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림이 자기 대신 나이를 먹고 실제의 자신은 영원히 아름다운 젊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도리안의 미모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처럼 시들지 않는 미모와 젊음을 유지하지만, 초상 속 도리안은 늙고 추해지며, 살인을 저지르거나 출구 없는 쾌락에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더 사악한 외모로 바뀌어 간다.


시인 남진우가 말하듯 “퇴폐미학의 바이블, 우아한 탐미주의의 교본, 낭만주의의 자기애적 컬트의 결정판, 환상소설이면서 호러소설의 전범”이라는 평이 쏟아지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와일드가 살던 당대에도 세간에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소설이다.


무엇보다도 가공할 상상력도 상상력이지만 당시의 기독교적 도덕관념에서 볼 때, 엽기적이라 할 쾌락주의에 대한 찬미와 “예술에서 아름다움이 도덕을 앞지를 수 있다”고 하는 저자의 생각은, 오늘날에도 ‘미’와 도덕 어느 것이 더 우위인지에 대한 미학적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


실제로 와일드는 존 러스킨과 월터 페이터의 영향을 받아 ‘예술을 위한 예술’ 운동에 동참 하였다. 흥미롭게도 그는 남자들이 검은색과 회색 옷만을 걸치고 다니던 시절,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머리는 치렁치렁 길게 길렀으며 단춧구멍에는 초록색 꽃을 꽂고 다니는 등, 일상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일관된 정성을 바쳤다.


오스카 와일드가 추구한 유미주의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작품으로 희곡 <살로메>를 들 수 있다. 이 책에는 당대 아르누보의 천재 화가인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의 그림이 실려 있는데, 그야말로 유미주의의 극단을 보여준다. 이 희곡은 성경의 마태복음 14장 10-11절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 가니라”를 모티프로, 헤롯왕과 의붓딸 살로메 그리고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와일드가 해석한 작품이다.


살로메가 소반에 담긴 요한의 목을 들고 있는 장면은 아르누보 특유의 식물 넝쿨의 유연한 곡선으로 표현해 우아하기까지 하며, 살로메의 긴 옷자락과 머리카락은 절된 세례 요한의 목에서 흐르는 핏물의 곡선과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퇴폐적이고 악마적인 미감을 연출한다.


책에 나오는 살로메의 탄식은 또 얼마나 진실하고 저주스러운가! “당신은 당신의 신만 보고 나는 보려 하지 않았어. 당신이 나를 보았다면 분명 나를 사랑했을 텐데. 나는 당신을 보고 당신을 사랑했어. 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 요한. 나는 당신만을 사랑해… 나는 당신의 아름다움을 갈망해. 나는 당신의 몸을 갈망해” 자신의 유혹을 거부한 세례 요한의 목을 베게한 여인, 살로메의 입에서 끔찍하다고 할 사랑고백이 터져 나온다.


바로 그러한 모습이 ‘팜므파탈’의 요부로 살로메가 등극되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날 미학자들은 예술과 도덕, 미와 그로테스크 사이에서 심판관이 되길 주저한다. 이미 오늘날 예술은 화장실의 변기와 모나리자의 콧수염에도 ‘예술’이란 이름표를 달아놓았기 때문이다. 동시대 예술은 유미주의가 주장한 것과 같은 도덕, 인습 등으로부터 과거와 달리 훨씬 자유로운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로메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우리는 미와 도덕 사이에서, 예술의 정체성을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