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김제영 선생을 추모하며
상태바
김제영 선생을 추모하며
  • 임동천
  • 승인 2018.12.09 18: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임동천 시인 | 민예총 세종지회 기획이사
임동천 시인 | 민예총 세종지회 기획이사

‘모든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행동하는 예술, 함께하는 삶, 그들의 진로는 탄탄하다.’ 2012년 5월호 <음악저널>에 실린 글이다.

창립 4년, 겨우 걸음을 떼기 시작한 민예총연기지부(현 민예총세종지회)의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작은 공연 ‘善순환문화콘서트’ 현장에 노구의 몸으로 직접 찾아와 보시고 칼럼을 쓰셨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1986년 늦은 가을 무렵 백수문학회장과 신입회원으로 뵙게 되었다. 당시 김제영 선생님은 김동리, 문덕수, 김동길 등 한국중앙문단의 거인들과 함께 국제 문학인 단체인 국제펜클럽(International PEN-시인Poets, 수필가Essayists, 소설가Novelists) 활동을 활발히 하셨고 풋내기 문학청년에게 김제영 선생님은 거인이었다.

<미술세계> <미술21> <아트 코리아> <월간음악> <음악저널>은 선생님이 칼럼을 쓰셨던 월간지들이다. 물론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내 서재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만으로도 선생님을 소설가로 단순화할 수 없다.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모든 예술을 해석해내는 아트 저널리스트였으며 통일, 민주주의 등의 정치 칼럼은 온라인, 오프라인 많은 매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제영 선생님은 소설가로 단순화할 수 없는 분이다.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모든 예술을 해석해내는 아트 저널리스트였으며 통일, 민주주의 등 정치 칼럼니스트였다.

1987년 로버트 볼트 원작 연극 <꽃피는 체리>를 지금은 사라진 옛 문화원공연장에서 볼 수 있었다. ‘백수문학 주최 청소년을 위한 연극공연’이란 타이틀이 걸려 있었지만 오롯이 김제영 선생님의 관록과 능력으로 만들어 낸 초청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조치원병원 지하 연회장에서 ‘쫑파티’가 열렸다. ‘쫑파티’란 말도 생소했지만 ‘뷔페’라는 식사문화를 처음으로 접했다.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의 심양홍 배우와 웃으며 찍은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1991년 백수문학 동인지에 실었던 시들을 눈여겨보셨던 김제영 선생님은 그동안 쓴 시들을 정리해 오라고 하셨다. 몇 편의 시를 정리해 가자, 선생님은 친필로 시와 사람 됨됨이를 칭찬일색으로 써서 <시문학>에 보냈다. 이후 <시문학> 쪽에서 좀 더 시를 보내 달라는 서신이 왔고 일 년간 시를 정리해 보냈다. 이어 1992년 <시문학> 8월호에 등단하게 되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내 손을 끌어 서울에 있는 월간 시문학사 문덕수 선생님과 김규화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게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문단 데뷔는 시작일 뿐 앞으로 창작활동을 위한 배려였음을 우매하게도 이제야 알 것 같다.

설 명절과 추석 명절 인사를 드리러 갈 때마다 선생님의 몸은 연로해 갔다. 하지만 쉬지 않고 글을 쓰셨다. 창작보다는 진보정치, 평화통일, 민주주의 발전 방향 등의 칼럼을 주로 쓰셨다. 손에 힘이 떨어져 펜으로 글을 쓰지 못하자, 컴퓨터 자판을 한 자 한 자 눌러쓰셔야 했다. 명절마다 선생님이 쓰고 발표한 글들을 정리해주시길 부탁드렸지만, 세상 돌아가는 꼴을 가만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자신의 일보다 세상을 바꿔야 할 당위성을 찾아 글을 쓰셨다.

올해 추석 명절 인사를 갔을 때 선생님은 누워계셨고 청력이 많이 떨어져 필담으로 소통을 해야 했다. 극구 의자와 이불로 등을 받쳐 앉기를 원하셨지만 이내 기울어지셨다. 많은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돌아왔다.

선생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요양병원을 찾았을 때 선생님은 의식이 없으셨다. 선생님의 따님이 “엄마! 임동천씨 오셨어….” 귀 가까이 말을 전하자 눈을 크게 뜨고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을 움직였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까무르르 눈을 감으시고 거친 숨을 모으셨다.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5시간 후 부고 문자를 받았다.

김제영 선생님이 사시던 집을 시에서 매입해 조치원 문학관을 만든다는 말을 들었다. 선생님은 소설가이자, 아트 저널리스트이며, 정치평론가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사시던 집은 김제영 기념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종민예총지회에서는 우리 지역의 근현대 문화예술 1세대 분들의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백제 역사를 공부하던 일본 대학교수가 자문을 얻고자 찾아왔던 백제 고대사의 김재붕 선생님, 백수문학 창립동인 소설가 강금종 선생님, 백용운 선생님, 한국 사실주의 연극을 대표했던 극작가 윤조병 선생님 등. 선생님들의 이름을 단 문화예술인의 길을 따라가면 그곳에 옛 모습 그대로 과장되지 않게 김재붕 기념관, 윤조병 기념관, 이렇게 우리 지역 문화예술 1세대 선생님들 기념관이 만들어지길 소망한다.

김제영 선생님 유족에게 선생님의 자료를 잘 챙겨놓으시라고 부탁을 드렸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지역의 많은 분과 생각을 모으고 보태서 근대문화의 보존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야 하는데…늘 조언해주시던 김제영 선생님 빈자리가 휭하니 넓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