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제국주의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은 윤동주
상태바
제국주의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은 윤동주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8.11.22 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상으로 다시 보는 윤동주음악회] <10>흐르는 거리

으스럼히 안개가 흐른다. 거리가 흘러간다. 저 전차(電車), 자동차(自動車), 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리워 가는 것일가? 정박(定泊)할 아무 항구(港口)도 없이, 가련한 많은 사람들을 실고서, 안개속에 잠긴 거리는,

거리 모통이 붉은 포스트상자를 붓잡고 섰을라면 모든 것이 흐르는 속에 어렴푸시 빛나는 가로등(街路燈), 꺼지지 않는 것은 무슨 상징(象徵)일까? 사랑하는 동무 박(朴)이여! 그리고 김(金)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끝없이 안개가 흐르는데,

「새로운날 아침 우리 다시 정(情)답게 손목을 잡어 보세」 몇자(字) 적어 포스트 속에 떨어트리고, 밤을 새워 기다리면 금휘장(金徽章)에 금(金)단추를 삐었고 거인(巨人)처럼 찬란히 나타나는 배달부(配達夫), 아츰과 함께 즐거운 내림(來臨),

이밤을 하염없이 안개가 흐른다.
<흐르는 거리 전문>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흐르는 거리’는 윤동주가 일본 유학 시절 쓴 5편의 시 중 하나입니다.

1942년 서울에 있는 벗 강처중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 것들입니다. 그 시 5편은 ‘흐르는 거리’를 비롯해 ‘흰 그림자’ ‘사랑스런 추억’ ‘쉽게 씌어진 시’와 제작 일자가 밝혀져 있지 않은 ‘봄’입니다. 강처중의 정성스러운 보관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시편들을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강처중은 윤동주보다 한 해 앞서 1916년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1938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해 윤동주, 송몽규와 동기가 됐습니다. 그는 윤동주가 세상에 남긴 것들을 지키는 일에 각별하게 힘썼습니다. 벗이 쓴 작품과 보던 책들, 물품들을 윤동주 사후 유족들에게 넘겨줬지요. 무엇보다 경향신문에 근무하면서 주간이던 정지용에게 윤동주의 시작품들을 전해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간본을 만들도록 힘썼고, 직접 발문을 썼습니다.

소설가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에 따르면, 강처중은 김삼룡, 이주하 등 남로당 거물급들이 체포됐던 1949년 말 꼬는 1950년 초 수사기관에 체포・구속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어 재판에 넘겨져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 중 6.25 전란을 맞았습니다. 공산군이 서울을 점령했던 6월 28일 형무소에서 풀려난 뒤 낙동강 전선에서 전쟁이 치열했던 9월 4일 소련 유학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다시 ‘흐르는 거리’로 돌아와 보면, 이 시는 윤동주가 동경 릿교(立敎) 대학 유학 시절인 1942년 5월 12일 쓴 작품입니다.

<윤동주 시 깊이 읽기>의 저자 권오만 전 서울시립대 교수에 따르면, 시 앞부분에서 윤동주는 도시의 넓은 거리에서 전차, 자동차들을 비롯한 바퀴들이 안개 짙은 거리에서 흘러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바퀴들이 흘러가는 모습은 그에게 자연히 그것들을 굴리고 타고 밀려가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데, 권 전 교수는 그때 시인이 목격하고 있었던 흘러가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시의 풍경은 일본의 도시, 아마도 도쿄의 거리 풍경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도시의 거리를 흘러가는 차들에 실린 사람들을 보면서 “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정박할 아무 항구도 없이, 가련한 많은 사람을 싣고서, 안개 속에 잠긴 거리는”이라고 묻습니다. 시인에게 있어 일본인 또한 제국주의에 희생된 조선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가련한 존재였던 겁니다.

윤동주에게 있어 일본인 또한 제국주의의 틀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희생물로 보였던 것이죠. 당시 일제는 태평양전쟁에 뛰어든 상태였고, 간도 용정과 서울 연전 등에서 선교사들과 접촉을 통해 전쟁 확대에 대한 서구의 반응을 다소 짐작하고 있었을 겁니다.

권 전 교수는 “모진 바람이 불어댔던 시국에도 윤동주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또는 전쟁과는 무관한 일본인들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바로 셋째 연에 등장하는 (우편) 배달부 같은 사람에게 느꼈던 마음이죠. 더구나 시인은 배달부를 금휘장에 금단추를 단 모습으로, 그의 출현을 ‘거인처럼’ ‘내림(來臨)’ 같은 수식어를 붙여서 그렸습니다.

권 전 교수는 윤동주와 함께 소학교・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 고(故) 문익환 목사가 “윤동주는 죽음을 맞았던 자리에서조차 일본인들을 증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윤동주는 조선인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로의 희생양이었던 일본인에게는 격의 없는 태도를 보여줬다고 봐야 할 겁니다. <끝>
 
― 일시 : 2018년 10월 11일 오후 7시
― 장소 : 정부세종청사 대강당
― 주최·주관 : 세종포스트, 창작공동체 ‘이도의 날개’, 행복도시필하모닉오케스트라
― 기획·제작 : 이충건
― 총예술감독 : 유태희
― 지휘 : 백정현
― 출연 : 행복도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소프라노 심민정, 바리톤 양진원, 대전시민천문대어린이합창단
― 작곡 : 일지
― 편곡 : 김애라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