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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한 흥선의 불가피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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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한 흥선의 불가피한 선택
  • 유태희
  • 승인 2018.10.24 14:2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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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소설 이하응 : 리멤버 1863] <1>파락호

<소설 이하응: 리멤버 1863>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픽션이다.
 
소설은 이하응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평가가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대원군이 무조건적인 쇄국을 추진하지 않았고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작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도 제기한다. 가령 흥선대원군은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살해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끄는 등 비협조적이었다고 믿고 있다. 며느리 민자영을 미리 빼돌리고 다른 궁녀를 황후로 위장시킨 이가 대원군이란 게 작가의 주장이다.
    
작가는 대원군이 집권하고 제도개혁을 통해 조선의 국부가 2배 이상 늘어났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실제 쌀과 베의 생산량이 이전보다 몇 배 늘었으며, 특히 금과 은의 생산량도 증가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작가는 난세에 살아남기 위한 이하응의 ‘은인자중(隱忍自重)’과 ‘가치부전(價痴不癲)’, 개인적 야욕을 뒤로하고 국력의 본질을 생각한 방증으로서의 ‘인재 등용’, 라이벌을 제거하지 않은 냉철한 판단력 등을 대원군의 덕목으로 꼽기도 했다. <편집자 주>

삽화 = 태도(太道)

어두움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흥선군의 낡은 집에 검은 복면을 한 자객이 담을 훌쩍 뛰어넘는다. 곧이어 늙은 감나무 뒤에 몸을 숨겨 이리저리 살피더니 곧장 흥선군이 자는 사랑채 방으로 들어간다.

흥선은 술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복면을 쓴 사내는 단숨에 이불을 걷어내고 흥선의 목에 칼을 겨눈다. 흥선이 깜짝 놀라 눈을 뜬다. 자객이 흥선의 목에 칼끝을 대자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자객은 검지를 입에 갖다 대고는 단호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는다.

“쉿, 네가 흥선군 이하응이냐?”
“그…그…그렇소.”
숨 가쁘게 본능적인 신음을 내는 흥선.
“주색에 빠진 버러지 같은 왕족, 잘 가거라!”
“살... 살려주시오, 목숨만은…”
“에잇 더러운 놈, 가라!”
자객이 여지없이 칼을 가슴에 꽂자 흥선이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발버둥 치다가 눈을 뜨는 흥선. 꿈이었다. 잠시 천정을 멍하니 쳐다보고는 허탈하게 웃는다.
“이게 무슨 꿈인가. 나 원…”
흥선이 식은땀을 닦으며 자리끼를 찾는다.
 
이른 새벽 전의감 앞길에 4기의 파발이 급히 도착한다. 한 군졸의 등 뒤에는 어기(御旗)가 꽂혀 있다. 지휘관인 금위군관이 전의감 마당 안으로 들어선다. 전의감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며 왕명을 받을 준비로 어수선을 떤다. 금위군관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질러댄다.
“뭣들 하는가, 전의감 제조는 어명을 받아라.”

전의감 제조가 앞으로 나서며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춘다.
“예, 전의감 제조는 어명을 받고자 대령이요.”
군관은 어명이 적힌 두루마리를 펼치며 위엄 있게 외친다.
“지금 당장 극악무도한 역적 이하전을 사사하라는 어명이시오.”
“전의감 제조는 어명을 받잡고 거행하겠나이다.”

전의감 제조는 엎드려 두 손으로 어명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들며 예를 갖추었다. 어명을 전달한 금위영 군관들이 돌아가자 전의감 제조는 전의감 소속 전의들을 득달같이 불러 모아 이 사실을 알렸다. 동시에 처방을 위한 약재들이 충분한지 알아보고 사약제조를 지시했다.
 
며칠 후 흥선군의 사랑채 앞 마루에 가벼운 헛기침을 하며 나타난 하인 이연식이 아뢴다.
“대감마님 기침하셨습니까?”
(헛기침하며) “그래 무슨 일이냐.”
“중국에 가셨던 역관 나리가 인사차 오셨습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오경석이 한 손에는 보자기로 싼 물건을 들고 기침을 하며 말을 건넨다.
 “대감 어른 저올시다. 오경…”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흥선이 화들짝 놀라며 오경석의 호를 부른다.
“아하 진재(鎭齋) 아니신가? 어서 오시게.”
 
흥선이 부산하게 옷을 입는 소리가 난다. 사랑방 문을 급하게 열며 급하게 뛰어나오는데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아이고 이게 얼마 만이오” 흥선이 허허거리며 웃는다.
“그동안 기체 강건하셨습니까?”
“하다마다… 여부가 있겠소이까. 어서 드시게.” 흥선은 오경석의 손을 끌고 노안당으로 향하고 하인 이연식은 허리를 깊이 숙이고 뒤따른다.
 
노안당에 들어선 대원군이 아랫목에 앉자 오경석이 예를 올린다.
“우리끼리 무슨 예를 차리시는가.”
반듯하게 예를 올린 오경석이 들고 온 보따리를 내밀었다.
“여기 여인들이 쓰는 백분 몇 개를 가져왔습니다.”
“아이고 진재, 이런 것을 올 때마다 들고 오시나. 내가 미안해 얼굴을 못 들겠네.”
“한양에 계시니 쓰실 때가 많으실 것 같아서요.”
흥선이 오경석의 손을 덥석 잡으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고맙네… 잘 쓰겠네…”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이제 큰일입니다.”
“큰일이라니?”
“중국이 넘어가게 생겼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함풍제가 북방으로 사냥을 떠났다는 소린 들었네만.”
“아이고, 아닙니다. 함풍제가 승덕으로 도망치고 여름 궁전도 다 탔습니다.”
“양이들이 그리 강하단 말인가?”
“살펴보니 무기만 강한 게 아니라 군대 편제도, 공격방식도, 우리와 상이합니다.”
“어허 참 큰일이로고…”
“대감 어른 이제 조선은 어찌해야…”
흥선이 잽싸게 말머리를 빼앗는다.
“나는 모르오, 아는 바 없소이다.”
“종친 어른, 조선의 성성한 종친들이 모두 죽거나 귀양을 갔고 이제 대감께서…”
“어허 큰일 날 소리. 꿈속에서도 매일 죽소이다.”
“하오면……”
“나는 지금 이렇게 사니 용하오. 나 같은 범부가 나라 걱정이라니.”
흥선군이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친다.
 
“대감……”
오경석이 흥선의 손을 잡고는 얼굴을 맞대고 눈을 응시한다.
“대체 그들이 몇 대째 용상을 다스리는지 아시오. 나는 거기에 빌붙어 사는 용렬한 쓰레기 같은 인생이외다.”
흥선을 한참 응시하던 오경석은 머리를 숙이고 말이 없다.
“이제 진재가 돌아왔으니 언제 술이나 한번 칩시다. 우리 같은 범부가 걱정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소.”
“예, 그러시지요.”
“그래, 바로 그거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생이 좋다지 않소.”
 
흥선군은 역관 오경석이 돌아간 후 갑자기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짐을 느꼈다.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아니 한 것은 아니지만 오경석의 얘기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마치 숙제가 주어진 느낌이었다.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을 뿐 조선의 운명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환자나 다름없었다.
 
흥선의 생각은 달랐다. 세도정치를 끝낼 수만 있다면, 혁신의 길을 제시하고 안내할 수만 있다면, 조선은 다시 부흥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선 안동김씨 족벌 청산이 우선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곳곳에 깊이 뿌리박은 그들의 세력은 자신을 옴짝 못하게 결박하고 있었다. 더구나 흥선은 왕의 종친이 아니던가. 큰소리로 안동김씨 국정 장악의 부당함을 간하던 종친 이하전마저 제주도에 위리안치 된 후 청상과부 하나 달랑 남겨두고 사약을 받지 않았던가.
 
이하전이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던 날, 흥선은 이하전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마포나루에서 배가 떠날 때도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없었다. 마치 전쟁을 치르는 전선(戰船)처럼 사방을 나무방패로 막아놨기 때문이다. 홀로 남겨진 이하전의 아내가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금위영의 경계태세는 철통같았다. 안동김씨들도 민심이반만큼은 두려웠던 모양이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밤이면 밤마다 암살당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흥선이 세상을 버린 듯 파락호(擺落號)처럼 변한 까닭이다. 하지만 흥선은 원래가 올곧고 호탕하며 집념이 강한 사람이다. 더구나 배우기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알았다.
 
흥선군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목표가 생기면 친형제마저도 버릴 만큼 냉혹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하전의 죽음으로 흥선은 깨우쳤다. 옳다고는 하나 입바른 소리는 죽음을 몰고 온다는 것을, 그의 죽음을 통해서 배운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누구던가. 안동김씨는 김은열의 둘째 아들 김숙승을 시조로 하는 세칭 ‘구(舊) 안동’과 고려 태사(太師)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신(新) 안동’의 두 계통으로 나뉜다. 이 두 ‘안동’이 정승 19명, 대제학 6명, 왕비 3명을 배출한 조선 최고의 명문 집안이 아니던가.
 
지금 흥선군의 목표는 단 하나다. 안동김씨의 막강한 세력을 몰아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하지만 감춰야 했다. 아니 감출 수밖에 없었다. 철저하게 감추고 목표물이 한 발 앞에 다가설 때까지 준비하고 기다리는 호랑이가 돼야 했다.
 
흥선은 어려웠던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 처신해야 남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구설에 오르지 않는지를 체득하고 있었다. 세 치 혀를 잘못 놀려 재앙을 입은 사람을 수도 없이 봐오지 않았던가. 한번 말하고 행동하기 전엔 반드시 세 번을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 있었다.
 
하지만 이하전의 사사를 바라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조심하고 경계하는 것으론 부족했다. 아예 술주정뱅이나 파락호가 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안동김씨의 그늘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흥선군의 부친인 남연군은 인조의 넷째 아들 이병원의 아들이다. 흥선군은 아버지 남연군으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인척인 추사 김정희의 문하로 들어가 글과 그림을 수학했다.
 
후일 흥선군이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석파란(石坡蘭)을 그려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1843년 헌종 9년 흥선도정(興宣都正)을 거쳐 흥선군에 봉해지고 종친부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유사당상(有司堂上)이 될 때까지 거의 난초를 쳐서 먹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안에서 흥선군의 난초 그림 한 장 안 가진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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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태희는 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 기획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행복도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창작공동체 '이도의 날개' 대표로 활동하는 문화예술기획자다. 세종포스트와 함께하는 음악회 '세종에서 음악으로 다시 태어난 윤동주'의 총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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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7812 2018-10-25 20:27:36
페북.밴드펌합니다

김현 2018-10-24 17:29:46
흥선을 이렇게 조명하니 참재밋네요
즐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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