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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80분의 기억,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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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80분의 기억,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예의
  • 김미란
  • 승인 2018.09.1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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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스트 이화독서클럽] <2>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 | 오가와 요코 지음 | 현대문학 펴냄

평소 재미있고 감동 있는 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김미란 씨. 김 씨는 오가와 요코의 장편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김난주 옮김, 현대문학 펴냄)을 세종포스트 이화독서클럽의 두 번째 도서로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세종포스트 이화독서클럽은 ‘책 읽는 세종’을 위한 공감대 확산을 위해 세종시민이 참여하는 독서모임이다.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정기모임을 갖는다. 회원이 추천한 도서를 같이 읽고, 그 추천자가 다음 모임의 발제자가 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1일 세종포스트빌딩 5층에서 열린 9월 정기모임 발제자인 김미란 씨의 서평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11일 세종포스트 5층에서 열린 '세종포스트 이화독서클럽' 9월 정기모임에서 발제자 김미란 씨가 오가와 요코의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하지 않는다.”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해도 소중한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책 표지의 문구를 보는 순간 가슴 따뜻한 이야기라는 직감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평소 수학을 즐기지 않던 터라 첫 장을 펼치자마자 등장한 전문수학 용어를 보고는 ‘어? 이 책 어려운 수학책이었나’ 싶었다. 하지만 이내 박사가 알려주는 숫자의 의미를 느끼고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며 손에서 책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80분이라는 한정된 기억력 속에서 살아야 하는 박사와 그를 돌봐주는 가정부, 그리고 그녀의 아들 '루트'의 이야기다. 8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박사는 모든 것을 숫자로 기억하고 증명한다. 처음 만난 가정부에게 이름을 묻는 게 아니라 신발 치수를 묻고 생일을 묻는다. 그리고 그 숫자에서 의미를 찾아내 기억한다.

기호로 애칭을 정하며 나름의 기억의 구도도 만든다. 그렇게 박사가 가정부의 아들에게 붙여준 별명 '루트'는 그 안에서 모든 숫자를 평등하게 포용할 수 있는 기호다.

가정부의 아들을 바라보는 박사의 마음이 전해지는 기호 루트! 박사는 우리가 쓰는 언어를 수학 용어로 풀어쓰는 시인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세종포스트 이화독서클럽 9월 정기모임이 11일 오후 6시 30분부터 세종포스트 5층에서 열린 가운데 회원들이 오가와 요코의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 대한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

220 : 1 +2 +4 +5 +10 +11 +20 +22 +44 +55 +110 = 284
220 =142 +71 +4 +2 +1 : 284

“정답이야. 자 보라고, 이 멋진 일련의 수를 말이야. 220의 약수의 합은 284. 284의 약수의 합은 220. 바로 우애수야. 쉬 존재하지 않는 한 쌍이지.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겨우 한 쌍씩밖에 발견하지 못했어.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숫자지. 아름답지 않은가? 자네 생일과 내 손목시계에 새겨진 숫자가 이렇게 멋진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니.” <p30>

박사는 8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지만, 가정부와의 인연을 세상에 쉬 존재하지 않는 약수의 합으로 정리하며 서로의 만남을 귀한 인연으로 정의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만남의 소중한 순간을 간직하려는 박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는 '소수'다. 소수는 오직 1과 자신만을 약수로 하는 숫자다. 고결하고 순수하다. 그가 들려주는 질서정연하고 신비스러운 숫자의 세계는 이 세 사람을 더욱 단단히 결속시켜 주는 촉매 역할을 한다. 숫자의 세계에서 이들의 추억과 기억은 영원한 것이다.

수학을 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읽기에 부담스럽거나 딱딱하지 않다. 오히려 그동안 몰랐던 수학의 오묘한 아름다움에 감격할 정도였다. 읽는 내내 '참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여기에 야구라는 소재까지 등장시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야구에 푹 빠진 5학년 아들에게도 이 책을 권했다 ‘수’라는 특별한 소재로 따뜻한 감동을 전하면서도 고도의 수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기에 고학년 이상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수학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자녀와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눌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된다.

우리의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소중한 인연! 그 소중한 순간은 절대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준 노 수학자와 가정부 그리고, 그의 아들 루트의 이야기가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낙엽 지는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작은 휴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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