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트리아카스테야의 정원 같은 식당에서 푸짐한 점심을 마치자 오후 4시가 다 됐다. 이날 목적지인 포르토마린(Portomarin)까지 남은 거리는 40㎞ 정도. 넉넉잡아 3시간쯤 후면 도착할 수 있다.
여기부터 산티아고 순례길과 LU-633 도로는 오리비오강(Río Oribio)과 사리아강(Río Sarria)을 따라 이어진다. 도로 바로 아래가 강인데도 나무가 울창하고 시냇물 크기에 불과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나온 풍경처럼 남은 구간도 산속의 한적한 도로를 따라간다. 중간에 사모스(Samos)와 사리아(Sarria) 마을을 제외하면 특별히 큰 도시나 투어할 만한 관광지가 없다. 사모스나 사리아도 스페인에선 흔한 작은 도시다. 코스난이도는 해발 500~600m대의 평지에 가까운 내리막이다.
목적지가 다가오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포르토마린에 빨리 도착해 내일 최종일 라이딩을 위해 넉넉한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일정상 빠듯하다. 빨리 달린다 해도 저녁 7~8시는 돼야 도착하고 숙소 잡고 세탁과 저녁까지 해결하면 밤 11시는 넘겨야 할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늦더라도 내일 하루만 더 고생하자’고 다짐하자 마음 편해졌다. 이럴 땐 근육을 쓰는 페달링보다는 쉼 없는 유산소운동이 좋다. 마라톤처럼 물 흐르듯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중단 없이 달리는 것이다.
회복능력이 가장 좋은 아들이 차츰 라이딩을 리드해 나갔다. 내일이면 아들과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순례도 끝난다. 그간 아들은 낯선 이국땅에서 허둥지둥 갈피를 못 잡는 아비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허술한 대처능력과 약점만 아들에게 들킨 건 아닌지. 부디 좋은 기억만 걸러주길 바랐다.
아버지-아들-자전거가 뒤얽힌 ‘자전거 도둑’이라는 1940년대 흑백 고전영화가 있다. 아마도 청년 시절 공중파방송을 통해 본 듯한데 영화가 끝난 후 한동안 감독의 잔인한 제작 의도에 충격과 분노가 치밀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중에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보고 어느 정도 마음이 누그러졌지만 들키지 말았어야 할 아버지와 아들의 마지막 굴욕적인 장면은 지금도 가슴에 각인돼 있다.
이탈리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이 1948년 발표한 이 영화는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의 경제위기를 가감 없이 다큐멘터리식으로 재현한 명작이다.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여러 인간군상이 영화 전반에 등장한다.
주인공인 안토니오는 일자리가 없어 매일 구직소개소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착한 가장이다. 어느 날 벽보를 붙이는 일자리를 얻었지만, 자전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집안 침대보를 전당포에 모두 맡기고 저당 잡혔던 자전거를 찾는다.
온 가족의 희망도 잠시 안토니오는 벽보를 붙이다 유일한 생계수단인 자전거를 도둑맞는다. 자전거를 되찾기 위해 어린 아들 브루노와 함께 로마 시내를 구석구석 헤매다가 빈민가에서 범인을 잡지만 간질을 앓는 가난뱅이인 데다 이웃의 방해로 자전거를 찾아오지 못한다.
안토니오는 결국 독한 마음을 품고 남의 자전거를 훔치기로 하지만 서툰 도둑질에 그만 범행현장에서 붙잡힌다. 성난 군중들에게 집단 봉변을 당하는 아버지의 참담한 모습에 충격을 받은 아들과 치욕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버지가 절망에 빠져 시끌벅적한 군중 속을 걸어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브루노가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주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래도 당신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산속의 도로에서 빠져나오니 갑자기 사방이 환해졌다. 포르토마린 입구에 도달한 것이다. 포르토마린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2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 아래 강폭이 꽤 큰 게 마치 호수를 보는 듯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