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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의 화해, 그리고 치명적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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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의 화해, 그리고 치명적 실수
  • 박한표
  • 승인 2017.11.1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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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25-5> 켄타우로스를 적으로 만든 헤라클레스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 문학박사

네메아 계곡의 사자를 죽이고 가죽을 얻고, 레르네 늪의 괴물 히드라를 없앤 헤라클레스에게는 아직 10개의 미션이 남아있다. 세 번째 미션은 케리네이아 산에 있는 아르테미스의 황금 뿔이 달린 암사슴을 잡아오라는 것이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50여 명의 요정을 동반하고 다닌다. 절대로 순결을 잃지 않기로 맹세한 요정들이다. 만약 순결을 잃을 경우, 아르테미스는 혹독한 벌을 내린다.

아르테미스는 그 요정들 중 타위게테를 수사슴으로 몸을 바꾸게 한 후 자신의 수레를 끌게 했다. 암사슴에 황금 뿔을 달고, 청동 발굽을 달아 수사슴으로 보이게 한 것이었다.

굳이 암사슴을 수사슴처럼 보이게 한 이유는 요정 칼리스토가 아르테미스로 변신한 제우스와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가진 적이 있어서다. 이 때 칼리스토는 아르테미스와 헤라의 저주로 곰으로 바뀌었다.

헤라클레스가 미션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사슴으로 변장한 암사슴을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는 데 있다. 아르테미스 여신의 거룩한 짐승이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가 1년이라는 세월을 소비한 이유다. 헤라클레스는 사슴을 붙잡았다가 다시 풀어줬다. 이는 헤라클레스가 신들과 화해하는 길을 열은 것이다.

'주피터(제우스)와 칼리스토’ 카사르 반 에베르딩겐, 캔버스에 유채, 165×193㎝, 1655년, 스톡홀름 국립미술관(스웨덴)

네 번째 미션은 에리만토스 산의 거대한 멧돼지를 생포하라는 것이었다.

에리만토스는 숲속에서 우연히 목욕하고 있는 아프로디테를 보았다가 장님이 된다.

그리스신화에서 여신의 목욕 장면을 보다 혹독한 구경 값을 치른 자들은 에리만토스 외에도 여럿이다. 아테나 여신의 알몸을 보았다가 장님이 된 테이레시아스, 아르테미스 여신의 알몸을 훔쳐보았다가 사슴으로 바뀌어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찢겨 죽은  테베 청년 악타이온이 있다. 에리만토스는 아폴론의 아들이었다.

아폴론은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멧돼지로 둔갑했다. 멧돼지는 아프로디테의 애인 아도니스의 옆구리에 어금니를 박아 죽였다. 산의 이름은 장님으로 한살이를 마친 에리만토스로부터 물려받았다.

이 멧돼지는 상아 같은 어금니로 곡식의 뿌리가 다 드러나도록 논밭을 파헤치거나 덜 여문 곡식을 짓씹어 그 물만 빨아먹고 뱉어버려 곡식이 익을 때쯤이면 모두 허옇게 말라버렸다. 이 멧돼지를 생포해 와야 하는 것이 헤라클레스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이 산에는 켄타우로스(반인반마) 족이 모여 사는 폴로에 숲이 있다. 헤라클레스가 숲에 들어서자 켄타우로스 족장인 폴로스가 환영하고 잘 대접해 주었다. 그 숲에서 켄타우로스의 현자 케이론도 만난다.

그런데 헤라클레스가 케이론과 족장인 폴로스를 화살로 죽이는 큰 실수를 범한다. 이 사건은 후에 헤라클레스 자신의 죽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켄타우로스족과 인간은 물론 신들로부터도 사랑을 받던 현자 케이론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헤라클레스와 에리만토스의 멧돼지’ 외젠 들라크루아, 마분지에 유채, 27×47.5㎝, 1851~1854년경, 카르나발레박물관(프랑스 파리)

현자 케이론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제자였다. 그가 사냥, 의술, 음악, 예언 능력 등에 탁월한 이유다.

아폴론이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를 자신의 수제자 케이론에게 맡겨 의술을 가르치게 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뒤에 의술의 신이 된다. 히포크라테스가 그의 후손이다.

아폴론은 플레기아스 왕의 딸 코로니스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신의 사랑을 받고 있는 코로니스가 인간과 정을 통하자 이 사실을 아폴론의 새인 까마귀가 고자질한다. 격분한 아폴론이 쌍둥이 누이 아르테미스를 시켜서 코로니스를 활로 쏴 죽인다. 아폴론이 죽어가는 코로니스의 몸에서 아기를 끄집어내는데, 바로 그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다.

그리고는 불행한 소식을 전해준 흰 까마귀의 색깔을 까맣게 바꿔버렸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켄타우로스 족의 현자 케이론에게 의술을 배웠다.

그는 죽은 자를 살려낼 정도로 의술이 뛰어났다.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한 저승의 왕 하데스가 제우스에게 탄원해 아스클레피오스를 벼락에 맞아 죽게 한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지니고 있는 뱀이 감긴 지팡이는 오늘날에도 의학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온 몸으로 대지의 정기를 받아들이며 지하(죽음)와 지상(삶)을 누비고 다니는 뱀의 치유력을 나타낸 것 같다.
 
이밖에 현자 케이론이 가르친 제자로는 아킬레우스, 이아손(아르고 원정대의 대장),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도 있다. 제우스는 그 공을 기려 케이론에게 비록 조건이 딸린 것이긴 하나 영생불사의 은혜까지 베푼다. 그 조건은 의술로 인간을 살리되, 저승의 일에는 참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킬레우스의 교육’ 피오렌티노 로소, 프레스코화, 16세기경, 퐁텐블로궁전 프랑수아 1세 갤러리 북측 벽면(프랑스)

켄타우로스 족은 현자 케이론이 온 후 포도주를 입에 대지 못했다. 포도주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데도 못 마시고 있었다. 현자 케이론이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케이론은 “없애버려서 눈에서 멀어진다고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두고도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며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게 했다.

헤라클레스는 케이론이 금지한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말장난을 하다 도망가는 켄타우로스 우두머리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그 화살이 현자 케이론까지 죽이게 된 것이다.

케이론은 영생불사를 얻은 몸이라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영원히 살아야 했다. 케이론은 훗날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탄원하고 나서야 비로소 죽을 수 있었다.

켄타우로스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뒷날 도망친 네소스가 헤라클레스에게 치명적이고도 결정적인 반격을 가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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