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츤데레 해바라기 비밀 프로젝트
상태바
츤데레 해바라기 비밀 프로젝트
  • 유우석
  • 승인 2017.09.29 16: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담초 에세이] 유우석 교사
소담초 유우석 교사.

4학년 과학 식물의 한 살이를 살펴보는 ‘식물 기르기’ 단원이었다. 주로 강낭콩이나 나팔꽃 등을 기른다. 강낭콩이나 나팔꽃은 실내에서도 잘 자라고 관찰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낭콩은 강낭콩대로 심고, 기왕이면 우리 학교 화단도 예쁘게 만들고 싶었다.

아이들과 같이 우리 학교 주변에 어떤 식물이 자라고 있는지 둘러보았다. 옮겨 심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나무는 아직 지지대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줄 지어 자란 몇 가지 식물들도 있었다. 아직 정비가 채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금 우리 학교 화단의 모습이야. 나중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려면 뭐가 필요할까?”

아이들의 입에서 여러 가지 꽃들의 이름이 나왔다. 그 중에 귀에 불쑥 들어온 이름. 해바라기.

노랗게 핀 해바라기! 어른 키보다 높이 자란 진노란색 해바라기가 화단 전체를 노랗게 물들이는 상상만으로도 뿌듯했다.

다음 과학시간에 간단한 PPT를 준비해 보여주었다.

세종시 소담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모종에 물을 주고 있다.

“우리 학교가 노란 해바라기로 채워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만약 우리가 해바라기 키우기에 성공한다면 이렇게 될 거야.”

“하지만 우리가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 실패할 지도 몰라.”

“하지만 학교를 아름답게 가꾸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일이야.

“내년에 못하면 그 다음에. 우리는 도전하는 사람이야.”

아이들은 해바라기가 만발한 사진이 나오면 환호성을 지르고 황무지 땅이 나오면 마치 탄식하듯 아쉬운 소리를 내었다. 이미 아이들은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학교의 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준비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약속 한 가지가 필요해.”

“?”

“해바라기 씨야. 물론 해바라기 씨를 살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해바라기 씨를 주변에서 구한 것만 심을 거야. 사오면 안 돼. 선생님도 구해올게.”

소담초 아이들에게 보여준 PPT 자료 일부.

- 우리 집에 해바라기 씨 있어요. 햄스터 먹이요.

- 할머니 집에 해바라기 씨 있어요.

- 사오면 안돼요? 어디에 파는지 아는데.

“괜찮아. 사오지 않아도 돼. 친구들 것을 모아서 같이 심을 거야. 혹시 집에 해바라기 씨가 있으면 가져 와. 같이 심자.”

“두 번째는 해바라기 씨를 어떻게 키워야 되는지 조사해오는 거야. 언제 심어야 되는지, 어떻게 심어야 된는지,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알아야 잘 키울 수 있잖아. 숙제는 아니야. 혹시 조사해 올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인터넷 검색해도 되고 책을 찾아봐도 돼. 그리고 종이에 써 와도 되고, 혹시 PPT를 만들 수 있는 친구는 그렇게 해 와도 돼.”

- PPT 할지 몰라요. / 괜찮아. 숙제 아니야.

- 언제까지 해야 돼요./다음 과학시간.

- PPT 할 줄 아는데 어떻게 가져와요?/USB 아니?/알아요./오케이

“마지막으로 약속 한 가지는 비밀로 하자는 거야. 이리저리 소문내고 하는 것보다 나중에 노란 해바라기가 학교를 물들였을 때 알려주는 거야. 어때?”

- 우리 선생님께도 말하면 안돼요? / 조금만 참아줘

- 엄마한테도 안돼요?/(고민) 엄마한테 얘기하는 건 좋아. 하지만 엄마에게 부탁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 그럼 츤데레네요./ 츤데레? 그게 뭐니?

그렇게 츤데레 해바라기 비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날부터 우리 프로젝트는 츤데레 해바라기 비밀프로젝트가 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츤데레는 ‘아닌 척 하기’라는 인터넷 용어였다.

다음 과학시간에 십시일반 모은 해바라기 씨만 어른 손으로 두 움큼은 되었다. 적어도 천 개는 넘었다. 아마 이 중에 반만, 아니 반에 반만 성공하더라도 학교가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 것이다. 해바라기 씨는 빛깔과 모양이 조금씩 달랐다.

숙제 아닌 숙제를 준비해온 친구도 여럿 있었다. PPT를 준비해온 친구도 있었고, 종이에 빼곡하게 채워 온 친구도 있었다.

소담초 4학년 시은이가 준비한 '해바라기 키우는 방법' 자료 중 일부.

물통과 모종삽을 가지고 화단으로 나갔다. 아이들의 손에 해바라기 씨를 한 줌씩 쥐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화단 곳곳, 심어도 나지 않을 곳에도 심었다. 어때. 자기만의 장소에 자기만의 해바라기를 갖고 싶은 뿐이다. 아이들은 정성스레 심었다.

점심을 먹고 종종 해바라기를 씨를 심은 곳으로 아이들이 왔다. ‘쉿’ 해바라기 씨는 4학년만 아는 비밀이기 때문에 어슬렁거리다가 교실로 들어갔다.

- 선생님, 오늘도 싹이 나지 않았어요.

싹은 쉽사리 나지 않았다. 다른 싹을 해바라기로 오인하고 좋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닌 것을 알고 아이들은 실망했고, 관심을 갖는 아이들도 줄어들었다.

- 선생님, 싹이 났어요.

점심을 먹고 있는데 여학생 두 명이 다가왔다.

“그래?”

이미 나조차도 기대를 하지 않을 때였다.

“진짜에요? 잎에 해바라기 씨가 달려있어요.”

사실인가보다. 점심을 먹고 화단으로 갔다. 풀 들 중에 가늘게 자란 해바라기. 그리고 진짜 해바라기 껍질이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잃어버린 관심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 이상의 해바라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주변 사람들이 해바라기는 모종을 심어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장날 시장에 갔다. 그러나 해바라기를 팔진 않았다. 대부분 고추나 수박, 옥수수 등 밭작물을 팔았다. 하긴 누가 장에 와서 해바라기 씨를 사겠나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찾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해바라기 모종을 파는 곳이 있었다. 주문했다. 모종 200개.

마음 같아선 혼자 몰래 200개의 모종을 심고 싶었으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해바라기 씨는 몇 개 나지 않았지만 포기할 순 없잖아.”

다시 아이들과 해바라기 모종을 심었다. 모종을 심으며 전에 심었던 씨의 흔적을 찾기도 했다. 다시 아이들은 해바라기 한 그루 한 그루에 정성껏 물도 주었다.

곧 해바라기는 금방이라도 땅에 뿌리를 깊게 박고 튼튼한 줄기를 세울 것 같았다. 그래서 무럭무럭 자라 어른 키만큼 자라고 크고 멋진 노란 꽃을 뽐낼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해바라기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그리고 줄기가 굵어지지도 않았다. 모종보다 조금 더 크더니 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벌써 꽃이 피면 안 되는데.

생각만큼 크지 않은 해바라기.

그제야 다시 부랴부랴 모종을 산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보았다.

‘왜성해바라기(관상용해바라기)로서 아메리카 원산이며 관상용으로 흔히 심는 귀화식물이다. 1년색 초본이며 전체적으로 굳은 털이 있고 왜성으로 키가 작음.’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휴-, 이제 뭐라고 해야지.’

씨를 가져오고, 해바라기를 키우는 방법을 알아오고, 천 개 가까운 씨를 심고, 급기야 다시 모종을 심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우리 학교를 아름답게 꾸민 사람이야.’ 라고 용기도 주었는데.

다음 날, 급식실에 점심을 먹고 학교 건물 밖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4학년 남자 아이들 서너 명이 모여 있었다. 그 아이들과 얘기를 하면 건물 한 바퀴를 돌며 해바라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얘들아, 선생님은 여기에 해바라기 밭이 될 줄 알았어. 피긴 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야.”

“괜찮아요. 내년이 있잖아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